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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결가부좌 명상도량 자비선원 원문보기 글쓴이: 희작(喜鵲)
죽음을 체험한 사람은 우리의 공통된 체험 밖에 있었던 까닭에 그것을 무슨 말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을 겪는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체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기가 지극히 어렵다고 입을 모아 강조한다. 자기가 체험한 바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형용사나 부사만 가지고는 그것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 어려움을 어떤 부인 체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정말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말이란 모두가 3차원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내가 기하학을 배울때는 3차원 이상은 없다고 들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러나 그건 잘못이었다. 4차원의 세계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이나 다음에 올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나는 3차원적인 언어를 가지고 저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만 그건 정말 부적당한 일이다. 아무리 비슷하게 이야기해본다 해도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완전한 설명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체험자들 상당수가 의사나 다른 사람에 의해 '그가 죽었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다행히 별다른 반응이 없자 그들은 진찰을 계속했다. 내가 진찰을 저지하니까 그들은 전화를 걸러 가서 의사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박사님, 환자가 죽었는데요. 그러나 나는 죽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몸을 움직여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알리려고 하는 것만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회복시키려고 애를 쓰는 동안 나는 그들이 나한테 무슨 주사를 몇CC 놓아주어야 하겠느냐는 둥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사 바늘이 찌르고 들어가는 감각은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이 나를 건드리는 것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런 보고들은 현장에 있었던 의사들이 얘기하는 바와 전적으로 일치한다. 예컨데 어떤 의사가 말해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여자환자가 하나가 있었는데, 뇌막염 수술을 하려는 참에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점차 풀려지고 있었다. 회복을 시켜보려고 아무리 애를 썼으나 신통한 효과가 없길래 꼭 죽은 줄만 알았다. 그래서 다른 동료 의사에게 꼭 한 번만 더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포기하자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이 성공했는지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고 그녀는 회복이 되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서거나 가까이 하는 순간 많은 체험자들은 여러가지 음색의 청각적인 감각을 체험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그 소리는 어떻게 생각하면 몹시 듣기 싫은 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복부수술을 하다가 약 20분 동안 죽어 보았던 한 남성은 몹시 불쾌한 소음이 머리 속을 왱왱 울려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여성 체험자 한 사람은 의식불명 상태에서높은 금속성의 울림을 들었는데 그 소리는 꼭 윙윙하는 것 같았다고 하면서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는 듯한 상태에서 저멀리 아득한 곳으로부터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풍경 소리 같았다"고 말했다. 복부의 내출혈 때문에 죽었다가 살아난 한 여인은 기절하는 순간 "아름답고 장엄한 음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고 말하고 있다.
소음 소리를 듣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체험자들은 어떤 깜깜한 공간 속을 빠른 속도로 관통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고 한다. 이 깜깜한 공간을 지칭하는 말로는 여러가지 용어가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다르기는 하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전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 터널 이야기와 관련한 체험 사례를 들어보자. "국부마취를 받다가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호흡이 정지됐었다. 그러자마자 나는 그 깜깜한 진공 속을 초스피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속은 꼭 터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유원지에 가서 놀이기차를 타고 신나게 달려가는 것 같았다." 중병을 앓다가 갑자기 눈동자가 풀리고 육신이 차가워져죽음에 접근해본 적이 있다는 한 남성 체험자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깜깜한 진공 속을 헤매고 있었다.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기는 하지만깜깜한 진공 속을 달려가는 것 같았다고 밖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 자신의 의식만은 또렷또렷했다. 마치 공기 없는 원통 속에 갇힌 것만 같았다. 반 쯤은 이승에 있고 반 쯤은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체는 바로 자신의 육체다. 우리는 물론 '마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을 무척 허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처럼 육신 안에 머무르는 방식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든 일로 되어 있다. 임사 체험자들 역시 그런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마찬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깜깜함 터널 속으로 빠져들어간 순간 굉장한 놀라움을 느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단계에 이르러 죽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육신을 저만치 떨어진 위치에서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11살 나던 해 나는 나의 형과 함께 어떤 유원지에서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형과 나는 수영을 하러 갔는데 다른 몇 사람들도 함께 따라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호수 건너편으로 수영해 가자고 제의를 했다. 몇 차례 그래본 적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기로 하고 헤엄을 쳐갔으나 그날따라 웬일인지 도중에서 가라앉고 말았다. 몇 번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하다가 급기야 의식을 잃는가 하더니, 나는 갑자기 나의 바깥으로 뛰쳐나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의 몸은 내가 바라보는 저만치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고 있었다. 나는 뒤쪽에서 약간 오른편으로 치우친 방향에서 나의 육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몸 밖에 있으면서도 나 자신은 계속 일정한 형체를 갖추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공기나 새털마냥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대부분은 처음 순간엔 자신의 육체 안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애를 쓴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되돌아갈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또 어떤 체험자들은 겁이 났다고도 말하고 두려웠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체험자들은 육신을 벗어난 후에도 그 어떤 다른 형체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어렴풋하게나마 증언하고 있다. 비록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으나 어떤 묘한 상태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형체'는 그야말로 인간의 현존 언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체험사항 중의 하나다. 설명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장애가 될 정도라 한다. 그에 관해 이야기한 체험자들은 누구나가 좌절감 비슷한 것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이야기엔 서로 공통되는 점이 없지 않다. 서로 다른 용어와 비유를 써가면서 설명하는데도 결국은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새로운 형체'의 일반적인 성격과 특징을 아주 비슷하게들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편의상 그것을 '영혼'이란 말로 부르기로 한다.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선 그들의 영혼이 그 어떤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육신을 벗어난 영혼은 아무리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하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발견한다. 방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 사실로는, 영혼이란 비록 이승의 사람들이 보기엔 현실감각을 결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 자체는 무어라고 묘사하긴 어려워도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이다. 각 사람의 말을 종합해보면, 그것은 둥글기도 하고 일정한 정해진 형태가 없는 구름 같기도 하지만 대체로 육신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얼굴이나 지체, 머리통에 해당하는 각부분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두리뭉수리처럼 되어 있긴 해도 윗부분, 아랫부분, 팔다리 부분의 구분이 분명히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천정에 매달려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회복시키는 광경을 바라보았다는 한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전히 형체를 가지고 있었다. 팔 다리를 쭊 뻗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팔을 움직일 수도 있었고, 한 쪽 팔이 다른 한 쪽 팔보다 체온이 높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도 있었다."
임사 체험자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음의 초기 단계에 다른 영혼들을 만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 영혼들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을 보다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조언하거나, 아직 죽을 때가 안되었다고 일러주면서 이승으로 되돌아가라고 말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출산을 할 때 그런 체험을 했다. 그때 나는 난산이었고, 다량의 출혈을 했기 때문에 의사가 포기를 선언하고 내가 죽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정신이 또렷또렷했고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그 순간 나는 그분들의 영혼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무리를 지어 방 천정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전에 잘 알던 얼굴들이었는데, 그 중엔 할머니와 학교친구의 모습도 들어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현존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모두가 나를 반갑게 대해주었고 나는 그들이 나를 보호하고 인도해 주기 위해 거기 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즐겁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참으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어떤 체험자들은 자기들이 만난 영혼들이 전에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낯선 사람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또한 죽어 있는 사이 만난 영혼들이 일종의 '수호자'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영혼은 이런 말까지 들려주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인도해 왔으나 이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어야 하겠다." 한 여성 체험자는 육신을 벗아나자마자 두 개의 영혼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모두 '영적인 협조자'로 느껴졌다 한다. 체험자들 중 어떤 사람은 자기들이 죽었을 때 '당신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안됐다'고 말해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나는 어떤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육체적인 감각을 초월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나보고 이승으로 되돌아가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두려움을 느낌이 없이 나의 육신으로 되돌아왔다." 사람에 따라 영적인 존재는 매우 모호한 형체를 취하고서 나타난다. "내가 죽어있는 동안 나는 어떤 상대방을 향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체를 구비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분명 현존하는 존재들이었고 이리 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무슨 의문점이 생기면 그들로부터 재빨리 답변을 들을 수가 있었다. 아무 염려말고 안심해도 좋다는 전갈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임사 체험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이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요소는 역시 어떤 밝은 빛과의 만남이다.
이 빛은 대개는 희미한 빛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신속히 밝아져가다가 급기야는 지상의 것으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휘황한 광채를 발하게 된다. 이 빛은 대개 제아무리 밝다 해도 눈을 상하게 하거나 부시게 만들지도 않고 주위 사람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방해가 되지도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 빛의 존재를 목격했지만 그것이 하나의 실체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또한 구체적이고도 인격적인 존재였다. 죽어가는 사람에 대해 그것이 베푸는 사랑과 온정은 그야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 빛은 죽은 사람의 전체를 포근히 감싸주고 맞아들이며 위로해준다. 빛의 존재는 죽은 사람 앞에 나타나자 마자 이미 그를 안내하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과 '빛의 존재' 사이의 교신은 앞서 말한 다른 영혼과 죽은 자와의 교신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체험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에 의하면 그들은 그 빛으로부터 아무런 물리적 음향이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대신 직접적인 영적 교신을 통해 상대방의 의사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 교신 과정에서는 오해나 거짓 같은 것이 손톱만큼도 개재될 우려가 없었다는 것이다. 빛의 존재는 자기 안에 끌려들어간 죽은 자를 향해 어떤 일정한 의사를 전달해 준다. 그 의사는 대개의 경우 몇 개의 고정된 질문형식으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가령 '당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든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가?' 또는 '살아서 무엇을 했는지 나에게 내세울 것이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삶을 가지고 무슨 일을 했는가'하는 등등의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질문은 모두 심오한 뜻을 담고 있긴 하지만 조금도 야단을 치는 듯한 기미는 없었다고 한다. 규탄을 하거나 위협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이 편의 대답 여하에 상관없이 전폭적인 사랑과 환영을 베푸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 까닭도 그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고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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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쥬디님 ^.~
고맙습니다.
좋은 정보로 말씀을 주시니
저 자신을 한 발걸음 한걸음 일깨워 가 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