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봄나들이/靑石 전 성훈
설 명절을 앞두고 잠시 거리두기 인원 제한이 6명까지 늘어난 덕분에 바람을 쏘이러 나선다. 2호선 강변역 테크노마트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자동차를 타고 경기도 양평군 고바우 설렁탕 집으로 향한다. 살얼음이 녹은 남한강에는 철새들이 모여 앉아서 아침 놀이에 정신이 없다.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강변 나무들 모습이 강물에 비추고 뿌연 미세먼지 사이로 저 멀리 검단산이 고개를 내민다. 겨울 속의 봄처럼 추위가 잠시 물러가는 듯 하니 마스크를 쓴 채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표정이 밝아 보인다. 팔당취수장 주변 강물을 비추는 아침 햇살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팔당을 지나면서 연이어 나타나는 터널 속으로 자동차는 물 흐르듯 쏜살같이 달린다. 한 친구가 북쪽은 땅굴 파는 기술이 세계 제일이고 남쪽은 터널 파는 기술이 최고라고 너스레를 떤다. 두물머리 부근을 지나며 남한강을 바라보니 느긋하게 숲길을 걷는 사람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녹았던 강물도 두물머리로 들어서자 꽁꽁 얼었고 강 건너 산자락 외딴집 지붕 위는 모락모락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자동차가 ‘신원’을 지난다. 강 건너 산기슭에 덩그렁 하니 외롭게 서 있는 초라한 집 한 채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고 시골 초등학교 분교도 그 모습 그대로다. 잠시 추억에 잠겨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청량리 역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그 친구네 신원 별장을 몇 번 찾은 적이 있다. 펜션이나 전원주택이라는 말이 없던 때여서 그냥 별장이라고 부르던 오래된 옛이야기다.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걸어서 건너가 별장에서 장작불을 지피고 밥을 해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던 추억, 어느 해 가을엔 기타를 가져간 친구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에 취하고 달달한 술에 취해 달도 뜨지 않은 그야말로 깜깜한 밤을 등에 업고 숲길을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서로 살아가는 길이 달라 만나지 못하는 별장 친구, 아련한 추억 속에 빠져 오래되어 퇴색되고 빛바랜 세월을 더듬어볼 뿐이다.
내비게이션에 양평 고바우 집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니까 원래 가고자 하는 음식점이 아니라 다른 곳이 나온다. 운전하는 친구가 잘못 온 것 같다고 하더니 다시 정확한 이름을 입력하고 목적지로 향한다. 다른 친구 두 사람은 이미 지평 고바우 집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설렁탕 집에 도착하니 넓은 주차장이 자동차로 꽉 차 있기에 놀라서 어하고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평일이 아닌 일요일이라서 너도나도 집에서 나왔나보다. 설렁탕에 소주 한 잔씩 하고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커피숍엔 로봇이 주문대로 커피 서빙을 하여 사람이 해주는 것 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화장실에 가니 화장실 문 밖에 인상을 찌푸려서 입모양이 많이 비뚤어진 그림이 걸려 있다. 남자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안가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어떤 의미가 떠오른다. 화장실 볼일을 볼 때 제발 정위치에 서서 사용하라는 그림인 것 같다. 고바우 집에는 다른 곳에 유사상호를 사용하는 음식점이 있다면서 분점을 내지 않았다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았고, 옆에 황소가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는 그림이 붙어있다. 기발한 광고를 한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봄나들이 하이라이트는 작은 금강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이다. 붐비지 않는 지방도로를 한참 달리다가 찾아간 간현유원지 주차장도 그야말로 만원사례이다. 날씨가 풀리는 바람에 몸이 근질근질한 사람들이 모두 집에서 쏟아져 나온 듯하다. 하천 부지 옆 포장되지 않은 임시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걸어서 출렁다리를 찾아간다. 매표소에 가니 입장료가 3천이다. 3천원 중엔 이 지역 음식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2천원 상당의 티켓이 포함되어있다. 출렁다리를 걸으면 맥박이 빨라지는 친구는 출렁다리에 올라가지 않고 밑에서 기다리고 다른 친구들은 사람들 틈에 끼여서 족히 수백 개는 될 것 같은 계단을 오른다. 무릎이 좋지 않아서 올라갈 때는 괜찮지만 내려올 때를 생각하니 조금 걱정이 된다. 출렁다리에 이어 새로 개장한 울렁다리까지 가려면 산허리를 깎아서 만든 잔도(棧道)를 지나 최소한 한 시간이상 더 걸릴 것 같다. 다시 입구 쪽으로 되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시간상 무리라고 생각되어 그곳은 다음 기회로 남겨둔다. 사진을 찍고 숨을 고르며 주위 경관을 구경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니 오후 4시가 훌쩍 넘는다. 30년도 훨씬 전 이 곳에 두세 번 온 적이 있다는 친구가 “오래전에는 아는 사람들만 찾아오는 한갓지고 물 맑은 곳이었다.”고 한다. 두껍게 얼음이 언 하천에는 수영금지라는 안내판이 서있다. 강 이름이 궁금해서 주변을 살펴보니 다리 옆 강둑에 ‘섬강’이라는 알림판이 보인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에 있는 태기산(泰岐山, 1,261m)에서 발원하여 원주시를 지나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길이가 92㎞이라고 한다.
집으로 가려고 지방도로를 이용하다가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한동안 잘 달리던 차량들이 어느 지점에 이르자 막히기 시작한다. 일요일 저녁에는 고속도로나 지방도로나 길이 막히기는 마찬가지이다. 모처럼 나들이에 친구들과 끝없는 수다를 떨었더니 기분도 좋고 몸도 개운하다. 건강이 괜찮다면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먹고 마실 수 있을 때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때가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 나라 여행길에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 (2022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