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희망, 한국인들의 희망,
탁구인들의 희망에 대해 생각을 곱씹어 가며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할수록 그립기만 한 천진한 우리의 옛 얼굴을 생각해 보면서 피터팬을 제작했고, 모두가 바라지만 결코 이루어 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무엇, 그런
희망 같은 것들이 비록 이룰 수 없는 것일지라도 우리 삶을 지탱하는 근원적인 그 무엇이 되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오즈라는 이름도 붙여 봤습니다.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꿈, 지키지 못해 너무 애통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옛 꿈들을 더듬어 잉카를 만들었구요…..
그런데 이런 모든 것들, 희망, 꿈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제 마음 속에 아리게 맺히는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恨 이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울컥해 지는 단어, 한.
이 恨은 우리 민족의 이름이 된 한과는 다릅니다. 우리 민족의 이름이
된 한민족韓民族의 한과는 다른 한입니다. 그런데도 이 단어는 마치 한국사람들을 규정짓는 단 하나의 대표적인
단어를 말하라고 하면 꼭 말해야 하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한이 뭘까요? 왜 우리는 한이라는 단어를 우리 마음 속에 품고 있을까요? 그것이 왜 마치 우리 민족의 숙명적 감성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일까요?
제가 “한”이라는 단어를
희망을 말하다 말고 불현듯 떠올린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부여 한다면 무엇이 될까… 한국적인
희망이 무엇일까, 그것을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희망은 커녕
희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 속에 맺혔습니다. 그래, 희망을 말하려면 한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돼 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성이 깊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신에 대한 믿음이
깊다거나 본래적으로 신탁에 의한 통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다거나 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고대 역사상 “신”에 대한
관념은 권력층, 귀족층, 그리고 제사장 계층 들에 더 거리가
가까왔고, 백성들은 신에 의해 권위가 주어진 그 계층에 의해 부려지기만 할 뿐, 결코 고대의 신은 민중과 가깝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신이란 무서운
권력층의 근원적 권위가 되는 그 무엇일 뿐, 직접 그 대상을 향해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했습니다. 고대 근동의 수많은 왕국들, 예를
들면 이집트나 바벨론의 경우 왕은 곧 신이거나 혹은 신의 아들이었고 왕의 통치는 신의 통치였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신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 신은 조금 다릅니다. 마치 올려다 보면 금방이라도
정화수 속에 떨어져 내려올 듯 한 달빛을 보면서 우리 어머님들은 신을 향해 기원을 드렸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모든 신들은 직접 우리와 대화가 가능한 대면적 신이었으며 권위나 징벌의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신, 하늘의 신 외에 수많은 잡신이 있었지만, 그 잡신들은 하늘의 그 유일한 신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달래야
하고 가급적이면 잠잠하도록 묶어 두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와 가까운 신의 관념이 우리 백성들에게 자리잡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우선은 정치적 통치권에서 신탁을 주장하지 않았고 신의 관념에 이를 만큼 거대한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신에게 의지 하지 않고 다른 무엇인가를 해 볼 수 없는 그런 절박함이 그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수많은 전쟁과 가난 속에 하시라도 아들과 남편을 잃을 수 있는 우리 어머님들은 달을 보며 정화수 떠 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라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인가가 우리를 얼마나 깊이 속박하고 있는지를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은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이 있고
그 둘 사이에서 낮은 사람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해 볼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너무 답답한 노릇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곧잘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들의 사진을 찾아 보려고 인터넷을 많이 뒤져 봤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지금은 그렇게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겠고, 또 그것을 굳이 사진으로 남겨두려고 한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허리 굽은 할머니들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지 모릅니다. 무슨 북한의 아오지 탄광에서 노동한 할머니도 아닌데, 그냥 열심히
한 사람의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살아 왔을 뿐인데, 허리가 90도로 굽어서 걸을 때도 지팡이를 집지 않으면 걸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땔 때도 허리를 굽히고 앉아야 하고, 부엌에서 찬거리를 만들 때도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히고 일을 해야 합니다. 밭에 나가면 하루 종일 허리 펴는 일이 별로 없고 땡볕 아래 땀이 흐르건
말건 날이 선 풀들과 하루 종일 씨름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어머님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허리가 굽으면 그것이 그냥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인가요? 그
시대, 허리 굽은 것을 안타까와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일인데, 우리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싱크대가 놓인 신식 부엌, 사실 일할 공간, 부뚜막을 조금만 높게 만들면 되는 일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조금
높은 부엌에서 일했으면 허리가 덜 굽었을 것입니다. 밭일을 할 때도 쉬지 않고 허리 굽혀 일할 것이
아니고 허리펴고 일할 도구나 혹은 작은 목욕탕 의자 같은 것이라도 두고 철푸덕 앉아서 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나라들에서 우리 목숨을 조금씩 갉아 먹는 유해한 먼지 가루들을 마스트도 쓰지 않고 뒤집어 쓰면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쓰레기들을 태우면서 구리 선이나 알루미늄 조각들을 모으느라 그
해로운 유독 가스들을 마시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지 않고
그들 역시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뭔가를 하지 않습니다. 정말 속상하고 안타까운 일이지요.
희망을 말하면서 글이 너무 우울하네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허리 굽은 우리 어머니들은 아들과 남편을 잃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왜 우리 민족이 한의 민족인지를 말해 줍니다. 엄청난 고통과 절박함 속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울기도 하루 이틀이지, 아무리 울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너무 한계적이고 연약하기만 한 것이지요.
우리 민족과 희망을 연결시켜 생각하다가 결국 제가 이른 결론은 한이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될 것을 희망할 수 있는 사람은 조선시대 정말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 뭔가를 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가졌던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 보고
계획할 수 있었던 사람도 많지 않았을 거구요…
희망이란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것이었겠지요.
군대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군대에 있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특히 이등병 때에는 정말 희망이 없습니다. 전역할 날짜를 헤아리는 것은 희망이 아니고 고문입니다. 그것도 그런
생각을 할 짬이라도 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저 눈뜨고 일어나면 어떻게 하루가 갈 것인지, 답답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다가 그 하루가 지나면 내일의 또 다른 비스므리한 고통을 예감하면서 잠이
들지요.
그런데 그런 틈 짬짬이 희망이 있습니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몸을 누이고 잘 수 있다는 것, 잠깐 고참들이 자리를 비워 동기랑
둘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쉴 틈들이 쥐구멍에 햇볕 기어들듯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비쳐 들면서
우리에게 숨쉴 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합니다. 지금 같으면 그냥 눕고 싶으면 누우면
되는 것인데, 그래서 누울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하나도 못 느낍니다만, 군대에 있을 때는 3분 잠, 5분
잠, 10분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 틈에 잠시 눈 감을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큰 기쁨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은 참 희망의 존재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조선 시대, 정말 우리가 지금 부르는 그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겠지만, 그래도 그 시절 그 사람들도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희망이 지금 우리가 갖는 희망에 비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마치
희망이 없는 시절을 보냈던 것이라고 우리가 지금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시절 그 사람들에게도 희망이라는 것이 시시각각 그들 삶에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들에게 미소를 주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한이 우리 민족에게 많은 것은 그런 수많은 희망들이 자주 부서져 내렸던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마음 속에
큰 충격과 아픔들을 겪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글이 두서 없이 떠 돌아 다니는 것을 이해해 주세요.
이 글은 제품 설명글이 아니고 제품에 이르기 까지 제 마음이 무엇을 더듬으며 표류했던가를 말하는 글입니다. 추상적이고 턱없는 글 같아도, 적어도 그런 생각의 표류들이 아리랑이라는
이름과 또 그 이름에 의해 담긴 어떤 구성적인 특징들을 열매 맺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거듭 하다 보니까 두 가지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하나는
우리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매우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것으로 환경과 처지에 상관 없이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생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면서도 처연하도록
무력한 존재인가요…?
히틀러가 유태인들에게 이루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학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결국은 한 줌의 재와 기름 덩어리에 불과함을 증명하고자 했으며 곧 그가 만든 수많은 수용소들은 인간성을 처절하게 박살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죽음과 맞닿아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짐승처럼, 그저
목숨을 구걸하며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그런 짐승 이하의 물건 같은 존재로 유태인들이 변해가기를 기대했습니다. 서로 서로가 미워하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떨어져 버리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유태인들은 인간미를 잃지 않았습니다. 엄마이기를 포기한 엄마도 없었고 아들이기를
포기한 아들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들은 예술성을 잃지 않았고 수용소 속에서도 아름다운 싯귀, 신을 향한 절박한 믿음의 글귀들이 벽에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희망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예술이 살아 남듯, 희망도 살아 남았습니다. 희망은 결코 고통이나 공포로 인해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곧 인간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 인간은 그 희망을 말하고 지키기에 얼마나 무력한 존재입니까?
탁구 치시는 분들은 하루 하루 느끼실 것입니다. 금방 실력이 늘 것
같아도 항상 제 자리이고, 이만하면 좀 잘 치게 된 것 같은데도 여전히 고수 위에 고수가 층층시하이지요. 갑자기 너무 현실로 급박하게 돌아 왔나요?
아리랑의 가사를 떠 올려 봅니다.
한 남자가 여인을 떠납니다.
두 사람은 부부인지, 아니면 연인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떠나는 남자가 마음이 변해 떠나는지, 아니면 전쟁에 부름을 받아 떠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박했을, 그러나 이뤄지지 못 했을 것으로 보이는 그 사랑은, 이제 떠나는 남자와 그 남자를 보면서 소리내어 울지 못 하는 한 여인으로 남게 됩니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가면서 발병이 나라고 말하는 여인의 노래는, 귀여운
투정도, 표독스러운 저주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철저하게 고통 받으면서도 무력한 한 여자의
짙은 한입니다.
만약 우리가 오즈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오즈 안에는 아이들과 여인들의
눈물이 없었으면 합니다.
탁구치는 우리 남편들도, 오늘 아리랑 가사를 떠올리시면서, 여인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절박한 존재인지를 한번쯤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무슨 페미니즘 주의자라서가 아니구요, 우리 옛 할머니들의 굽은
허리를 생각하면 앞으로 적어도 수백년 동안은 우리 여자들이 허리 펴고 눈물 없이 살아가도록 남자들이 보상적 삶을 좀 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 사람은 이상하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음 속에는 고상하고 아름 다운 것들도 너무 많고, 천박하고 더러운 것도 너무 많습니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답고 또 더러울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신비롭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합니다. 고차원적인 삶을 살기를 꿈꾸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니까요….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하네요.
아리랑은 이런 한의 정서를 블레이드에 담았습니다.
그것이 아름답고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정서로 잘 맞는다는 생각은 아닙니다. 그러나 한민족을 말하면서 그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너무 절박하게 처량한 것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굽이 굽이 사람 사는 마을을 휘감아 친근하게
내려 앉은 우리네 산하를 보면서, 그 아리랑 고개도 두 사람을 멀리 떨어 뜨려 놓는 이별과 분리의 장벽이
아닌, 야트막한 고개 같은 것, 막연히 나마 그런 것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블레이드 면에 두 줄기 산 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기능적인 면들은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잉카를 제작하면서
가졌던 마음 가짐들이 아리랑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잉카가 보다 더 티바적이고 유럽적인
성향을 지녔다면 아리랑은 보다 더 넥시적이고 한국적입니다. 감각적으로 더 깊이 닿는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한방 탁구를 위한 또 다른 블레이드, 오즈를 많은 분들이 경험하셨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이 블레이드도 한방 플레이를 쉽게 해 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이 깊이 맞을 때 그 느낌이 분명하게 살아 있을 것입니다. 강타를 쳤을 때와 부드럽게
스치듯 호를 그었을 때 그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지는 구조입니다. 넥시의 2세대 블레이드들이 가지고 있는 가변 반발력도 장착되어 있습니다만, 가변력을
크게 가져가기 보다는 용이한 수비력과 공격력을 보증할 수 있는 정도에서 타협되어 있습니다. 사용자에
따라서는 매우 편안하게 느낄 것입니다.
두께와 형상, 손잡이 구조 등은 매우 이상적인 넥시의 최종 데이터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잉카와 동일한 구조를 지녔으므로 두 블레이드 사이에서 미묘한 차이를 감상하실 분들에게는
큰 차이 없이 두 블레이드를 오가며 플레이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몇 분들이 러버와의 셋팅을 질문하셨는데요, 잉카와 아리랑은 초기에 1Q 러버로 출발했지만 최종 미세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는 에볼루션 러버로 미세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문에 무게 자체를 최대한 그 구성에서는 가볍게 가져갈 수 있는대로 가볍게 가져가도록 설계 되어 있지요.
두께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 원하는 적정 두께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잉카와 아리랑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적의 두께를 찾고자 했습니다. 이런 면에 2세대와
다르다고 하겠지요. 2세대는 가장 얇은 두께인 칼릭스와 다수 두툼한 스피어 등 다양한 두께가 시도 되었지만 3세대에 이르러서는 두께와 손잡이 형상, 윙 등이 하나의 스타일로
모아지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구성 형태는 전면의 히노키 표면 아래에 바로 아유스층을 사용했는데요, 이
구성 형태가 바로 리썸에서부터 줄기차게 카보드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어 온 기본적인 넥시적 셋팅이지요. 이런
면에서 잉카보다 아리랑이 보다 더 넥시적이며 또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만큼 예민한 손 감각을 가진 민족은 드물 거여요. 황우석
박사님의 젓가락론이 굳이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인들은 가변반발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지지 않았나 생각도 해 봐요. 어쨌거나 가변 반발력의 핵심 부분은 바로 이 두번째 아유스 층에 있는데요, 지금까지
아유스층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살리기에 적절한 표면층의 두께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왔습니다.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은 아유스 층을 덥는 표면층의 딱딱함의 정도에 따라 아유스 층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김정훈 블레이드 같이 딱딱한 화이트애쉬 나무를 사용한 경우는 표층을 매우 얇게 해 주구요, 아리랑 같은
부드러운 목재가 표면층으로 사용된 경우는 다소 두껍게 표면층을 가져가 줍니다.
너무 디테일한 설명은 약하구요… 여러분들께서 느끼실 수 있도록 해
드려야죠.
이제 며칠 안 남았죠?
예전에는 너무 소개 글을 일찍 올려 드리니 기다리시기 힘들어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발매 직전에 소개글을 올려 드립니다.
글이 길어서 힘드셨을지도 ^^
여러분들에게 좋은 평가 받기를 고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글은 영문 소개글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적는 내용은 조금 다르게 되어 있어요. 아리랑과 한을 모르는 그네들이기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영어로 적어서 죄송합니다. 다만 넥시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 올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Launching Arirang
There could be only a few who have heard of
this word “Arirang”.
Arirang is the name of old Korean folk
song. It was sung by many generations, and we don’t know from when and where
this song started. But Korean people have very strong feeling from this song.
The song’s title means one road running
over a mountain.
I don’t know what other nations feel from
thinking of a mountain.
Some people might think of greatness of
nature, which does not easily permit humans to walk on, and some other people
might think of forest filling up it, and going for a simple hiking on it. But
it will be unusual to find what Koreans feel from hearing this name “arirang”,
the path runs on mountain.
This small path means separation.
Look what the song sings to your ears.
Arirang, Arirang, Arario
There is a man walking on ‘Arirang’, which
goes over the mountain.
This man who is leaving me behind, shall
fall on the road,
And shall get hurt, not reaching a few
miles away from me.
Very simple lyric.
It’s not easy to understand why Koreans
like this song much, and what kind of deep feeling and meanings stay in this
lyric.
But let me go further with this song.
In this song, the speaker is a woman. I can
imagine she is trying to keep her tears in her small whisper to herself. Maybe
she wants to cry out, punching at this man’s chest, begging not to leave her,
but she can’t. The only thing she can do seeing her lover is leaving over the
mountain is to wish that he might fall on the road.
I don’t want to say anything about
feminism, or what was better way to stop him from leaving. This song is not for
judging. But please, try to imagine what this song means.
Korea has a long history, but over many
thousand years, our nation suffered lots of bad things. So, we know what
sadness means, what separation means. Many mothers heard their sons are not
returning from war, many wives saw their loved husbands are leaving for the
war.
But under Korean culture, when a man leaves
a woman, the woman is not supposed to say ‘no’. It’s not only for a man leaving
for a war field, but a man leaving for another new lady.
From this song, we can basically think of
two possible reasons for this man’s leaving. Maybe for war, or for a new girl.
But this young lady just cries in her whisper. Sadness, frustration, all
possible deep sorrow stays only in her patient tears welling up in her eyes,
and she does not try to call him back. Just she is watching his back, walking
away from her, and her bitterness comes in her mind with a small wish that he
might fell on the road away from her.
Actually, the exact meaning of her wish is
that he might have painful sickness on his feet. You may think of the pain he
might have while walking over the mountain path, leaving her behind.
If he is leaving her behind, because he has
another new love, then it will be the reasonable pain he should take, but if he
is leaving her because he was called for a war, and now he is leaving his wife
and several kids back, then what would be his pain in his heart?
We can not tell what was the reason for his
departure. But anyways, we can read the pain and sadness moving around this
song.
But all this pain, sorrow, bitterness is
only expressed in a witty wish, that he might have pain in his feet. She does
not curse him, regret over her destiny, and try not to express her inner pain
out on her mouth. Only small whisper is the all thing she can do, and that is
what she is now doing.
What do you usually do when you have big
agony in your heart?
Have you ever be in a situation that you
can not express that?
In this song, we can see that Korean people
tried to scatter this difficult hardship by whispering this one witty wish. It’s
very sad song, but also a very humorous song.
So, the name “Arirang” means something
blocking you from your love, but your love is walking for it now.
If you look at the blade, then you can see
black and red lines, which seem like mountain in Asian old pictures. Yes, they
are. This symbolize a path thought a mountain, and also mountains where this man
is walking on, leaving his love behind.
Here is two links you can hear the song “arirang”.
One is played by Orchestar in the street,
another one is played by me with a piano.
Some of you might know that Nexy has tried
three big changes.
I call it as the first wave, second wave,
and the third wave.
In the second wave, I tried to maxmise the
gap between absorbing force of the blade and the bouncing off speed in one
blade. Because we need good control and short rebound when we defend or block,
but in the other hand we need big power and speed when we make bit offensive
shots. I don’t know what to call this function. But this function was the main
concern for all of Nexy’s second wave blades.
So, I tried to apply this functional
feature to many different kind of blades. And in result, second wave products
are very large in numbers, and also widely different among themselves. Some are
thick, some are extremely thin, some are all wooden, some are using artificial
materials, some are soft and some are stiff.
While I keep on making those blades, I came
to realize that there is a certain ideal blade I want to really make. It was
not about abstract descriptions. I got to an island, where I can make clear
about all these varieties. I coul get exact size and shape of the handle I
prefer, I could be sure what size is optimum for my blade design, and what
thickness range, what power and control and so on.
So, in my second wave, I tried to scatter
the function I like into many varieties of different blades, but in my third
wave, I now try to gather those varieties into something more central and
harmonized one. Well balanced, but upgraded from all other similar kinds
I can say that I tried to decentralize with
my second wave feature, and now I’m trying to centralize those blades into
several optimal ones.
But with this functional factor, I tried to
do something further than this table tennis things.
I came to think of this idea.
Ok, now I made many blades already. Then
with those blades, what I have done for people? All things were only about
function. Yes, that’s enough. No one expects more from a blade. But is it all?
Is it all I can do with a blade?
Before starting this table tennis business,
I was one of crazy amateur table tennis player. Newly bought blades used to
sleep on my chest or beside my pillows, the first night in my house. I could
not cover the blade surface with rubbers, so I kept on looking at the blade
several days, until I cover it with rubbers. When I covered it with rubbers, I
could still see the blade title and several sentences the maker wrote about the
blade.
Yes, they are not only about function, but
also about some emotional attachment. I gathered money to buy them, and after
buying them, I wanted to make them play like what I dreamed of. I wished that
they could understand what my wish was. I wished I could insinuated what I was
into the blade, pretending that they have soles.
Was I the only crazy maniac?
I don’t know what else other people are
doing with their blade. But I was that way.
In 2006, just after becoming the agency of
Tibhar in Korea, I had some talk about blade with the president of Tibhar. I
asked whether it was possible to insert one gem onto the blade. But he could
not understand me. He explained if I make a blade feminine way, then women will
not buy it, nor men either. Because women wanted to play like men, and men did
not like to show like women. But I could not agree with his explanation. It’s
not about woman or man. It’s about how to deal with a blade. I wanted to
eulogize it with something shinny. It was not about adding weight, making less
functional. It was about how I can decorate, how I can make it look special,
unique, and different.
So, after 7 years later, I put gems on
Tibhar’s “INCA”.
This is huge thing. It was only small gems,
but it meant that I did not want to show the blade only a sports material. It
has to be more than that.
Ok, some people might now say that one or
two gems don’t make big change.
Yes, it’s true.
But it’s a symbol of what Nexy is trying to
change.
I now try to show NEXY’s philosophy through
nexy’s blades. And Arirang is one of them.
In 2013, what falls on my mind is “hope”.
With Peterpan, I wanted to make people
recall back their old days, as young children, what they used to dream of. With
Inca, I wanted to symbolize what I lost. Lost dream, lost hope. What we have to
take care, in order not to lose our valuable hopes. And with “ARIRANG”, I want
to think of the lost and oppressed dream we have in us. We call it they are not
possible to get. There are something we can not reach at all, and they should
stay only in our deep lost thoughts.
I became talkative, with my third
generation blades. And I don’t know this is good or not.
People from different country have
different feelings and ideas. Something practically exists in me related with
this blade will not affect on some other people from some other country, I know
that. Yes, I know that all these writings will be regarded only a marketing
tool from one Korean company for some people. Maybe now I’m gathering people
who don’t understand what one Korean man is trying to say.
Any ways, with all these possibilities,
there are something I have to say.
I want to explain what I’m doing. It’s not
only about a functional factor. You can read more than that, if you like nexy.
Now I try to relate this feeling with the
function of “arirang”.
As a third wave blade, Arirang uses “burnt
wood” in it’s center. And raw wood is covering the surface. But the composite
material, “aramid carbon layer” stays under two wooden layers, because I want
to keep the function of this layer deeper than the second layer, as the woman
is oppressing her deep sorrow in her whisper.
This blade symbolize what people, who lost
their beloved ones by war or by betrayal, might have gone through. But we know
we can not stay there for a long time, because that sorrow will do no good but
to kill us. Therefore, we need to overcome it, by twisting it with witty wish,
as the woman wishes in her mind, singing “get hurt on your feet on the way of
arirang”.
So, the composite layer, still remaining on
the third layer, has to exert it’s full power through two other wooden layers.
I had to find the optimum thickenss in those two layers. It had to be dealt
with depth, not thickness. I carefully decided with what thickness in all, this
composite layer will generate it’s full power when used for attacking, and this
composite layer will stay calm when it needs to absorb the power of coming
ball. It took long meditation and testing.
After two years of research, now I got the
final answer.
And Nexy is now proud of this result.
I don’t know this article make sense or
not. My writing is too much Korean. And I’m not sure it’s good for marketing or
not.
But I don’t want to be international in my
writing. I want to do what I can do best as a one man. I don’t want to pretend
I’m more than what I am. Emotionally bounded one man, under one culture and history.
But we are not very different in the end.
That’s what now people are realizing little
by little.
There is no nation to be enlightened, no
nation to be thought little of. Culture have many faces, and all faces have
their own value.
So, now Arirang is about to be released.
I skipped writing something about peterpan
, Inca and Oz, but please forgive me.
This article and Arirang itself will show
some more about understanding those other blades, too.
If you have any question about Arirang,
Inca, Peterpan and Oz, please, leave a message here. I will keep on writing
until I back up all those skipped information.
스포츠와 우리의 삶을 연관짓는 마인드가 마음에 듭니다 우리 삶은 모든것과 다 관련이 있지요 아리랑은 우리의 생각이 아닌 그냥 체화되어 있는 듯 합니다 한이라는 것 또 반대로 신명이라는 것 이런건 한국인이기 때문에 유전자에 이미 새겨져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리랑은 그 이름하나로도 아마 많은 사람을 끄는 블레이드가 될것입니다 저또한 그렇구요 저는 한때 한방을 거부해 리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솓아나는 한방의 본능을 실력이 늘며 참을수가 없네요 컨트롤과 한방 이 두개의 맺어지지 못할것 같은 인연을 어떻게 맺으셨을지 ㅎㅎ
역시 저도 칼릭스 시리즈보단 가변 반발력이 적다라고 듣고 시타하였지만.. 더 뚜렷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리랑이 더욱 가변반발력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튜닝되어서 일까요~ 칼릭스가 공이 맞고 튀겨나가는 걸 보고서야 가변반발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아리랑은 손에 전달되는 감각으로 그 느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의 가변 반발력이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예,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면요, 아리랑의 표면층은 히노키입니다. 그런데 히노키 소재는 실상 매우 약하고 부드러운 소재이지요. 이 소재를 단단하다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 부드러운 특성이 공이 두번째 층인 아유스층까지 와 닿도록 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즉 딱딱한 표면층이 면으로써 반응한다고 하면, 그리고 전체적으로 반응하면서도 또 한 점의 느낌은 둔하다고 하면, 히노키 소재는 공이 와 닿는 그 지점에서 두번째 층까지 감각이 전달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한 임팩트시에도 감각적인 면은 적어도 두번째 층이 느껴지게 되지요.
특히, "~~~ because I want to keep the function of this layer deeper than the second layer, as the woman is oppressing her deep sorrow in her whisper."에서 왜 "아리랑"인가 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후기를 잘 읽고 나서 이멜 한통 보냅니다.~~~ (tak.com님께는 쪽지만 가능하고 이메일이 안되어서 baru3141@naver.com님께 보냈습니다.~.~)
첫댓글 댓글 달고 읽기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
스포츠와 우리의 삶을 연관짓는 마인드가 마음에 듭니다 우리 삶은 모든것과 다 관련이 있지요 아리랑은 우리의 생각이 아닌 그냥 체화되어 있는 듯 합니다 한이라는 것 또 반대로 신명이라는 것 이런건 한국인이기 때문에 유전자에 이미 새겨져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리랑은 그 이름하나로도 아마 많은 사람을 끄는 블레이드가 될것입니다 저또한 그렇구요 저는 한때 한방을 거부해 리썸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문득문득 솓아나는 한방의 본능을 실력이 늘며 참을수가 없네요 컨트롤과 한방 이 두개의 맺어지지 못할것 같은 인연을 어떻게 맺으셨을지 ㅎㅎ
이 두 가지를 맺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과제를 풀지 못한 블레이드는 금방 사장되지요.
넥시가 하나의 블래이드 셋팅에 일년 반, 이년 여 세월을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죠~^^
공은 뻐른데 구질이 묵직하지 않다..
공이 날린다..
... 는 증상은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추구하지 않은 결과물이지요.
넥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서빨리 느끼고 싶네요 아리랑
예, 이제 며칠 안 남았잖아요~^^
잉카에 빠져있어서 아이랑도 기대 만발입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저도 칼릭스 시리즈보단 가변 반발력이 적다라고 듣고 시타하였지만..
더 뚜렷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리랑이 더욱 가변반발력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튜닝되어서 일까요~
칼릭스가 공이 맞고 튀겨나가는 걸 보고서야 가변반발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아리랑은 손에 전달되는 감각으로 그 느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리랑의 가변 반발력이 더 크게 와 닿았습니다.
굉장히 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겁니다에 제가 포함되겠군요 ^^
예,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하면요,
아리랑의 표면층은 히노키입니다.
그런데 히노키 소재는 실상 매우 약하고 부드러운 소재이지요.
이 소재를 단단하다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더군요.^^
이 부드러운 특성이 공이 두번째 층인 아유스층까지 와 닿도록 하는 역할을 해 줍니다.
즉 딱딱한 표면층이 면으로써 반응한다고 하면,
그리고 전체적으로 반응하면서도 또 한 점의 느낌은 둔하다고 하면,
히노키 소재는 공이 와 닿는 그 지점에서 두번째 층까지 감각이 전달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한 임팩트시에도 감각적인 면은 적어도 두번째 층이 느껴지게 되지요.
그런 면에서 조금 더 쉽게 느껴지셨을 겁니다. ^^
카보드 유저입니다. 아리랑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데 카보드에서 넘어가는데 무리가 없을까요? ^^ 양핸드 드라이브 전형입니다.
카보드, 칼릭스 2, 잉카, 아리랑... 표면층도 다르고 구성도 다르지만,
서로 서로 추구하는 지점들이 다 비슷해요.
옮겨 가셔도 물론 무리 없습니다. ^^
드디어 영문까지 자세히 읽었습니다. ^^
특히, "~~~ because I want to keep the function of this layer deeper than the second layer, as the woman is oppressing her deep sorrow in her whisper."에서 왜 "아리랑"인가 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후기를 잘 읽고 나서 이멜 한통 보냅니다.~~~
(tak.com님께는 쪽지만 가능하고 이메일이 안되어서 baru3141@naver.com님께 보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아, 해외 사이트에는 고쳐서 올렸어요~^^
여기는 그냥 올라갔네요~^^
감사~^^
아리랑과 "한"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카보드리썸등등 구매하여 분양하고 다시실력증대로 다시 고고님에게부틱하여 시타중 느낌받고 저에겐
다시느낀점 간략하게 적습니다. 무언가 나의 내공보다 능력보다 위기가 닥쳤을때 나의아가야 아이들의 우상인 변신로봇처럼 이런 블레이드가 저에게도 있었으면합니다.
그래서 나이30대후반이지만 만화가아직 글보다 먼저 눈에 보입니다.
이제 실망과답답함을 잉카로시작된 창조물로써 기억되고 나의손과 머리속상상력 판단이 일체가되어 만능변화무쌍 의 답이 아리랑이되었으면 하는 바램과 이더운 여름날씨에 기억될만한 얼음동굴이 될것입니다.
뭔가 심오합니다~^^
감사~^^
넥시는 작가도 뽑나요ㅠㅠ 주방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이 잠시 생각나게 하는 글입니다 .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중국 러버를 테스트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들도 상당히 좋아할 수 있는 블레이드 구성이구요, 두번째 층에서 받쳐 주고 히노키 표층에서 채준다는 기본 목표를 고려하면 끌림이 좋으나 반발력이 약한 중국 러버와의 상생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