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창세기 22:12, 열왕기상 17:12, 요한복음 12:3
제목: 이삭, 가루와 기름, 그리고 향유
일시: 2014. 9. 7
장소: 라이프찌히 한인교회
I. 9월은 언제나 긴장의 한 달이다. 휴가와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와 새 시즌이 시작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고 여러 변화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저 역시 그러하다. 10월부터는 2014-2015년도를 시작한다. 이 9월 한 달 동안 앞으로 한해 일할 일꾼 임명을 위한 기도와 생각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28일 주일에는 발표를 할 것이다. 그래서 긴장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못한다고는 안할까? 제대로 역할분담이 잘 이루어질까? 팀웍을 어떻게 이루어가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지휘봉으로 싸인을 제대로 줄 수 있을까? 연주자들은 제때 소리를 잘 내주어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새로운 단원은 잘 적응을 할까?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임명으로 지체들의 역할을 분담하게 된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토의나 저울질을 하기보다는 기도 속에 임명한다. 왜 그러는가? 한분 한분 설득하고 부탁하기에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다 바뻐? 다 부족해? 다 피곤해? 그래서 기도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함께 역할을 분담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가자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은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3대 헌신의 인물! 그들은 누구인가? 이삭을 헌신한 아브라함,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을 드린 사르밧과부, 주님께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드린 마리아로 정하겠다.
II. 있을 때 헌신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있었다. 사르밧과부는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있었다. 마리아에게는 옥합에 향유가 있었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용을 위한 것이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재능을 썩이는 것처럼 속상한 것이 없다. 우리가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학위를 가지고 연주자로서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어도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슴이 아프다. 졸업을 하고 우리는 내가 공부한 것이 사용되기를 위해 노력한다. 나 가진 것이 이것이니 오케스트라와 테아터에서 사용하기를 바라고 나 가진 것이 이것이니 기업체와 일터에서 나를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돈을 가지고 있다. 돈은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쓰려고 버는 것이다. 지금 쓸 때 쓰지 못하고 사용하지 못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는가! 아끼고 아껴서 모아두었더니 나이 들어 힘이 없어 여행도 못 다니고 이가 나빠 먹을 것도 못 사먹고 건강이 안 좋아 약값으로 다 들어간다면 그 돈이 얼마나 불쌍한 돈이 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휴가 잘들 다녀왔다. 있는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썩어진다. 쓰레기가 될 수 있다. 가끔 냉장고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이 곰팡이가 나고 상하게 될 때는 더 이상 재료가 아니라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쓰지 않고 있으면 녹이 슬어버린다. 우리는 가진 것이 닳아 못쓰게 될지언정 녹슬어 못쓰게 해서는 안 된다.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대한 예의가 아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직무유기자이다.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가지지 못한 다른이들에게 절망감을 줄 것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화가 나실 것이다. 마치 종에게 달란트를 주고 먼타국을 다녀온 주인과 같이 말이다. 내가 가진 것을 사용하라는 요청을 받을 때 저는 언제나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두려움에 싸이곤 한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14).
그 “있는 것”은 존재의 만땅 즉 충만함 속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가치있는 것이어야 한다. 내게 꼭 필요한 것으로 있는 것이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이 아니다. 이삭, 가루와 기름, 그리고 향유는 어설픈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시간을 내더라도 바쁜 가운데 주어야 한다. 가끔 지체들이 “목사님 바쁘실텐데...”라고 하면 아주 기분이 좋다. 바쁜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주니 감사하다는 표현 아니겠는가! 그래서 여러분에게 드리는 시간이 값지기 위해서는 저는 저를 바쁘게 만든다. 저는 상대방이 편하라고 “아닙니다 한가해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가장 바쁠 때 주어야 한다. 음식도 먹다가 남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주어야 한다. 전에 한 집사님이 내게 아주 매운 고추튀김을 주었다. “목사님 너무 매워서 목사님 드려요”라고 한다. 내가 매운 것을 좋아하는 줄을 아는가 보다. 그때 마음을 안다. 드리고 싶은 마음을 그 말에 실어서 보내는 것을. 그런데 정말 “이거 못 먹을 것인데 목사님이나 드려야지”라고 하지 못한다. 남은 것이고 어차피 안먹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서 남겨 주는 것은 귀한 것이다. 헌신은 있을 때 해야 한다. 이삭, 가루와 기름, 그리고 향유는 그들 각자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III. 없을 때가 진짜 헌신의 기회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달라고 할 때 아브라함 자신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삭은 자신보다 더 자신이었다. 내 목숨을 줄지언정 아들을 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아들을 자신의 등뒤로 숨기고 없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르밧과부의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은 사르밧과부의 생명이었다. 그것으로 아들과 자신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킬 수 있는 생명이었다. 엘리야가 그것을 달라는 것은 즉 생명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사르밧과부는 “나와 내 아들이 먹을 것 밖에 드릴 게 없는데요”라고 할 수 있었다. 마리아의 향유는 자신의 전 재산이었다. 그의 오라비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 향유와 머리털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달라는 말과 같았다. 하나 하나 주고 “이제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하면서 마지막 도저히 줄 수 없는 것이 진정한 자신이다. “얘는 피아노 빼면 시체야”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생명되는 피아노를 드려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헌신이다. “드릴 게 없는데요”라는 생각이 들 때가 헌신의 때인 것이다. 진정한 자신만이 남을 때가 헌신의 기회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헌신의 때이고 헌신의 챤스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나를 버팅길만한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을 완전 연소시켜서 없애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할 때가 시간을 낼 때이다. 물질이 없을 때가 드릴 때이다. 바쁘고 힘들 때가 바로 해야 할 때이다. 시련이 있을 때가 감사하고 기쁨의 실력발휘를 할 때이다. 용서할 수 없을 때가 용서할 때이다. 사랑할 수 없을 때가 바로 사랑이 돋보일 때이다. 할 일이 많고 꿈이 많은 젊음의 청년의 시기가 여호와를 기억하고 그분을 꿈꿀 때이다. “주님 나중에 은퇴하고 일할께요”는 헌신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힘없고 능력없고 권한없고 돈없고 아무것도 없을 때의 헌신은 아름답지 못하다.
헌신은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행하는 것이다. 헌신치고 희생이라는 단어가 빠져 있는 것은 없다. 헌신적으로 일을 했다고 할 때 그것은 자신의 정열과 젊음과 물질과 시간을 아낌없이 드려서 했다는 것이다.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 주님의 헌신적인 은혜, 교회 안에서의 성도의 헌신적인 역할... 모두가 그렇다. 재정을 빵빵하게 밀어주고 사람도 일한 만한 사람을 다 붙여주고 모든 장비와 준비물들을 다 갖추어 준 다음에 헌신한다고 하면 헌신이라는 말이 좀 쑥스러워진다. 농담으로 “내가 오늘 점심 살께 니가 돈 내”라는 말과 같다. 가장 편하게 쭘바이슈필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을 본다. 훌륭한 분들도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를 가장 실망시키고 있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나름 조국을 위해서 헌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나라 일을 헌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민위에 군림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새누리당 송광호의원의 비리에 손을 대기가 어렵게 되었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는 면책특권이 있다. 그 외에 국회의원들의 특권이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3만5천원짜리 금빼지를 달면, 연봉이 대략 1억5천만원, 년2회이상 해외시찰지원, 공항귀빈실이용지원, 공항VIP 주차장 이용, 의원실경비지원 5천만원, 기족수당(매월 배우자 4만, 자녀1인당2만, 자녀학비 분기별 고등학생 446,700 중학생 62400. 하루만 뺏지 달아도 평생연금 120만원, 년간 450만원교통경비지원, 사무실전화요금지원 우편요금지원 차량유지비 지원, KTX 공짜 탑승, 야근식비지원, 정책홍보물 및 정책자료 제작비와 발송료, 비행기 비즈니스석, 최대 9명까지 보좌진 거느리는데 드는 비용 연간 3억9,513만원. 의원전용주차장 이발소 미장원, 헬스장 목욕탕 한의원 양의원 무료이용, 민방위예배군훈련면제, 건강보험료안내고 본인과 가족 무료진료, 국회의원간식비 연간 600만원. 그래서 국회의원1명 당 4년간 총 35억원정도 든다고 한다.
생색을 남의 것으로 다 내는 것이 헌신이 아니다. 헌신은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삭을 드리는 것은 진정한 헌신이었다. 사르밧과부의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은 헌신이었다. 옥합의 향유는 헌신이었다.
IV. 헌신은 나를 버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이삭, 가루와 기름, 그리고 향유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집중력을 흩뜨러버리고 우리를 흔들 수 있다. 그래서 “있는 것”은 헌신의 좋은 재료가 아니라 우리의 헌신에 가장 길을 막는 것일 수 있다. 있는 것을 버렸을 때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 되는 것이다. 있는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때 썩을찌라도 있는 것을 버렸을 때 가장 귀한 것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이삭은 비로소 진정한 약속의 자녀가 된 것이다. 사르밧 과부가 그 가뭄 중에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을 엘리야에게 드렸을 때 그것은 마지막 남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끊이지 않는 공급하심을 경험한다. 마리아가 향유옥합을 깨뜨렸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사역인 십자가에 동참한 여인이 된 것이다.
헌신은 의무가 아니요 헌신은 특권인 것이다.
헌신은 소비가 아니요 헌신은 생산인 것이다.
헌신은 손해가 아니요 이익이다.
헌신은 내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 것이다.
헌신은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요 가장 지혜로운 자의 모습이다.
헌신의 기회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