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 김혜진 / 민음사
처녀때는 꿈이 많았을 것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한 여자가 가정을 갖는다. 결혼과 함께 여자의 인생은 남편의 인생에 얹혀사는 존재가 된다. 아이를 낳고 여자의 존재는 딸에게 귀속된다. 딸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가 배운 것이며 언제나 정답만을 이야기한다. 가족이 인생이 되고 딸이 목표가 된다. 그 딸의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제목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제목 뒤에 이런 말을 덧붙이면 어떨까. 딸에 대하여 (쓰다가 나를 발견하는 이야기).
결혼 전에는 선생님이었다. 딸을 낳고 교습소로, 도배 일로, 유치원 통근버스 운전사로, 보험 세일즈로 구내식당 조리사로 그녀의 인생은 기구하다.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준 2층짜리 집이 그녀의 전 재산이다. 언뜻보면 부유한 삶처럼 느껴진다. 딸은 대학때 독립했다.
이야기는 딸이 엄마에게 돈을 융통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시작한다. 대학 강사인 딸은 대부분의 강사들이 그렇듯이 벌이가 일정치 않다. 매년 계약을 해야하는 위태위태한 삶을 산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돈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딸은 불법해고된 대학강사의 복직을 위해 투쟁한다. 알고보니 성소수자인 강사들이다. 딸도 성소수자다. 딸은 언젠가 자기도 저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며 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돈을 구하지 못해 딸은 집으로 들어 온다. 3개월치 월세 및 다른 비용을 지급하는 조건이다. 7년째 파트너로 함께 사는 여자가 함께 들어 온다. 엄마는 한 집에서 딸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죽기보다 힘들다.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106.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며?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며? 다른 게 나쁜 건 아니라며? 그게 다 엄마가 한 말 아냐? 그런 말이 왜 나한테는 항상 예외인 건데!
넌 내 딸이쟎아. 넌 내 자식이잖니!
123. 누구나 각자 살고 싶은 삶이 있는 거잖아요.
123. 삶이 어디 자기 한 사람 것인 줄 아니? 그런 삶은 없어.
엄마가 요양원에서 돌보는 사람은 친척도 친구도 없다. 요양원에 들어올 때 싸끌벅적했다. 그녀는 사회사업가였다. 그녀를 통해 많은 사람이 도움을 얻었다. 요양원에 많은 돈이 후원금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를 엄마가 혼자 돌본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치매가 깊어간다. 자기 과거도 차차 기억하지 못한다. 기자가 찾아와 인터뷰를 하려고하나 불가능한 수준이다. 요양원에서는 더 이상 그녀에게 값비싼 2인승 방을 내줄 이유가 없어진다. 기저귀와 소독용 거즈의 사용도 제한을 받는다. 반으로 잘라 쓰라고 한다. 급기야는 다른 요양원으로 그녀를 보내려고 한다. 엄마는 사무실에 찾아가 항의한다. 이러면 않된다고. 언젠가 자기도 저 자리에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딸의 생각과 동일하다. 요양원의 동료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충고한다. 이렇게 한다고 바뀌겠느냐고.
130. 늙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어떤 가능성들을 하나씩 베어 내면서 일상을 편편하고 밋밋하게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는지도 모른다. 무성하게 자라난 것들을 다 제거하고 마침내 평평해진 삶 너머로 죽음이 다가오는 모습을 주시하려고 애쓰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뭔가 시작하고 맞서고 싸우고 이길 만한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면서 무료하지만 안전하고 무력하지만 차분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돈, 효율의 문제로 유린되는 인권. 살아온 과정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세상, 현재 가진 것으로 평가되고 대접받는 환경에 속한 엄마와 문화, 종교가 만들어 놓은 틀에 가두어 놓고 한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꿈은 묵살되는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딸을 대비하여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무엇이 옳은지.
딸이 위험하다는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간다. 폭력이 난무한다. 그럴 수는 없다. 딸이 하는 일을 옆에서 바라본다.
164. 내가 이런 곳에 있다는 사실, 욕설과 비난이 향하는 바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현실, 모든게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서 있어냐 할까.
이제희씨가 다른 요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달려가보니 그녀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물건들은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엄마는 이송된 요양원에 가서 그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온다. 그녀는 엄마의 집에서 생을 마감한다. 엄마는 딸과 딸의 파트너를 받아들이지만 ...
197.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시대와 환경에 따라 도덕의 판단은 다르다. 흑인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때도 있었다. 물질의 힘에 뿐만 아니라 종교의 힘을 빌어서도 그 당위성이 인정받기도 했던 적이 있다. 돈이 가치의 판단이 되는 환경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딸의 입장을 생각해보자고,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고 작가는 이야기하는 듯 하다. (2018. 7.30 평상심)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요즘 부쩍 이런 소설이 더 맘에 들어옵니다. 전에는 그냥 지어낸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는데 이제는 거의 사실로 나의 일로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