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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
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9.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7, 19)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 6:19)
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2)
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
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하셨느니라(벧전1)
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하나님은 거룩하심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영광가운데 거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좌는 세가지 속성에 의해서 지켜진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경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영광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이 요구들을 결코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요구들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셨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신 것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과 영광의 요구들을 만족시킨 것이다.
거룩함의 헬라어 단어는 “하기모스”이다. “정결함(purification), 거룩함(holiness), 성화(sanctification)”란 뜻이다. 거룩함의 의미는 차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일 한 컵의 물에 차를 탄다면 그것은 “찻물”이 된다. 우리는 물이고 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한 “차”이다. 우리 안에 차가 들어올 때 우리는 차의 맛과 향기를 낸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스며들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와 맛을 낼 것이다 (고후 2:15). 즉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어 마치 차가 물에 넣어졌을 때 차의 성분이 물에 녹듯이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성분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외면적으로 하나님의 요소로 그리스도와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시키시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고후 3:18). 즉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맛과 빛깔이 우리 안에 역사하는 구원 안에 있는 생명의 과정을 말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심의 세 방면
누가복음 15장에서 주님은 세 가지 비유(아들-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성령-드라크마를 찾는여인의 비유, 탕자를 영접하는 아버지의 비유)를 드셔서 신성한 삼일성이 죄인들을 아버지께 다시 이끌고 계심을 계시한다.
1)성령에 의한 거룩하게 하심의 시작
첫번째 방면은 초기에 성령이 비추는 말씀으로써 우리를 찾으시는 거룩하게 하심이다. 누가복음 15장 8-9절에서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고 말한다. 성령은 마치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을 때까지 등불(하나님의 말씀)을 켜고 세심하게 잃어버린 죄인의 속 부분들을 살피며 깨끗하게 쓸고 찾으신다.
베드로 전서 1장 2절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선택하시고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어 그분의 피가 뿌려진 사람에게 편지한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의롭게 된 후에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다. 곧 거룩함에 강조점인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기 이전과 그분의 구속을 믿기 이전에 이루어진다. 이것은 믿는 이들이 순종하여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이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신 결과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선택에 근거하여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심과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믿게 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영역 안에서 수행된다.
그리고 데살로니가 후서 2장 13절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과 아들의 구속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영역 안에서 수행되고 있음을 가리킨다.
2)보혈에 의한 거룩하게 하심
두번째 방면은 법리적인 면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보혈에 의하여 거룩하게 하심이다. 누가복음 15장 4- 6절에서 주님은 비유로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는 세상으로 상징된 “들”에 있었다. 목자는 길을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들로 가셨다. 먼저 길을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들로 오신 것이다. 즉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요1:14).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것은 우리의 목자(시 23:1)요 길 (요 14:6)이신 주님을 떠났다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의 목자이신 아들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찾으셨다 (행 20:28).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구속을 성취하셨다. 셋째로 주님을 우리를 찾아 하나님의 집인 교회(딤전 3:15)로 인도 하시어 형제 자매들(벗과 이웃)과 함께 안식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신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어깨)과 사랑을 본다.
히브리서 9장 13-14절에서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한다. 그리고
10장 29절은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고 말하며, 13장 12절은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말한다.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다. 이 피는 구약 시대에 있던 짐승의 피와 대조된다. 구약 시대에는 유대인이 순종하는 모세의 율법과 짐승의 피가 뿌려지는 것에 익숙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신약 시대에는 모세의 율법과 짐승의 피가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피로 대치되었다.
3)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한 성화의 과정
세번째 방면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거룩케 하신다.
가) 우리의 몸은 죄가 거하는 육체(육신)가 되었다 (롬 7:18, 창 6:3)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특별한 목적을 갖고 창조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졌다. 즉 사탄의 죄가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로마서 7장 18절은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하며, 20절은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말해 주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근원은 죄와 악이 우리 육신 안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23절에서는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은 사탄의 독이 우리의 몸 안에 혼합되어 부패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24절은 “사망의 몸”을 언급한다. 이 구절들 에서 우리는 죄의 근원은 사탄이고, 죄는 사망을 가져옴을 알 수 있다. 즉 육신과 죄와 사망과 사탄은 하나이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1절까지에서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등과 같은 육신의 표현을 열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부패한 몸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육신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 우리의 부패한 몸이다.
로마서 8장은 우리가 육신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 성령을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성령의 움직이심, 생명의 성령의 법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13절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생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신을 처리하고 육신을 죽음에 넘길 때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자연스럽게 이길 수 있다. 즉 생명의 성령의 법을 순종하는 것은 우리 생각을 육신에 두지 않고 성령(또는 사람의 영: 연합된 영)에 두는 것이다 (6절). 우리는 생각을 연합된 영에 둠으로 말미암아 육신에게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육신을 따를 때는 죄를 짓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
나) 우리의 혼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죄로 변질되어 우리는 구부러지고 어그러진 본성이 되었다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본성은 선했지만 타락한 사람(옛 사람) 안에서 우리의 본성은 죄로 물들어서 구부러지고 왜곡되고 어그러진 본성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의 혼은 사탄의 본성으로 충만하다. 우리는 악한 생각을 하고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 질투하고 우리 자신(자아)의 의견으로 충만하다. 우리의 혼 생명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미워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6장 25절에서 주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혼 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혼 생명을 잃으면 혼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우리 악한 혼을 다루신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 점유된 혼을 거룩하게 하신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영으로부터 우리 혼 안으로 거룩한 본성을 집어넣는다. 동시에 하나님은 우리 옛사람으로부터 새사람으로, 사탄적인 생명이 충만한 데서 하나님의 생명이 충만한 존재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것은 우리의 온 일생이 걸린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열고 기도하고 우리의 죄를 자백함으로 우리 안에 그분이 확장되도록 허락해야 한다.
한 예로 돌아온 탕자는 누가복음 15장18-19절에서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슬러 죄를 짓고 아버지 앞에도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라고 아버지께 돌이킨다. 우리는 하늘을 거스르고 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죄를 지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 밖에서 탕자가 오기를 기다리셨고 돌아온 탕자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그의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말한다(22). 아버지는 아들에게 옷을 먼저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먹게 한다. 우리에겐 외적으로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의 옷이 필요하고 내적으로 유기적으로 영양 공급을 주고 강화시켜 주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려면 외적인 옷과 내적인 생명 모두가 필요하다. 이 옷과 살진 송아지는 우리의 공허함을 채워준다. 돌아온 탕자에게 입혀진 가장 좋은 옷은 그리스도이며, 살진 송아지도 그리스도이다. 우리의 거룩함의 표징이신 그리스도를 먹음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하게 된다. 탕자는 더 이상 외적으로 벌거벗지 않았고 내적으로 배고프지 않고 그리스도로 입혀지고 채워진다.
로마서 5장 10절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음을 가리킨다. 첫 부분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성취된 구속을 통하여 화목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에서 이미 구속되었다. 첫 부분에서 죽음이 언급된 후 두 번째 부분에서 생명을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고전 15:45). 이 부분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이다. 즉 구속, 의롭게 됨, 화목은 첫 부분인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밖에서 성취되어 우리를 객관적으로 구원한다. 거룩하게 됨, 변화, 같은 형상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운행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성취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객관적인 구속은 영원한 심판과 형벌에서 위치적으로 우리를 구속한다. 하지만 주관적인 구원은 우리의 옛사람(타락한 사람)과 자아(옛사람의 자신)와 혼 생명(옛사람의 생명)과 육신(옛사람의 생활)에서 기질적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그리스도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수의 샘이다
요한복음 4장에서 우리는 생수를 얻는 방법을 본다. 물을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의 예이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달라고 요청하신다. 대화 중에 주님은 “이 물은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14절). 여자는 곧바로”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대답한다. 사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명의 남편이 있었으나 만족이 없었다 (17, 18절). 그녀는 지금 남편 아닌 자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역시 만족이 없었다. 여섯 남자는 결코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육신을 대표한다. 즉 여인의 남편은 하나의 표적인데, 우리의 참 남편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고후 11:2). 우리의 인생에서 그리스도 외에 어느 것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사마리아 여인의 여섯명의 남편들은 그녀의 죄악된 온 생애의 역사를 가리킨다. 주님은 여인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신다(16절). 주님은 “나는 네 남편을 원한다. 네가 나에게 생수를 청하니 나는 너에게 네 남편을 청한다. 우리 서로 교환하기로 하자. 너는 생수를 얻는 대가로 네 남편을 가져오라”고 그녀의 양심을 만지셨다. 계속해서 주님은 그녀를 영으로 돌이키게 하신다 “아버지께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실제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지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는 영과 실제로 예배할 찌니라”고 말씀하신다 (23- 24절). 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은 영이라는 것과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사람의 영의 문제라는 것을 일러 주셨다. 오늘날 우리는 영 안에서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하는 것이다. 생수이신 그리스도를 마시는 것이 참된 경배임을 가리킨다.
우리가 우리의 영으로 돌이킬 때마다 우리 안에 마르지 않는 샘에서 생수가 솟구쳐 날 것이다. 이 생수를 마실 때 우리의 갈증이 해결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