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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 안에서 하나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행1:15-20)
2018, 10/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15-20절 말씀으로 “성령 안에서 하나 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태풍이 지나가면서 비를 내렸는데, 오늘이 10월 첫 주입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는데, 가을이 깊어지니 우리 신양단 권사님을 비롯해 나이 드신 분들의 건강이 신경 쓰입니다. 주변에서 건강관리에 더욱 신경써주시기 바랍니다. 10월에도 복음을 열심히 전하셔서 많은 결실을 맺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의 일과 복음전파는 성령이 충만해야 할 수 있습니다.(15절)
둘째로, 주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16절)
셋째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17절)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 따라 저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뜨겁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전까지 10일 동안 있었던 일의 기록인데, 가롯유다의 배반으로 궐석이 된 한자리를 맛디아로 채워 교회설립과 부흥의 기틀을 만듭니다.
또한 예수님을 銀30에 팔아넘겨 인류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가롯유다가 창자가 터져죽었고, 그가 받은 돈으로 밭을 사고, 제자 한명이 충원되는 것이 구약성경 슥11장과 시69편, 109편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당시 기준으로 약500년에서 1,000년 전에 기록된 하나님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전율을 느낍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확실하게 믿어야합니다. 또한 주안에서 형제들끼리 하나가 되어야 주의 일도, 복음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면서 믿음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말씀을 따라가면서 왜 성령 충만하여 형제를 사랑해야하는지, 주님을 믿는 믿음이 왜 중요한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의 일과 복음전파는 성령이 충만해야 할 수 있습니다.(15절)
본문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아멘.
15절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의 숫자가 120명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나 이 수는 생각보다 많은 수가 아닙니다. 사실 주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수십만 명이 넘었지만,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승천하신 후에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15:6절에 500여명의 성도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가들은 당시 유대인구가 400만 명 정도였다고 하는데, 주님이 부활하실 때 500명 정도가 보았고, 승천하신 후에는 불과120명 정도만 남았으니 생전에 주님이 남긴 열매는 50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창기 주님의 교회 성도는 500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성령세례를 받은 온전한 성도는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던 120명뿐이었습니다.(행2:1-3) 이 정도라면 우리 한국교회 내에서는 작은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수십만이 모이는 교회도 있고, 수만이 모이는 교회도 많습니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교회는 다 우리한국교회가 차지하고 있으니 주님께서 일찍이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14:12) 교회 싸이즈로만 본다면 이미 말씀이 성취되었네요.
그러나 교회가 크고 교인들이 많다고 해서 꼭 주의 일을 많이 하고 주님께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교세가 커도 주님께 책망들을 수 있고,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난받는 교회와 복음을 증거하며 영혼을 살려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냐? 아니냐에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아무리 큰 교회, 많은 교인이 있어도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그 빈자리를 세상의 여러 가지 것들이 채우기 때문에 교회는 소리만 요란해지고 분열과 분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가 크면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결정해도 움직이는데 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목회자가 대단한 카리스마가 없는 한 교회를 성령 충만하게 꾸려갈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성령 충만하지 못하니 갈수록 은혜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심령이 빈 수레가 되어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변하면서 사나워지며, 갈등과 분열과 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분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작은 교회라도 성령으로 충만하면 교회가 살아 움직이며, 예배가 기다려지고, 영혼을 보면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서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하나님말씀을 지키려고 애쓰지 않아도 내 삶 자체가 자동적으로 하나님말씀을 지키는 삶이 되며, 하나님이 기뻐하는‘종심소욕불유거’의 삶이되어집니다. 톰8:9절 말씀에“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와 사도들이 간절히 기도한 끝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저들은 더이상 죽음이 두려워 꽁꽁 숨어있던 비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다락방을 박차고 뛰어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여 유대에만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가 세웠고(행2:41; 4:4) 사마리아와 유대근방 족속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됩니다(행9:32-43) 그리고 안디옥교회를 통하여 온 아시아와 유럽과 로마까지 복음이 전해져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사실 교회에 교인들의 많고 적음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닙니다. 식구가 없어도 성령이 충만하면 힘차게 복음을 증거하며, 주의 사랑을 실천하여 정말 주님이 기뻐하는 그런 행복한 교회, 행복한 신앙생활, 행복한 삶이 가능해집니다. 반대로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면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영적으로 갈급하고, 주님 안에서 기쁨을 모르고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찾으려고 방황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만약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기쁨과 평안과 만족을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백성이 이 땅에서 만족과 평안을 누리도록 셋팅을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걸 얻었다 해도 잠시잠깐의 기쁨과 만족을 줄 뿐이지 얼마못가 새로운 욕구가 생겨나고 근심과 걱정 불안과 초조함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사람이 많다고 일을 잘하고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입니다. 그 안에 있어야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반면에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사람들 뒤에 숨어 마지못해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은 더욱 침륜에 빠지고, 영혼이 황폐해져서 결국 회복불능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여러분!!! 비록 소수의 무리라 할지라도 진실한 주의 증인들이 모이는 교회는 주님의 권능과 은혜 속에서 얼마든지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카톡에 인생황혼에 친구가 어떻고, 건강이 어떻고...이런 내용이 참 많이 오는데, 저는 복음을 전하느라 바빠서 그들처럼 황혼이 어떻고 그럴 시간이 없더라고요. 저들이 복음을 듣고 영혼이 교회로 나오는 것을 보면 희열을 느끼잖아요. 세상 기웃거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복음전하며 생명을 살리는 것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나부터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또 온 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기도에 힘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야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16절)
본문16절 말씀함께 읽겠습니다.“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아멘.
베드로가 가롯유다의 배신으로 빈 사도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형제들아’하고 부릅니다. 여기서 형제라는 호칭을 처음 사용하는데, 이때부터 교우들을 형제라고 부르게 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을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왜냐면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요1:12)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롬8:15-16; 갈4:6) 그래서 육신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관계일지라도 하나님을 다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에 영적으로는 부자관계가 아닌 형제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호로종교?)
그렇다면 어떻게 믿는 사람들끼리는 한 형제가 될까요? 예수님의 피를 나누어 가졌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형제는 부모의 피를 나누어가짐으로 형제가 되지만, 영적인 형제는 예수님의 피를 나누어가짐으로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 교우를 대할 때는 반드시 한 형제로 대해야합니다. 형제의 마음으로 대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피를 정면에서 더럽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분이나 지위고하, 남녀노소, 나라와 민족을 초월해서 또 외모나 지식의 수준, 신체적인 약함 때문에 차별한다면 그건 신앙인이기 전에 사람이 아닙니다. 거듭난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한 성도를 위로하고 이끌어주며 그들을 도와야합니다. 믿음의 형제는 육신의 형제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에서는 형제에게 사랑을 주고, 섬겨주는 것이지,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 섬김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분, 기독교에서 말하는 형제가 무슨 뜻일까요? 먼저‘형제’에는‘존귀한 자’라는 의미가 있는데, 주의백성들은 당신의 피 값으로 샀기 때문에 존귀한 자입니다. 다음은‘나와 동등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형제는 다 한 부모에서 나와서 형 동생의 관계는 있어도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한 아버지인 하나님께 속한 동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는 계급도 없고, 명령도 없고, 상하구분도 없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섬기고 세우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끝으로 형제는‘사랑의 대상’이란 뜻이 있습니다. 부모에게 있어서 형제는 다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아무리 못나고 연약한 형제라도 하나님께는 깨물면 아픈 존재들입니다. 깨물지 마십시오.
악하고 불의한 자들도 자기가족은 사랑하는데, 하물며 믿음의 백성이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불신자보다 더 악한 존재가 됩니다.(딤전5:8)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가진 형제들로 존귀한 자요, 나와 동등한 존재라는 것을 아시고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해주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다 한 가족이 된 형제들입니다.
우리가 정말 교회공동체 식구들을 형제로 알고 대할 때 우리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여 사랑과 기쁨이 넘치고, 또 은혜가 넘쳐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17절)
본문1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아멘.
본문은 베드로가 가롯유다를 회상한 말인데, 우리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이 직무’란 사도의 직분을 가리키는데, 예수께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부활승천하실 때까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것들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기롯유다와 제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이 알았습니다. 가롯유다는 12사도 중의 한사람으로 돈을 관리했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예수님과 교제했을 것입니다. 왜냐면 어느 단체나 교회도 돈을 다루는 것은 아무나 시키지를 않고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똑똑하고 인정받는 사람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롯유다의 끝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주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에게 유익을 주었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많이 아는 지식이 주님을 팔게 만들었고, 결국 자신까지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그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지식만 있었을 뿐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아시는지요? 예수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은 안 됩니다. 지식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공부와 설교를 통해서 주님을 지식적으로 만나는 것도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아는 말씀이 없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롬10:17)
그래서 성경지식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러나 그 지식이 신앙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롯유다와 똑같은 또 하나의 악한 자를 만들 뿐입니다.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도마복음을 비롯한 많은 책을 쓴 도울 김용욱씨가 구원을 받았을까요? 감리교신학대학 변선환학장, 홍정도교수를 비롯해 많은 신학자들이 주님께서 유일한 구원자 되심을 부인하며 어디나 구원이 있다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했는데, 구원받았을까요? 이들은 주님을 아는 지식이 믿음으로 연결되지 않고 가롯유다처럼 자신의 지적호기심과 자기만족으로만 끝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아는 지식이 높아가는 것은 환영할 만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반드시 믿음으로 연결되어 형제를 사랑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나타나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그 성경지식이 그 사람을 교만하고 부정적으로 사람으로 만들어 믿음에서 멀어지게 할뿐입니다.
제 베스트 중에 교회를 오래 다니다 실족하여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분이 성경에 대해 나름 많이 안다고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 때는 그분의 그 성경지식이 오히려 주님께 나오는 길을 막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차라리 몰랐더라면 더 쉽게 교회를 나왔을 뗀데 안다는 것 때문에,,,
여러분!!!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유익이 없습니다. 그것이 그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롯유다와 같이 자신을 멸망에 빠뜨릴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태산이 무너져도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주님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십시오 그래야 어떤 고난과 어떤 어려움이 와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