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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백제는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지와 부여 군수리 목탑지를 비롯해 분황사탑, 미륵사지탑 등 많은 석탑들이 전래되고 있으며 신라의
전탑들은 경상도 지방을 중심으로 다수 확인된다.
고려시대의 佛塔은 가장 많이 남아있으나 대부분은 석탑으로 전란의 화마를 견딜 수 있는 탑의
재질이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목탑은 한 점도 남아있지 않고 유실돼 현재는 木塔址만 다수 확인될 뿐이다. 삼국시대부터 축조된 목조탑은 모두
소실되고 조선시대 法住寺 捌相殿 만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목탑으로 남아있다(조선시대 목탑으로는 전남 화순의 雙峰寺大雄殿을 들 수 있는데, 이 탑은
1984년 4월 화재로 전소됐으나 현재는 복원돼 있다). 조선시대 이전의 목탑은 한 점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조선시대 이전의 목탑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 목탑의 복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물이 바로 사진③의 靑銅製5層小塔이다. 청동을 주조해 만든 작은
탑이지만 고려시대 존재했던 목탑의 양식을 정교하게 표현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이 청동탑은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온전한 형태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으며 전체 높이는 30cm다. 1층과 2층의 기단부에는 약간 벌어진 난간을 둘렀고 정면에는 계단을 만들어 塔身部 1層의 문으로 통하게
했다.
1층에는 네 면에 모두 통하는 문을 만들었으며 상단과 하단에는 통창을 작게 만들었고 문 양 옆에는 창살이 있는 벽을 만들었다.
2층부터 5층까지는 네 면이 모두 창문이며 각 층의 지붕은 기왓골이 선명하고 지붕의 모서리는 약간 들어 올려 멋을 부렸다. 특히 1층 지붕의
모서리 네 곳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龍頭를 달아 佛法을 수호하는 의미와 함께 화려한 장식적 효과도 극대화했다(사진④). 가장 유실되기 쉬운 탑의
상륜부는 露盤, 覆鉢, 寶輪, 寶蓋, 龍車, 寶珠가 꽂혀있는 상태로 주조됐었으며 탑신과의 비례도 알맞다.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눠
탈부착이 가능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청동으로 만든 고려시대 목탑의 미니어처(miniature)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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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유물이 많이 남아있는 소형 청동탑들은 佛殿의 사리탑 역할이나 탑 속에 봉안된 사리장엄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여
금성산에서 출토된 백제 청동소탑편(사진⑥)이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이미 삼국시대부터 제작된 것으로 확인된다.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고려시대의 목탑을 이 작은 청동탑으로 복원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된 셈이다. 용접기가 없었던 고려시대의 금속공예 장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복잡한 구조의 이 작은 청동탑을 주조하고 이어 붙였을까?
선조들이 남긴 유물에는 유물의 중요도를 떠나서 우리 민족만의 고유한
감성이 이입돼 있다. 현시대의 우리들은 그 유물 속에 내재한 감성을 찾아내어 선조들과 교감하고 우리민족의 정통성을 깨우치며 미래의 후손들에게
바르게 전달해야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
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