시카고 종교대회 100주년 행사 소개
김형근 (본지 편집인)
대전엑스포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출품을 한 1백년전 시카고 박람회를 기념하여 날을 잡았다고 한다. 대전엑스포는 꿈돌이가 상징하듯 온통 우주시대의 미래를 지향하여 어딘가 허황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시카고 엑스포는 200개 분야에 결친 세계회의를 개최하여 지구상의 오해와 갈등을 풀고 이해와 화합을 증진하는데 실질적인 이득을 준 엑스포로 평가를 받고있다. 그 중에서도 두고 두고 평가받는 모임이 만국종교회의다. 종파의 독선을 초월하여 〈종교를 위해 인류가 할 일을 추구하지 말고 인류를 위해 종교가 할 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선언하고 대단원을 내렸던 이 종교회의의 뜻을 기려 1백주년이 되는 이 8월 인도,미국, 일본 등지에서 1백주년 기념종교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한다. .....
이 1백년 전 시카고 만국종교회의에 유일하게 옵서버로 참석했던 한국인이 있었다. 개화 쿠데타인 갑신정변의 여파로 미국에 망명, 남부 내시빌의 밴더빌트 대학에 유학하고 있던 윤치호가 이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종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대표권이 없었기에 발언이나 연설할 기회는 못가졌지만 1주일이상 머물면서 그 경과와 자신의 느낌을 상세하게 영문일기로 적고 있다.
그는 흑인 성직자 바네트의 연설에서 (흑인은 신으로부터 심판을 받으려는 것이지 백인으로부터 거꾸로 매달려 심판받으려는 것은 아니다)고 한 말과 강대국의 약소국을 침범을 종교가 방관해서는 안된다는 피버디교수의 사회책임론에 특히 감명을 받고있다. 윤치호는 이 만국종교회의에서 난무했던 허울좋은 미사여구에 식상하고도 있다. 평화니 우애니 인간애 관용 용서 진리 희생 등등 너무 뜻이 커 촛점을 잡을 수 없는 말들보다 흑인 합창단의 신을 찬양하는 화음이 신선하고 설득력이 있었다 하고 작은 말에 선명한 뜻을 담아 신을 가까이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는 불교의 진리에 대한 연설을 감명깊게 듣고 난 곁에 않았던 한 미국 숙녀가 그렇게 좋은 믿음이라면 왜 선교사를 보내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을 인상깊게 적고도있다. 一조선일보 1993년 8월 11일 이규태코너에서 인용.
1백년전 처음으로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를 기념하기 위하여 열린 이번 〈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는 지난 8월 28일 부터 9월 5일까지 8일간에 걸쳐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라는 주제를 걸고 전 세계에서 125개의 종교단체에서 약 6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힐튼호텔 파머하우스와 시카고 대학, 시카고 박물관등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 중요한 행사가 마침 그 당시에 맺어진 PLO와 이슬라엘간의 평화협정때문에 언론에서 크게 취급되지 못해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한국의 대전엑스포를 매일 크게 보도하는 미주한국 언론계에서도 시카고 지역외에는 거의 취급되지 못했다.
미주현댐불교에서는 필자와 시카고 주재기자 박승한기자가 취재를 했으며 본 편집위원인 이장수 법사가 2년 전부터 이 회의의 준비를 위한 모임의 준비위원으로 또 이 행사기간에는 행사의 통역으로 활동을 하였다. 필자는 전기간을 여기서 보내지는 못했지만 며칠간 머무르면서 느낀점은 이규태씨가 쓴 윤치호씨와 소감과 대체로 비슷한 감이 많다.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시카고 만국종교회의가 미국에 공식적으로 불교가 처음으로 소개된 회의여서인지 많은 스님들이 참석하였고 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입장할 때는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장면이었다. 특히 남방지역의 많은 스님들이 승복을 입고 개회삭장의 맨 앞에 앉아있어서 마치 불교행사를 성대하게 하는 인상을 주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이 회의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이 행사의 성공을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첫번째 아쉬움은 불교계의 달라이 라마를 제외하고는 불과 일주일 전에 미국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건강때문이기는 하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테레사수녀등 세계적 종교지도자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또 미국종교학회 소속의 학자들도 참여한 사람이 적어 어쩐지 이 회의가 세계종교회의로서 위상이 낮아진 느낌이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스리랑카, 태국등에서는 미주에 활동하고 있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스리랑카, 태국등에서도 많은 스님들이 참석하였으나 일본,대만, 한국 등에서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일본에서는 神道, 남묘호랑게교 등이 참석하였지만 이런 회의에는 열심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 한국의 통일교나 천도교, 증산교등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불교나 힌두교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지만 개신교나 천주교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크게 눈에 띄이지 않았다. 한국계 기독교인으로서는 미국 NCC 회장인 이승만목사정도가 눈에 보일 뿐 기독교계는 무관심하게 이 회의를 맞았다.
두 번째는 이 회의가 불교와는 아주 관계가 깊은 회의이지만 스리랑카나 태국계와는 달리 나성의 西來寺, 상항의 萬佛寺, 뉴욕의 莊嚴寺등의 주요 미주중국불교계, 주요 미주일본계등이 참석하지 않았고 미주한국불교계에도 충분하게 홍보가 되지 않은 느낌이다. 이것은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의 문제보다는 준비측이 동시통역시설등을 준비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했었야 했는데 이런 준비를 하지 않고 홍보를 충분하게 하지 않은 데서 온 준비측의 준비 부족이다. 이 결과 미주한국불교계에서는 시카고 지역의 스님들외에는 미불교도의회의 부회장인 나성의 김도안스님만이 참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원불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을 뿐 만아니라 현재 유엔의 NGO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정옥교무가 달라이 라마등과 함께 이회의의 25인 공동대표로 이름이 올랐다.
세째는 한국불교계는 세계불교속에서 아직은 지명이 낮은 한국불교의 홍보를 위해 뉴욕주립대학교 종교학과 박성배교수나 한국불교를 대표하여 어느 한 사람의 발표의 장을 만들어야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장수법사나 본지 시카고 박승한기자는 여러가지 개인사정으로 매번 열리는 준비회의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한국불교를 홍보하기 위한 장의 마련을 한국의 조계종이나 태고종 등 큰 종단에서 관심을 가지고 후원을 했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본지에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하려고했지만 조금 늦게 추진하였기 때문에 주최측에서 너무 많은 재정적인 요구를하여 중도에 포기하였다. 또 이 행사장의 곳곳에는 각 사찰이나 선원 또는 불교단체들이 자리만 있으면 자기네를 알리는 전단을 갖다 놓았다. 한국불교계에서는 삼우스님이 이끄는 시카고 선련사만이 선련사에서 주최하는 America Buddhist Song 행사 안내전단을갖다 놓았을 뿐이었다.
매번 국제회의에 가면 느끼는 것은 한국불교신도들앞에서는 그렇게 큰소리치는 불교지도자들이 중요국제회의장에서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회의가 있으면 꼭 그 회의에 나가 발표를해야만 할 필요는 없다. 회의장에서 논의된는 문제, 회의진행방법등을 보고 배우며 사람들을 사귀는 적극적인 자세가 한국불교계에서는 필요하다하겠다.
1993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