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단 하나뿐인 귀중한 생명이 4명씩이나 한꺼번에 숨졌다. 새벽 4시께 경기도 고양시이마트 탄현점 지하 1층 기계실에서 냉방기 점검 작업을 하던 인부 4명이 냉매 가스를 주입하다 벌어진 일이다.
대학교 휴학생인 20대 청년 한 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가스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이마트 쪽은 통상적인 작업이라 인부들이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리 특별하지도 않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산업재해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7월 첫 주는 정부가 정한 산업재해 예방 주간이다. 올해는 '조심조심 코리아'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산업재해 예방 홍보를 TV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사건 발생 전날은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조심조심 코리아' 캠페인 선포식을 가졌다. 서울 삼성동 종합전시장에서는 5일부터 세미나도 열리고 산업안전보건 관련 전시회도 열린다. 텔레비전에는 원로 탤런트 최불암 씨가 공익 광고에 나와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취지로 말한다.
7월은 또 대한민국 산업재해·직업병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잇따라 터진 달이다. 4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바로 그 날은 공교롭게도 산업재해 예방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결코 잊지 않는 날이기도 하다. 23년 전 1988년 7월 2일 15살 꽃 다운 나이의 문송면 군이 수은 중독으로 숨졌기 때문이다.
문송면 군은 충청도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학비를 벌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서울의 한 회사 권유에 졸업식도 채 치르지도 못하고 1987년 12월 상경했다. 열다섯 나이에 어떻게 유해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법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유해 작업 부서에서는 일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는 영등포에 있는 협성계공이라는 온도·압력계 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회사에서 먹고 자며 두 달간 일했다. 이렇게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의 몸은 수은 증기에 중독돼 완전히 망가졌다.
산업재해 인정을 받기 위해 노동 사무소에 산업재해 신청을 하려 했지만 회사는 문송면 군이 설 때 집에 내려가 농약에 중독됐기 때문이라며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시골 병원을 전전했다. 병의 정확한 원인을 몰랐던 가족들은 원인이라도 알자며 땅까지 팔며 서울대병원에 입원시켰다. 어렵게 수은 중독임을 겨우 알았다. 그 뒤 산업재해 병원인 가톨릭 여의도성모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숨지고 말았다.
어린 문송면 군의 죽음은 이 땅의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특히 노동과건강연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는 보건의료 운동가와 진보 노동운동 단체 활동가들은 더욱 그랬다. 이들은 문 군의 죽음을 널리 알리고 그의 넋을 달래기 위해 '고 문송면 군 산업재해 노동자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렀다. 영등포에서는 노제를 지내기도 했다.
직업병은 현대 사회에서 생긴 질병은 물론 아니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직업병은 신화의 인물에서 등장한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의 얼굴을 보면 매우 일그러져 흉측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훗날 학자들은 비소에 중독된 모습이라고 보았다. 신화가 당시 시대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면 당시에도 대장간에서 금속 무기와 제품을 만들던 대장장이들이 흔하게 각종 중금속 중독과 직업성 재해에 시달렸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대장장인 신 불칸(헤파이토스)의 단조로>. 아폴론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염을 한 사나이가 헤파이토스다. ⓒ프레시안
로마 시대의 역사학자이며 폼페이우스 화산 폭발 때 유독 가스에 질식돼 숨진 플리니(Pliny the Elder)(23년~79년)는 그의 역사서에서 노예 병을 언급하며 "석면 광산에서 일한 적이 있는 노예는 절대로 사지 말라"는 충고를 남겼다. 아마 여러 귀족 집에서 일하던 노예가 처음에는 집안일을 잘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침을 심하게 하는 등 석면 질환 때문에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죽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당시 일부 노예들은 석면 광산에서 석면을 캐는 일을 했고 광산에서 일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치명적인 석면 질환(석면폐증으로 추정)에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때부터 노예를 비롯해 많은 인부들이 돌을 다듬고, 옮기고 성을 쌓는 등의 노역장에서 숨져갔을 것이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시대에 따라 그 종류와 규모의 크기는 물론 달라졌다. 산업시대에 들어오면서 직업병의 종류와 환자 수는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다루지 않았던 물질들을 다루고 연료로 석탄이 각광을 받으면서 탄광 광부와 석탄을 다루는 사람들에게서 진폐증을 비롯한 각종 재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석유에서 만들어낸 각종 화학 물질을 중심으로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마구 쏟아져 나오는 화학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어 각종 유해 물질 중독은 물론 직업성 암까지 양산되고 있다.
▲ 굴뚝 청소부 대회에서 한 어린이가 옛날 산업혁명 시대 굴뚝 청소부 어린이 모습으로 분장하고 나온 모습. ⓒ프레시안
영국 산업혁명 시대에는 굴뚝 청소를 하기 위해 주로 어린이들이 동원됐다. 굴뚝 안으로 들어가려면 몸집이 자그마해야 했고 어린이들이 적격이었다. 매일 숯 검댕을 뒤집어써야만 했던 이들은 나중에 음낭암(고환암)에 잘 걸렸다. 영국의 포트(1749~1787년)는 1775년에 굴뚝 청소부에게서 발생한 음낭암은 음낭 주름 사이로 매연이 들어가면서 이 자극에 의해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직업성 백혈병으로 잘 알려진 직업성 암의 효시가 바로 굴뚝 청소부의 고환암이다.
나중에는 어른들도 굴뚝 청소부로 나섰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굴뚝 청소부들이 청소도구를 들고 골목길을 누비면서 "굴뚝 청소하이소!"를 외치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내가 살던 동네에만 이런 굴뚝 청소부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많던 굴뚝 청소부 가운데 분명 암에 걸린 사람이 있으련만 아무도 그 실태를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첫 번째 직업성 암은 1993년에 석면 노출에 의해 발생한 악성 중피종이다. 당시 부산 연산동에 있던 제일화학이라는 국내 최대의 석면 방직 공장에서 일했던 50대 여성에서 발생했다. 현재 알려진 직업성 암은 폐암, 악성중피종, 백혈병, 방광암, 간혈관육종, 비강과 부비동암, 후두암 등이며 이 가운데 폐암이 가장 많다.
산업화된 외국에서는 전체 암 사망의 약 4퍼센트 가량이 직업성 암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평균 직업성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전체 암사망자 6만여 명 중 약 2000명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직업성 암은 주로 젊은 층의 남성 근로자에서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직업성 암환자 수는 연간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수행한 직업병 암 심의 결과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14년 동안 직업성 암으로 판정된 건수는 총 98건이다. 연간 7명꼴이다. 전체 직업성 암 중 약 53퍼센트는 폐암(52건)이 차지해 가장 많았고, 백혈병(15건), 기타혈액암(10건), 중피종암(9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산업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연간 1000명가량의 직업성 암 환자가 나와야 한다. 이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에서 직업성 암이 발생한다 해도 100명 정도의 직업성 암 환자가 대한민국에서 매년 나와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대한민국의 직업병 예방 수준이 세계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이거나. 하지만 이는 너무나 터무니없다.
이도저도 터무니가 없다면 설명 가능한 것은 딱 한가지다. 직업성 암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잘 모르고 일반 암으로 지나치거나 직업성 암 인정에 정부 당국과 국가 연구 기관 등이 너무나 인색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점을 지적하며 22년 전인 1989년 <한겨레신문>을 통해 직업성 암 문제를 주요 의제로 자세하게 다루었다. 이웃 일본은 이미 많은 직업성 암 환자가 1000명 넘게 인정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단 한 명의 직업성 암환자도 없다는 것은 없어서가 아니라 찾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있어도 직업성 암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이처럼 오래 전에 대한민국의 직업성 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었던 것은 직업병과 산업재해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그 실체가 전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일부만 세상에 알려진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직업병은 빙산과 같아서 결코 그 실태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 산업재해·직업병이 얼마나 많이 제때 투명하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선진사회 여부가 갈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사회가 아니다.
산업재해·직업병을 감추려고 고용주는 갖은 애를 쓴다. 그래서 산업재해 환자가 발생해도 산업재해 치료를 받게 하지 않고 건강 보험 진료로 돌린다. 자신의 건강권에 대한 노동자의 의식도 여전히 약하다. 특히 노동조합이 없는 곳이거나 노동조합이 있어도 산업재해 직업병에 관심을 쏟을 여유가 없는 노조라면 노동자의 건강권까지 접근을 하지 못한다.
지금의 산업재해·직업병 실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과거 산업재해·직업병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1988년 불과 몇 명의 환자가 발생한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은 불과 몇 년 만에 수백 명으로 불어났고 그 뒤 1000명 가까운 놀라운 숫자로 증가했다. 부산 제일화학에서는 석면 피해자가 1993년 처음 나왔고 2007년 소송으로 처음 직업병 인정을 받는 등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몇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은 수십 명에 이르고 있다.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는 노동자까지 더하면 100명이 훌쩍 넘는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으나 이들의 직업병 사례가 대중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지자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한국타이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산업재해·직업병 인정을 받기란 문송면 군 때와 원진레이온 초창기 때나 별반 다를 게 없다. 하나 같이 회사는 무관하다를 외친다. 정부 산하 연구 기관에서는 직업병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한다. 문송면 군이나 원진레이온 노동자처럼 치열한 투쟁 끝에 가까스로 몇몇 노동자들이 직업병 인정을 받는 성과를 최근 거두었다. 하지만 대다수 피해 노동자들은 안타깝게도 언제 인정을 받을지 여전히 미지수다.
다음은 가장 최근의 우리나라 공식 산업재해 직업병 현황을 다룬 보도 내용이다. 2010년 실태는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2009년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사업장 156만949개소에 종사하는 근로자 1388만4927명 중에서 4일 이상 요양을 요하는 재해자가 9만7821명이 발생(사망 2181명, 부상 8만7699명, 업무상 질병 이환자 7941명)하였고, 재해율은 0.70퍼센트였다. 2008년도에 비하여 사업장 수는 2.12퍼센트 감소하였고, 근로자 수는 2.93퍼센트 증가하였으며, 재해자 수는 2.10퍼센트 증가하였고, 재해율은 0.01퍼센트 포인트 감소하였다.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직접 손실액(산업재해 보상금 지급액)은 3조463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1퍼센트 증가하여, 직·간접 손실을 포함한 경제적 손실 추정액은 17조3157억 원으로 전년 대비 1.21퍼센트가 증가하였으며, 근로손실일수는 5190만 일로 전년 대비 25.95퍼센트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재해자는 2181명이며 그 중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는 1401명, 업무상질병 사망자 수는 780명으로 나타났다. 사망재해 유형은 추락이 450명, 진폐 397명, 뇌·심혈관질환이 320명, 교통사고 272명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망만인율은 1.57이며 2008년도 1.80에 비하여 0.23포인트 감소하였다. 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수)의 추세는 2000년도 이후 계속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2003년도에는 다시 증가하였으나, 2004년 이후 다시 계속 감소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 2009 산업별 사망 재해 분포도. ⓒ프레시안
물론 여기에 나온 수치를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다. 이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설혹 이 수치가 실제에 근접하고 있다고 인정해 사망만인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정부의 희망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 수준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 30개국 중 사망만인율 최하위 수준으로 유럽연합(EU)의 3배에 달하는 등 산업안전보건은 후진국인 상태다.
정부의 이런 산업재해 관련 통계 발표나 텔레비전 산업재해 예방 홍보 광고를 볼 때마다 23년 전 취재 때 만난 문송면 군과 그의 형 근면 씨 그리고 가족들이 생각난다. 또 내가 세상에 처음 알린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1988년 7월 만났던 정근복, 강희수 씨 등은 모두 고인이 됐다. 이들과 함께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삼성전자와 한국타이어에서 백혈병 등으로 숨진 노동자들과 아직 죽음과 싸우고 있는 이들 회사 출신의 산업재해노동자들이 겪고 있을 고통이 아릿하게 다가온다.
이들뿐만 아니다. 4대강 사업 현장과 한진중공업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중소기업과 가내공업 수준의 자그마한 공장에서, 각종 건설 현장과 철거 현장, 서비스업 배달 현장에서 유해 물질에 노출되거나 교통사고로, 해고와 노조 탄압 등으로 힘겨워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거나 불구가 되는 등의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필름 감기듯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정책 당국자들이 '잠 좀 제대로 자고 일하자'고 외치기보다는 산업재해로 죽어간,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알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산업재해 예방 정책과 제도가 나오지 않을까? 나라면 산업재해·직업병으로 스러져간 영혼들에게 기업주와 정책 당국자가 참회하고 이들 영령 앞에서 '산업재해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지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을 광고에 담고 싶다.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에게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산업재해·직업병은 특수한 직종에 있는 특수한 노동자가 안전 의식이 부족하거나 그 위험을 잘 몰라서 걸리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노동자가 언제 어떻게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산업재해·직업병이다. 하루 종일 서서 물건을 팔거나 계산을 하는 노동자, 배달하는 노동자, 택시·버스 기사, 하루 종일 컴퓨터로 일을 하는 사무직 노동자, 야간 근무 노동자 등이 요통, 경견완증후군, VDT증후군, 암, 정신질환 등 과거에는 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각종 직업병과 교통사고 따위의 산업재해에 노출돼 있다.
산업재해·직업병 이야기는 바로 당신의 문제이다. 여러분이 한때 잠시가 아니라 평생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말 중요한 위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