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추억은 모두가 수채화 화폭이었어라!
솔향 남상선/수필가
5월 중순경 교외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트랙터로 모내기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걸 보는 순간 60여 년 전의 골동품 시절 고향의 모내기 정경이 연상되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모내기 하던 그 모습이 말이다. 이 논배미 저 집 논에서는 일꾼들이 농부가에 모심는 손이 분주했다. 아낙들은 밥 광주리를 이고 종종걸음 치느라 땀 흘렸다. 노인들은 잔소리인지 훈수인지 심심치 않게 참견하던 그 시절이 눈에 어른거렸다. 태평성대 요순시대가 따로 없었다. 그 시절 내 고향이 강구연월(康衢煙月)이요, 화폭에 담으면 한 장면 한 장면이 수채화였다.
마을에서 큰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힘을 합치고 마음을 같이했던 육력동심(戮力同心)’을 몸소 실천했던 우리 마을 사람들이었으니 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랴?
강산이 여러 번 거듭나는 세월을 뒤로 했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 모습은 지울 수가 없다. 홍수로 보(堡)가 크게 터져 농로가 끊겼을 때에도 동리 사람들은 힘께 모여 힘을 합쳐 땅을 파고 삽질을 했다. 아니, 둑을 쌓고 가래질하며 아낙네는 새참을 장만하여 날랐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그 세월의 모습에 어찌 가슴이 먹먹하지 않으리?
어디 그뿐이랴. 동네에 초상이 나면 장례 마칠 때까지 그 어려운 일들을 동민들이 자기네 일처럼 몸을 사리지 않았다. 거기다 밤샘까지 해가며 상주를 든든하게 해 주는 미행(美行)도 특별한 게 아니었다. 또 발인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묘소 구덩이를 파고 봉분을 하며 매장마칠 때까지 그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자기 일이 따로 없었다. 이해관계 따질 것 없이 땀 흘리는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상부상조(相扶相助)란 바로 이런 것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 아닌가 한다. 큰 일 작은 일 가릴 것 없이 단합이 필요한 때는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하는 육력동심(戮力同心)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우리 마을 사람들이었다.
또 한 번은 생각하기도 싫은 화재가 고향 마을에서 발생했다.
‘불이야!’
소리에 놀란 동민들이 뛰어나와 양동이에, 다라에, 물을 퍼 들고 허겁지겁 뛰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면소재지에 소방서가 있기는 했지만 내 고향 미곡리는 소방서 혜택을 거의 보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소방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었기에 화중지병(畵中之餠)이 따로 없었다. 다행이도 잿간의 불씨로 번진 불이었기에 불길은 쉽게 잡히었다.
그 와중에도 가슴 뭉클한 일이 발생했다, 잿간 옆에 있는 헛간에서 암탉 한 마리가 타 죽은 것이었다. 화재가 진압된 후에 확인된 일이다.
어미닭은 타 죽었는데 병아리 5마리가 어미 품속에서 살아 있던 게 아닌가!
그것도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다른 닭들은 지옥 같은 화염에서 모두 피신을 했는데
아미 닭은 새끼를 지키느라 타 죽은 것이었다.
감동적인 장면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는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물이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숙연한 생각에 마음까지 아팠으나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고향 추억은 모두가 수채화 화폭이었어라!’
강산 여러 번 분칠한 세월이지만
그림 같은 고향의 추억은 하마 못 잊겠네.
흥겨운 농부가에 심는 손은 분주하고
참 나르는 아낙의 광주리에 발길은 쉴 새 없네.
힘을 합하고 마음까지 함께하는 육력동심이니
둑 쌓고 상여 메고 봉분 다지는 일도 어렵지 않구나.
화마(火魔)가 괴롭히고 할퀴고 큰 일 생겨 어려워도
육력동심(戮力同心) 하나 되니 천하에 무서울 게 있으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함께 하여 수채화를 그려내는 삶이니
천상천하 권력이 부러우랴, 억만장자가 탐이 날 수 있으랴!
고향 추억은 모두가 수채화 화폭이었어라!
첫댓글 오랜만에 그야말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수채화 한 폭을 보는 듯 합니다.
전국 곳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이제는 볼 수 없는 누런 황금빛 벌판도 그랍습니다.
자라나눈 어이들은 영영 볼 수 없는 사라진 그런 정경들.... 그래도 지켜지고 남겨져야 하는 것이 있을진대 아쉽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글 읽었네요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시길바랍니다
육심동력 으로 협업하는 마을 사람들...
어떤 보상을 위하는것도 아니면서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서로 돕는
그 인정스러움이 확연하게 그려집니다.
헌대사회의 이기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인정과 인간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미닭의 사랑이 참으로 위대하네요. 각박해져가는 세상에 훈기를 불어넣어주는 감동 이야기입니다. 인간성이 회복되어 보다 나은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