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제비갈매기~!
묵집 과부를 마음에 품은 공 초시 어느 날 박 서방과 있는 걸 보는데…
밤은 깊어 삼경 때,
공 초시가 사랑방에 홀로 앉아 곰방대 로 연신 담배연기만 뿜어대며 시름을 달래고 있다.
그때 애간장을 끊듯이 울어대는 뒷산 소쩍새가 공 초시의 마음 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3년 전 부인을 저승으로 보내고 탈상도 하기 전에 무남독녀 외동딸이
석녀(石女)라고 시집에서 쫓겨나 친정 초당에 똬리를 틀었다.
부인이 이승을 하직한 것은 제 명(命)이 그것밖에 안됐고
외동딸이 과부 아닌 과부가 돼 친정살이하는 것도 제 팔자.
요즘 공 초시의 시름은 자신의 신세타령이다.
제 나이 이제 마흔일곱,
아직도 살날이 까마득한데 이렇게 남은 생을 홀아비로 외롭게 살아가려니 앞이 캄캄해졌다.
공 초시는 나이가 젊고 허우대가 훤칠한 것도 아니요, 재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젊었거나 곳간이 그득 찼다면 벌써 매파가 들락날락했을 터인데 공 초시에게는 곁눈질하는 과부하나 없었다.
공 초시 집은 보릿고개를 그럭저럭 넘기지만 부자는 아니었다.
중머슴이 하나 있지만,
공 초시가 사랑방에서 헛기침이나 하고 뒷짐 지고 마실이나 다니는 팔자가 되지 못해
머슴과 함께 밭매고 모 심어야 했다.
바탕 자체야 뚜렷한 것도 아닌 데다 땡볕에 호미질·써레질을 하다 보니 얼굴은 까맣고,
주름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켰다.
문제는 새벽녘에 하초가 뻐근해진다는 것이다.
공 초시는 요즘 고갯마루 묵집 출입이 잦아졌다.
탁배기에 묵사발을 먹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묵집 과부에게 눈독 을 들인 것이다.
서른여덟살 과부는 빼어난 미인은 아니 지만 수더분하면서도 때때로 눈웃음을 칠 때면 색기마저 풍겼다.
묵 한 사발에 탁배기 석 잔이면 12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 초시는 과부의 손목을 잡고 펼쳐진 손바닥에 20전이나 30전을 쥐여 줬다.
감자를 캐면 한자루 메다주고 타작을 하면 나락을 한말 보내주기도 했다.
과부가 고뿔이라도 걸려 묵집 문을 닫고 드러누웠을 때엔 배와 꿀단지를 들고 가
손수 배꿀찜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묵집 과부는 공 초시 애간장만 태웠다.
어느 봄날, 공 초시는 밭을 매고 오다가 냇가에 앉아 상념에 젖었다.
그때 냇가 바위에 암놈인 듯한 쇠제비갈매기 한마리가 도도하게 앉아 있고
수놈은 자맥질을 수없이 한 끝에 고기 한 마리를 물어 올려 부리나케 도도한 암놈에게 갖다 주자
날름 받아먹고는 수놈이 교미를 하려고 하자 꽁무니를 뺐다.
수놈이 또다시 자맥질을 해서 고기를 잡아 암놈에게 갖다 주자 받아먹고는 꽁무니를 빼는 짓을
수없이 반복했다. 공 초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을에는 묵집 초가지붕 이엉까지 이어줬지만 묵집 과부는 치마를 벗지 않았다.
공 초시는 섭섭함이 도를 넘어 화가 치밀었으나 냇가의 쇠제비갈매기를 생각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느 장날,
산 너머 사는 옛 친구들을 만나 국밥을 안주 삼아 탁배기를 진탕 마시고 헤어져 달을 보고
밤길을 걸어 고개를 넘다 불 꺼진 묵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울타리를 살짝 넘어 뒤꼍에 발을 딛자 안방 들창으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오고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절구통을 밟고 서서 들창 안을 들여다보다가 공 초시는 대경실색, 뒤로 넘어질 뻔했다.
박 서방이 묵집 과부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또 앞에 공 초시와 묵집 과부가 섰다.
공 초시의 주장은 묵집 과부에게 쏟아 넣은 재물을 돌려달라는 것이고,
묵집 과부의 변명은 사리로 봐서는 반환을 해야 마땅하지만 손에 쥔 게 없다는 것이다.
사또의 판결은 미뤄졌고 이방이 실사를 나갔다.
며칠 동안 분주하게 쏘다닌 이방이 정보 보따리를 싸 들고 동헌으로 돌아와 사또에게 고한 내용은 이렇다.
공 초시가 서른여덟 묵집 과부에게 공들였지만 술집 과부가 품속에 안기고 싶어 한 사람은 박 서방이었다.
박 서방 은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황소를 몇 마리나 탔던 왕년의 씨름 장사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덩치가 우람했다.
우마(牛馬)장에서 거간이나 하는 박 서방은 항상 주머니가 말라 그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게 묵집 과부였다.
묵집 과부는 공 초시한테서 훑어낸 돈을 박 서방에게 바친 셈이다.
하나 박 서방이 노리는 여자는 따로 있었다.
박 서방은 삼남매를 두고 마누라가 이승을 하직했다.
계모를 들여와야 하는데 기왕이면 예쁘고, 딸린 아이가 없고,
그리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금상첨화.
바로 시집에서 석녀라고 쫓겨나 친정에 와 있는 공 초시의 무남독녀다.
박 서방은 밤마다 공초시네 담을 넘어와 초당의 공 초시 외동딸에게 온갖 공을 들였던 것이다.
금팔찌·옥노리개· 은비녀….
공 초시가 쏟아냈던 재물이 돌고 돌아 다시 돌아온 셈이라 송사는 유야무야됐다더라.
첫댓글 야사 잼나게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