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워커> 찰스 마틴 스미스 감독, 드라마, 캐나다, 103분, 2003년
아름답고 풍부한 영화다.
전형적인 서양의 도시인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뉴잇의 만남을 통해
삶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주고 있다.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속에 살아가는 토착인의 눈에
서양인의 삶이나 의식 수준은 그야말로 아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성숙은 환경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유기적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자의 장례식 장면이나 자신의 죽음을 알고 설원으로 걸어나가 죽는 모습은
숭고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부장품을 죽은 자의 곁에 묻어주는 장면을 보면서 새삼 삶의 유기성과 진실성을 생각했다.
효용과 이익의 시각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빈곤한 것인지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뜨겁다는 말을 이뉴잇말로 '아따따'라고 하는데, 우리말 '아뜨거'와 비슷한 말이다.
'뜨겁다'는 말은 몽골리안의 뿌리말에 해당하는데 그걸 영화 속에서 만나는 느낌도 각별했다.
= 시놉시스 =
극한의 생존 여정에서 피어난 순. 백. 색. 사. 랑.
북극해를 비행하는 베테랑 비행사인 ‘찰리’는 의욕이 넘치고 매사 자신만만한 남자. 자신의 생일날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비행을 나섰다가 우연히 에스키모 일행과 마주친다. 아픈 소녀를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에스키모인들.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 등을 돌리던 찰리는, 그들로부터 상아를 건네 받고서야 마음을 고쳐 먹는다.
거칠 것 없는 문명인, 티없이 순수한 에스키모 소녀를 만나다!
투명한 눈빛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에스키모 소녀와 함께 비행에 오르게 된 찰리. 하지만 얼마 못가 갑작스런 요동과 함께 비행기가 허허벌판 설원으로 추락하고 만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사람. 하지만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산산 조각난 비행기 잔해 속에서 남은 것이라곤 망가진 라디오와 소량의 식량 뿐.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다. 끝도 없이 황량하게 펼쳐진 설원을 보고 망연자실한 찰리. 하지만 소녀는 오히려 담담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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