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마티네(cafe.daum.net/gymatinee)영상음악회
2017년 2월 23일(목) 오후 2:00~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
1. 새로운 서커스의 탄생 1970년대에 발생한 뉴 서커스라고 불리는 새로운 움직임은 기존의 서커스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엽까지 만연했던 현란하고 감각적인 볼거리, 위험을 불사하는 묘기는 더 이상 새로운 시대의 관객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기예를 중요시했던 초기의 서커스의 형태로 회귀하려는 조짐도 있었다. 뉴 서커스는 더 나아갔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공연 미학에 근거를 둔 예술적인 서커스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2. 꿈의 세계를 현실로-태양의 서커스(Crique du Soleil) 현존하는 서커스단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태양의 서커스, 그러나 시작은 캐나다의 퀘벡 주(州) 근처에 작은 마을에서부터였다. 갖가지 기예를 가진 길거리 곡예사들이 모여 하이힐 클럽이라는 것을 결성하였고 그 일원 중에는 태양의 서커스 창설자인 기 랄리베르도 있었다. 1984년 캐나다 발견 400주년 기념 축제에서 기 랄리베르는 하이힐클럽을 서커스단으로 조직하여 ‘태양의 서커스’라는 공연을 펼쳤다. 그 공연의 성공에 힘입은 기 랄리베르는 같은 이름으로 서커스단을 창단하기에 이른다. 태양의 서커스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고, 현재 미국의 라스베가스와 올란드에 6개의 상설공연 그리고 전 세계를 무대로 7개의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에 내한하는 <퀴담> 역시 순회공연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태양의 서커스는 창단 20년 만에 연매출 6천억 원, 기업가치 1조 2천억 원에 도달했으며, 이러한 액수는 서커스 산업의 대부 격인 링잉 브라더스(Ringing Brothers)나 바넘 앤 베일리(Barnum &Bailey)가 100년에 걸쳐 이루어온 매출 수준이라고 하니 태양의 서커스가 얼마만큼 큰 성공을 거둬왔는지 알 수 있다.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신화를 논할 때, 경영가적 마인드와 예술가적 자존심을 동시에 지닌 창설자 기 랄리베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그가 없다면 지금의 태양의 서커스도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 랄리베르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았던 창단 초기에 라스베가스의 미라지 리조트 그룹과의 계약을 따냈으며, 이후 라스베가스란 도시를 도박뿐만 아니라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아름다운 서커스로도 유명하게 만들어왔다. 또한 창단 때부터 수익의 대부분을 다음 작품에 재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현재에도 수익의 40%라는 막대한 자본을 신작에 쏟아 붇는다. 한 예로 2005년 첫 선을 보인 <Ka>에서는 보잉 747 여객기보다도 무거운 무대세트를 만들었고 그 무대를 360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고 있다. 1998년에 시작한 <O>에서는 무대에 5600여 톤의 물을 채워놓고 수중과 수면 위를 넘다들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인재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스카우터들을 통해서 재능있는 공연자들을 찾기 위해서 분투하는데, 변방의 작은 서커스단을 찾아가는 가하면 체조와 수중발레의 올림픽 메달리스트까지 섭외한다. 무용수나 뮤지션 같은 예술가들조차 섭외대상의 예외는 아니다. 태양의 서커스는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한 인재를 찾아내고 훈련시키는 수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바로 그들의 공연이 그것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