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기행>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cia)<9>
6. 옛 이슬람(Islam) 왕국의 수도 그라나다(Granada)
산타페 협약(까톨리카 광장) / 누에바 광장 /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 성 요한 성당
스페인 남부의 그라나다(Granada)는 인구 20만 정도의 작은 도시로, 동남쪽에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있는데 최고봉 무라센이 해발 3,479m이다. 여기에서 발원한 다로(Daro)강은 거의 복개되었지만 작은 물줄기가 알람브라 언덕 밑을 흐른다. 그라나다는 고도 689m의 고원 도시로 날씨가 쾌적하다.
이곳은 스페인이 제일 남부지역으로, 지중해를 건너면 곧바로 아프리카(Africa)다 보니 아프리카의 무어(Moor/무슬림)족이 상당히 오랫동안 점거하여 지배하던 곳이다.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는 ‘톱날’ 또는 ‘눈 덮인 산맥’이라는 뜻인데 위도가 낮은 지중해 연안의 이곳에 스키(Skii) 슬로프가 있어 겨울이면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내가 갔던 9월 말에도 새하얀 눈이 벌써 덮여있었다. 미국 서부(西部)를 여행할 때 모하비(Mojave) 사막 근처에도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본 적이 있는데 미국에서 제일 높은 산 휘트니(Whitney/해발 4,418m)도 이 산맥에 속해 있다.
옛 이슬람 왕국의 이름이자 도시 이름인 그라나다(Granada)는 ‘석류’를 의미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이 지방에는 석류가 많이 생산되고 시(市)의 문장(紋章)에도 석류가 그려져 있다. 또 무어인에게 정복당했을 때는 ‘가르나타(Gharnata)’라고 불렀는데 ‘이방인들의 언덕’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그 말이 변하여 ‘그라나다(Granada)’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說)도 있다고 한다.
시의 중앙에는 고딕식 건물인 그라나다 대성당(Catedral de Granada/1523~1703)이 있고, 이 성당에는 페르난도와 이사벨 여왕의 납골당이 있는 왕실 예배당 카피야 레알(Capilla Real)이 붙어 있다.
시의 북동쪽에는 그라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인 알바이신 지구가 있고, 남쪽은 다로 강과 맞닿아 건너편 언덕 위에는 무어인들의 궁전인 알람브라 궁전과 그 궁전을 지키는 알카사바 요새, 그리고 술탄(Sultan)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헤네랄리페(Generalife) 궁이 서 있다.
이곳 그라나다(Granada)는 기원 전후, 신성로마제국이 카르타고(Carthage)를 밀어내고 점령한 후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로마가 쇠퇴한 8세기 초에는 아랍계 무어인(Moors)들이 점령하면서 이슬람교가 급속히 퍼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이들이 이베리아(Iberia)반도 전역을 장악한다.
무어인들은 이곳에 이슬람(Islam) 왕국인 그라나다 왕국을 세워 260여 년간(1238~1492) 통치하면서 찬란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우는데 이때 이슬람 문화의 정수(精髓)라 일컬어지는 알람브라(Alhambra) 궁전이 건축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수많은 무데하르(Mudejar)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들이 들어서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무슬림(Muslim) 흔적들이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그 후, 로마교황청에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을 몰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마침 아라곤(Aragon) 왕국의 페르난도(Fernando) 왕자와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 공주가 결혼하여 두 나라가 통합되자 이사벨이 앞장서고 기독교 왕국들이 힘을 합쳐 그라나다를 압박한 결과 마침내 1492년에 그라나다 왕국이 항복하면서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이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이사벨(Isabel I) 여왕 부부는 스페인을 통일하고 이교도를 몰아낸 공로 및 아메리카대륙 교화의 공로를 인정받아 1496년 교황 알렉산드르 6세로부터 ‘가톨릭의 왕(Los Reyes Católicos)’이라는 칭호를 하사받게 된다. 이후 이사벨은 ‘가톨릭교도 이사벨(Isabel la Católica)’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1> 그라나다 대성당과 왕실 예배당
그라나다 대성당 / 팻말에 내 세례명(Augustin) / 화려함의 극치 성당내부 / 성당 옆 그라나다 대학
그라나다 중심부의 그라나다 대성당(Catedral de Granada)은 원래 이슬람 사원의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1523년부터 1703년까지 180여 년에 걸쳐 개축과 아울러 신축을 하였다고 한다. 대성당 앞 광장과 주변은 온갖 상점들이 모여 있는데 대성당 자체도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초기에는 고딕 양식으로 시작하였으나 나중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되었고 내부 장식은 무슬림 양식도 활용되었다. 대성당의 주 예배당은 에스파냐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와 황금빛 내부 장식이 특징이며,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신약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바로 근처 골목에 그라나다 대학이 있어 강의실도 들여다 봤는데....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정문도 광장도 없고 골목 속에 강의실만 있었는데 대학도 여러 곳에 쪼개져 있다고 한다.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라나다 대학이 이러니 다른 스페인 대학들이야 말하면 무엇하리...
왕실 예배당 입구 / 여왕의 관(홀 가운데) / 지하의 진짜 관(棺) / 화려한 내부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왕실 예배당(Capilla Real)은 1504~1521년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은 화려한 건물로, 예배당 안에는 스페인 통일의 어머니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부부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이곳 그라나다(Granada)를 이슬람(Islam)의 손에서 되찾은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은 그라나다를 너무나 사랑하여 고향도 아닌 이곳에 자신들의 묘소를 만들기로 하자 곧바로 공사를 시작했지만
완공을 보지 못하고 둘 다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1521년 준공식과 함께 부부의 유해는 결국 이곳으로 모셨는데 나중 차녀 후아나 1세(Juana I)와 사위 펠리페 1세(Felipe I)도 이곳에 묻히게 되어 내부에는 이사벨라 여왕의 수집품과 다양한 성화들로 장식하여 대성당보다 더 화려하고 오래되어 오히려 역사적인 가치가 더 높다고 한다.
예배당 한가운데는 여왕 부부의 시신이 누운 조각물이 모셔져 있는데 바로 그 밑이 지하묘지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을 따라 열 계단쯤 내려가면 극히 소박하게 꾸며진 이사벨 여왕 부부의 소박한 관이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은 모두 다섯 개인데 나머지는 포르투갈 왕실로 시집간 장녀 이사벨의 아들 미겔 왕세자의 관인데 왕세자는 두 살 때 죽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