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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1년 4월 9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409토] 기대보다 걱정이 큰 보건의료미래위원회
보건복지부가 발족시킨 '보건의료미래위원회'가 어제 첫 회의를 했다. 재정 위기에 빠진 건강보험을 구하고 합리적 보건의료체계를 모색하기 위해 발족된 기구다. 건강보험 지불체계 효율화 방안,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역할분담 방안 등 선정된 주제에서 보듯, '10년 후, 20년 후까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을 중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자리로 볼 수 있다. 당연한 논의이고,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사안인 만큼 기대를 갖게 한다.
건강보험 적자 문제가 당장 몇 년 후를 기약하기 어려울 정도이고, 보건의료체계의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는 점은 모르는 국민이 없다. 지난달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가 거의 상설적으로 열렸으나 건보재정 해법은커녕 1ㆍ2차 의료기관의 약제비 문제에도 명확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정심의 건의를 적극 수용해 복지부가 화급하게 미래위원회를 발족시켰으니 시선은 '미래'보다 '현재'에 쏠리지 않을 수 없다.
미래위원회는 건정심 논의를 확대하고 뒷받침하는 자리가 될 공산이 크다. 복지부도 이런 기대를 공공연히 밝히고, 미래위원회에 참여하는 각 단체들은 벌써부터 포괄수가제 총액계약제 등 논란 중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불과 2~3주 사이에 조직을 다급하게 구성하고 8월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면서 불과 4~5차례 회의를 통해 원하는 결정이나 결론을 얻을 수 있을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장기적 안목에서 미래위원회를 건강보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로 운영하겠다면 최소한 공급자단체와 가입자단체가 대등하게 참여토록 했어야 한다. 그 결정을 국민적 공감대로 삼으려면 오히려 가입자단체의 의견이 더욱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경실련 참여연대 민주노총 등과의 협의과정에서 참여인사의 격(格)이 문제가 돼 결국 공급자단체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됐다니 유감이다. 공급자단체끼리도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합의를 못하는 문제들인데, 가입자단체가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를 이룬다 한들 갈등만 더 커질 듯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409토] ‘서남표식 경쟁주의’의 비극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의 젊음들이 스러지고 있다. 그제도 2학년생 박아무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올해 들어 벌써 4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꽃다운 이들이 채 피지도 못한 채 지는 이 ‘잔인한 봄’이 지속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불안하다.
네 학생의 자살 원인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 바탕에는 ‘서남표식 개혁’으로 통칭되는 목표지상주의와 과도한 효율·경쟁주의가 깔려 있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2006년 취임한 뒤 ‘카이스트 발전 5개년 계획(2007~2011)’을 통해 카이스트를 세계 10위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그리고 구체적 수단으로 100% 영어수업, 차등 등록금제(징벌적 등록금제), 교수 정년 심사 강화 등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강제적 경쟁체제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내포하기 마련이다. 가장 논란이 된 차등 등록금제의 경우, 지난해 전체 재학생 7805명(2개 학기 연인원) 가운데 1006명이 기준 학점(4.3 만점에 3.0 이상)에 미달해 1명당 평균 254만원의 등록금을 냈다. 8명에 1명꼴이다. 이 제도는 모두가 기준 학점 이상을 받을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학생 전체를 가혹하게 정글로 내몬다. 싸움에서 지는 학생은 ‘패배자’라는 괴로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이라고 경쟁과 동떨어진 채 고립된 섬처럼 존재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대학의 경쟁 시스템이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합리성을 갖추었느냐 여부다. 서남표식 개혁은 이 동의와 합리성이 결여돼 있다는 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카이스트의 한 학생이 교내에 붙인 대자보에서 “카이스트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사천 학우다.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고 토로한 것은 일방통행식 경쟁주의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드러내 준다.
카이스트의 잔인한 봄을 통해 우리는 과도한 경쟁주의의 파탄을 목도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경쟁주의는 대학은 물론 우리 사회 곳곳에서 횡행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래 살아남는 것의 중요성이 극단적으로 강조되면서 우리 사회는 경쟁지상주의에 빠져버렸다. 카이스트 비극의 책임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자유로울 수 없고, 함께 변화를 모색해야만 하는 이유다.
카이스트는 과도한 경쟁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고, 자살 방지 카운슬러 제도 등을 조속히 확대해 학생들을 보듬어야 한다. 무엇보다 서남표 총장은 이 비극적 사태를 불러온 책임을 져야 한다. 아울러 긴 안목에서 대학의 본래 가치를 회복하는 방안을 찾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학은 그저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공동체 및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나의 위치와 목표를 고민하고 찾는 사유의 장이어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20110409토] 지금 정부 경제사령탑이 과연 누군가
도매물가를 나타내는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지난 3월 전년 동월대비 7.3% 올라 2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생산자물가는 2~3개월 뒤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앞으로 더 뛰어오를 것이란 이야기다. 정부가 작년 말부터 '물가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는커녕 인플레 기대심리만 키우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월보다 57%나 줄었다. 이달 들어서는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거래가 사라졌다. 새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전·월세 대책으로 내놓은 취득세 50% 인하 방침이 국회에서 통과될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동산을 살리겠다고 내놓은 정책이 부동산 거래를 더 죽이는 꼴이 돼버렸다.
정부 정책이 먹히지 않고 거꾸로 역효과만 내고 있다. 경제팀이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처방도 정확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저축은행 부실화 문제도 마찬가지다. 경고가 오래전에 나왔는데도 땜질 처방만 해오다가 뒷북만 쳤다. 구제역은 산 소, 산 돼지를 파묻을 만큼 파묻고야 끝났다.
서툰 의사 앞에서 조마조마하듯 국민은 경제팀이 처방을 내릴 때마다 불안하다. 전·월셋값이 더 뛰지나 않을지, 생필품 가격은 어떻게 될지, 저축은행에 돈을 계속 맡겨놔도 되는 건지, 가계 빚 문제가 터지는 것은 아닌지 경제팀에 묻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다. 정부가 금리와 환율 정책을 제대로 펴고 있는지, 대·중소기업의 양극화와 실업문제는 어떻게 풀어가려 하는지도 궁금하다.
국민들이 하나씩 이런 질문들을 던지지 않더라도 누군가 나서서 정부 정책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국민의 궁금증과 불안감을 풀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 정부에선 내가 책임자라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정부 정책이 번번이 헛발질만 하는데도 이렇다 할 설명도 없다. 상식적으로 국민에게 정부 경제정책을 설명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은 경제팀 수장(首長)인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윤 장관의 말을 들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하기도 힘들다. 다른 장관들로부터도 속 시원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지금 정부 경제사령탑이 기획재정부 장관이 아니라 달리 따로 있다면 국민에게 그 사람이 누군지나 알려줘야 한다.
[경향신문 사설-20110409토] 불안 키워 놓고 국가 전복 음모로 몰다니
최근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성물질 오염에 대한 공포는 분명 과장된 것이다. 극미량이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방사능 비’라는 낙인은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안의 깊이가 실제 일본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끼칠 실제 위험에 비해 과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왜 시민들은 이렇게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본이 원자로에 있는 방사능 오염수 1만t을 바다에 버린 것을 발표하기 전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주변국 바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 수시로 정보를 주고받는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못한 결과였다.
게다가 정부는 일본 원전의 방사성물질 유출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점검하는 대책기구도 두지 않다가 뒤늦게 설치했다. 수명 지난 원전의 연장 운영, 원전 건설 강행 등 원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깨닫고 있는 시민들의 정서와는 다른 대응책을 고집했다. 이렇게 원전 위험 불감증에 빠져 있는 정부가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깊이를 제대로 알 리 없고, 시민들 역시 그런 정부를 신뢰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정부는 방사성물질 오염을 걱정할 필요 없다는 발표 하나로 모든 오해가 다 풀릴 것으로 믿었던 모양이다. 민심의 소재를 정확히 알아야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불안도 잠재울 수 있다. 그런데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정부가 그동안 한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왜 정부 설명을 믿지 않느냐고 시민들을 타박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인터넷 루머를 막으라고 지시하자 경찰이 유언비어를 단속하겠다고 법석을 떠는 일이었다.
걱정한 나머지 위험을 과장하거나 잘못 알게 된 사실을 유포할 수도 있는 일을 두고 사실과 어긋나는 이야기를 하면 잡아가겠다는 식의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대처하고 있으니 시민들이 이런 정부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 불안을 불순세력이 조장했다며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국가를 전복하려는 불순한 행동”을 제압해야 한다고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다. ‘좌파 교육감의 휴교령’을 음모의 증거로 제시했는데 참으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아무리 둘러댈 데가 없다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 온전한 정신 같지 않다. 불안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불안에 좌우이념이 있다고 믿고 색깔론을 씌워 집권세력의 책임을 모면해 보겠다는 저 어리석음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망상에 빠진 이들이 국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보니 정말 불안이 엄습해 온다.
[서울신문 사설-20110409토] 징계대상자를 고위직 발탁하려 한 교과부
교육과학기술부가 자율형사립고인 서울 한가람고등학교 이옥식 교장을 학교교육지원본부장(1급)에 내정한 것을 놓고 비난이 거세다. 학생생활기록부(학생부)를 무단 수정해 징계 대상에 오른 인물을 어떻게 초·중등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요직에 기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명백한 반(反)교육적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이 교장은 스스로 자격없음을 인정하고 고사해야 했다. 교과부 또한 “학생부 변경 사실을 심사단계에서 알지 못했다.”는 한가한 해명 한마디로 슬그머니 넘어가려 한 것은 안이한 발상이다. 비록 청와대의 사실상 내정 철회로 교과부의 구상은 무산될 것으로 보이지만, 최소한의 인사검증 절차조차 소홀히 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한가람고는 15년 전부터 교원평가제를 시행하고 2006년에는 교과교실제를 도입했다. 지난해부터는 학점제도 실시해 교육개혁 선도 학교로 주목받고 있다. 그 같은 교육실험이 성공을 거둔 데는 1997년 개교 이래 학교를 이끌어온 이 교장의 공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부 조작’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교육지원본부장은 교육과정과 교원정책, 자율고·특목고, 유아교육 등 공교육 전반을 아우르는 막중한 자리다. 능력뿐 아니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교과부는 학생부 무단 정정 행위를 ‘학생성적 관련 비위’로 규정하고 중징계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 원칙과 정신은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이 교장은 학생부 수정에 대해 “엄격하게 잣대를 적용하는 데 기준이 되는 것을 이번에 경험한 만큼 그 부분을 오히려 소신있게 교과부 선생님들한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둔사(遁辭)일 뿐이다. 목적이 과연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성과지상주의의 폐해가 교육계 인사에까지 스며들어서는 안 된다. 교과부는 교육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인사의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409토] 과학벨트와 방폐장 묶어서 배정하라
동남권 신공항,LH 이전 갈등에 이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을 놓고 좁은 나라가 사분오열 충돌하는 형국이다. 행정수도 혁신도시에 이은 시리즈물이다. 급기야 과학벨트를 대전 대구 광주에 분산배치한다는 정부 검토안이 흘러나와 민심을 들쑤셔 놓고 있다. 정부는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신공항 백지화 과정처럼 미리 흘리고 여론을 떠보는 식의 언론플레이를 국민들은 이미 경험한 터다. 더구나 과학벨트 입지가 신공항 백지화의 보상용으로 이용된다면 이는 '공약 돌려막기'에 다름 아니다.
과학벨트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다. 입지 선정은 과학자들에게 맡길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논의과정을 보면 과학벨트에서 과학이 빠지고 정치가 들어앉은 '정치벨트'로 변질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등을 부추기는 뇌관은 단연 정치인들이다. 지역주의에 기대어 '충청도 핫바지론'을 내세우고,대통령의 인품까지 거론하는 마당이다. 여야와 당론을 떠나 지역별로 이합집산하고 자기 지역을 소리 높여 옹호한다. 입으로는 백년대계, 속에서는 표 계산이다.
과학벨트가 3조5000억원짜리 로또로 여겨지는 상황에선 어떤 해법을 내놔도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과학벨트 유치지역에 고준위 방폐장이 함께 가야 한다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어제 발언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갈등과 님비 현상을 푸는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방폐장 안전 여부에 대해선 과학자들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409토] 해외發 인플레이션 대책은 고통분담
물가오름세가 지속되고 있다. 농수산물은 물론 공산품ㆍ개인서비스요금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주부들은 장보기가 겁날 지경이라고 하소연이다. 더 큰 걱정은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달 생산자물가는 지난해 동기에 비해 7.3%나 뛰어 2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격을 결정하는 생산자물가지수는 보통 1~2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생산자물가 상승으로 올 들어 소비자물가는 지난 1월 4.1%, 2월 4.5%, 3월 4.7%로 오름폭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물가급등은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관련 제품 가격이 덩달아 뛰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제역 등으로 돼지고기 등 축산물 가격이 급등했고 이상기온으로 채소류ㆍ과실류 값도 뛰었다. 공급애로에 따른 '코스트 푸시'형 인플레이션인 셈이다.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에 따른 수요증대 요인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당면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해외 원자재 가격 급등이다.
정부는 구제역 종식과 봄철 농산물 출하가 늘어나는 이달부터 물가상승세가 누그러질 것으로 보고 있으나 두바이유의 경우 7일 115.22달러로 일주일째 상승했다. 구리ㆍ밀ㆍ원당 등 국제 원자재 시세의 고공행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해외발 물가상승의 경우 정책 대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수요과열에 따른 물가상승의 경우 금리인상 또는 정부지출 축소 등 긴축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러나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은 긴축정책을 펼 경우 성장과 물가 둘 다 놓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우려가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비억제를 당부한 것도 이 같은 딜레마를 반영한 것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인플레이션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이라면 정부ㆍ기업ㆍ개인 등 경제주체의 고통분담과 소비합리화라 할 수 있다. 정부는 환율ㆍ금리 등 거시정책변수의 효율적 운영과 함께 관세인하, 비축물량 방출 등을 통한 수급불안 해소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들은 생산성 향상, 기술개발 등을 통한 원가절감으로 가격인상 요인을 최대한 흡수해야 한다. 가계도 불요불급한 소비는 자제하고 에너지 절약 등을 통해 고물가시대를 헤쳐나갈 필요가 있다. 해외발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는 묘책은 없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 내일/육정수(논설위원)-20110409토] 무늬뿐인 사법·국방·정치개혁
사법개혁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법조계의 세 바퀴(법조 3륜)인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가 자기주장만 늘어놓고 국회는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있다. 큰 그림을 그려놓은 국방개혁도 그대로 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군(軍) 내부와 예비역 일부가 개혁안에 반대하고 있다. 정치개혁은 국민이 원하는 방향에서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
지난 한해 우리 사회는 사법과 국방, 정치의 개혁 필요성을 절감했다. 일부 이념적 편향 판결과 여전한 전관예우 관행, 판검사 비리가 사법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불렀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격에 대한 군의 대응 미숙은 국민의 안보 불안을 키웠다. 불법 정치자금 조달과 폭력 국회가 정치 불신을 더 심화시켰다. 이 세 분야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야하는 주춧돌이다. 부실상태가 계속되면 우리의 자유민주와 법치주의, 국가안보, 위민(爲民) 정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있다. 수많은 개혁 과제가 제기되고 논의됐지만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개혁의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모호하다. 사법개혁의 주체는 법조 3륜인가 국회인가. 국방개혁의 주체는 청와대인가, 군 현역과 예비역 장성들인가. 정치개혁의 주체는 국회인가 행정부인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인가. 논란 과정에서 그 어느 쪽도 국민의 눈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진정한 개혁 의지가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개혁은 외부 세력의 일방적 강요에 의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개혁대상 스스로의 변화 의지야말로 최대의 관건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사법개혁안과 국방개혁안은 그런 점에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대검중앙수사부의 폐지, 판검사 비리만을 수사하는 특수수사청의 별도 신설은 정치적으로 섣불리 결론 낼 성질이 아니다. 국회 요구가 있을 때도 특수수사청이 수사를 개시하도록 하는 것은 3권 분립에 어긋난다. 의원들의 비리를 조사하는 대검 중수부는 폐지하고 특수수사청의 수사대상에서 슬그머니 의원을 뺀 것은 너무 속이 보인다.
검찰의 중립적인 고유기능을 살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대법관을 20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대법원의 위상과 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국방개혁안의 핵심인 합동성 강화 방안은 반대 의견에도 경청할 대목이 있다. 각군(各軍)의 특수성에 입각한 주장을 집단이기주의로만 매도할 일이 아니다. 합동작전의 지휘체계를 합참의장→각군 참모총장(작전사령관 겸직)으로 상향 조정하고 합참의장에게 인사·군수(軍需)에 관한 일부 군정권(軍政權)을 주는 것이 실제 작전에서 효과를 나타낼지 면밀한 검토가 선행돼야한다.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이 그제 기자간담회에서 “참모총장이 작전사령관 역할을 하면 다른 업무에 소홀해지기 쉽다”고 한 말은 일리가 있다.
국회가 추진 중인 기업과 단체의 정치헌금 합법화는 ‘개악(改惡)’이지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성능과 시스템 향상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자동차라도 졸음이나 음주, 과속운전을 하면 사고가 난다. 안전 운행은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사회 각 분야의 개혁 작업도 그렇다.
개혁을 한답시고 조직이나 제도,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만 치중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구제역 파동과 일본 정부의 무능한 방사성 물질 처리 과정은 개혁의 중점을 어디에 둬야할지를 잘 말해준다. 개혁의 핵심은 사람이다. 자기 사명에 충실한 판검사와 군인, 정치인을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사법, 국방, 정치개혁안이 나와야 한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기선민(문화스포츠부문 기자)-20110409토] 첫 문장
“간단한 첫 문장에는 그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 말고 또 어떤 역할이 있을까? 바로 두 번째 문장을 읽게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카피라이터 조셉 슈거맨이 저서 『첫 문장에 반하게 하라』(1998년)에서 한 조언이다. 첫 문장은 첫인상이다. 헤밍웨이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그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한 문장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진실한 문장’이 그리 쉽게 떠오르겠는가. 첫 문장 쓰기의 고통이 자주 얘기되는 건 이 때문이다. 소설가 김훈의 ‘첫 문장 탄생기’는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칼의 노래』를 쓸 때 그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한 줄에서 막혀 버렸다.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를 놓고 극심한 고민을 한 탓이다. 결국 그는 후자를 택했다.
탁월한 문학작품은 종종 탁월하게 시작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도 그렇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세상에, 소설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이 문장에 놀란 나머지 소파에서 굴러떨어졌을 정도다.
비범한 첫 문장은 다른 작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에이더』에서 “행복한 가정들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정은 엇비슷하다”고 쓴 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머리를 변형한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미국의 서평 전문지 아메리칸 북리뷰는 ‘첫 문장이 뛰어난 소설 100권’을 뽑기도 했다. 1위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고 해 두자.” 장대한 이야기와는 대조적인, 싱겁기까지 한 출발이다. 물론 첫 문장만이 아니라 작품 전반의 완성도를 고려한 선정일 터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 미국에서 번역 출간돼 8일 현재 아마존닷컴 40위권 안에 진입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엄마에 대한 글을 오래 고민해 왔지만 쓰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 문장이 불시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엄마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농축된, 흡인력 강한 한 줄이다. 두 번째 문장, 그 이후를 계속 읽게 만드는 건 물론이고.
[경향신문 칼럼-여적/노응근(논설위원)-20110409토] 어른도 모르는 초등 수학
‘我間店家李三公 衆客都利來店中 一序七客多七客 一序九用一房室(여관업을 하는 이가(李哥)의 집에 손님이 많이 몰려왔다. 한 방에 7명씩 넣으면 7명이 남고, 9명씩 넣으면 방 하나가 남는다)’. 조선시대 수학책 <산법통종(算法統宗)>에 나오는 손님과 객실 수를 묻는 문제다. 한시(漢詩) 형식을 빌린 점이 이채롭게 느껴진다. <산법통종>은 ‘서민 수학’이 융성하던 16세기 중국 명나라 시절에 출판된 대표적인 초급 수학책이다.
세종대왕은 수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직접 공부까지 한 왕이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산수를 배우는 것이 임금에게는 필요가 없을 듯하나 성인이 제정한 것이므로 공부하고자 한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세종의 수학 교과서는 원나라 주세걸이 지은 <산학계몽(算學啓蒙)>이었다. 곱셈과 나눗셈, 무게단위 환산, 원주율, 분수, 제곱근 구하기 등이 주요 내용으로 지금의 고1 수준이라고 한다. 세종의 수학 사랑은 경상도 감사가 금은 같은 재물 대신, 명대 초기에 나온 수학책 <양휘산법(楊輝算法)> 100권을 인쇄해 바칠 정도였다.
이처럼 한국 수학은 중국 수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선시대에 많은 수학자가 있었다고 하나 조선 말까지도 수학책은 한글이 아닌 한자로 엮어졌을 뿐이다. 한자가 외국어와 같았던 서민은 수학에 접근조차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조선 수학이 관학자(官學者)를 중심으로 하는 ‘사대부 수학’에 머물고 대중화하지 못한 이유다. 일본이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수학책들을 기초로 ‘화산(和算)’이란 전통수학을 체계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수학은 수학책을 자기 언어로 고쳐 낸 것이 밑바탕이 됐다고 한다.
교사들로 구성된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은 최근 펴낸 <교과서를 믿지 마라!>에서 수학을 포함한 학년별 교과서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걸음마 떼자 달리라고 하는 1학년 교과서’ ‘아이들의 자신감을 갉아먹는 2학년 교과서’ ‘사교육의 유혹을 부추기는 3학년 교과서’ ‘열등생을 만들어 내는 4학년 교과서’ ‘라는 책의 차례만 보더라도 교과서의 문제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수학 교과서에는 학부모도 풀기 어려운 문제가 수두룩할 뿐 아니라, 개념이나 수준이 학년을 무시하고 뒤죽박죽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교과부 관리들은 필히 열독하고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신동춘(한국철도협회 상임부회장)-20110409토] 속도 붙는 융·복합화
우리는 융ㆍ복합 시대에 살고 있다. 근세 이후 학문과 기술은 전문화하고 있는데 이제 다시 조각들을 모아 퍼즐판을 맞추는 작업을 하고 있다. 크게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으로 나뉘어 분화를 거듭하다가 최근 재해석ㆍ재결합 작업이 진행되면서 융ㆍ복합이 가속되고 있다. 이는 인간과 사물, 현상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현상은 전체적인 모습을 쉽게 파악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 요동치는 세계 경제를 단순히 경제학적인 관점만으로는 원인 분석은 물론 처방도 제대로 제시할 수 없다. 세계 경제를 설명하는 데에는 각국의 복지정책, 조세제도, 환율정책, 노사문제, 정치시스템, 폐쇄 또는 개방 체제, 소비와 저축 수준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변수가 필요하고, 더욱이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 안에서 인간의 불확실한 심리와 행동이 작용하고 있으니 수리적인 모형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융ㆍ복합을 촉진하는 또 다른 요인인 인간 욕구도 진화하여 더 편리하고, 욕구를 한 번에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ubiquitous) 해결할 수 있는 종합적인 기술이나 시스템을 요구하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기술, 문화ㆍ예술, 네트워크 등 광범위한 분야가 포함되어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진화함에 따라 새로운 상품, 서비스, 시스템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좋은 예로, 통신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외에 컴퓨터와 인터넷 등을 접목시키더니 최근에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킹의 복합적인 기능까지로 확대되었다.
최근 철도에도 스마트폰이 응용되고 있다. 열차 내부를 여행 외에 편리한 사무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열차 운영ㆍ유지 기능 중 많은 부분을 스마트폰이 담당하고 있다. KTX도 다양한 복합기능을 갖춘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객실에 인터넷 사무공간을 만들고, 개인용 화면을 통해 문화 콘텐츠와 도착지에 관한 각종 정보가 제공되는 등 항공기 못지않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驛舍)도 각종 편의ㆍ상업시설 외에 디자인, 건축, 예술, 첨단 기술이 결합된 도심의 중심 공간으로 만들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