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현 신부의 문화와 세상]
뒤를 돌아보면 나를 볼 수 있다 - 라비린스(labyrinth)
라비린스, 미궁이나 미로라는 뜻의 이 단어는 바닥에 그려진 미로의 길을 따라 기도를 바치며 쭉 걸으면 중심에 도착하게 되도록 그려진 도상이다.
프랑스의 싸르뜨르 대성당 바닥의 라비린스가 유명하다.
미국에서는 교회는 물론 여러 공공시설, 광장, 병원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라비린스는 나선형 걷기코스이다.
바닥에 그려진 길을 따라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중심에 멈춰 서서 다시 되돌아 나오는 것으로 움직이는 기도의 공간이 된다.
복잡한 나를 잠시라도 잊고, 침묵 가운데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분석, 실험, 이라는 단어보다는 성찰, 비움이 이 나선의 공간에 어울리는 단어이다.
흔히 우리는 목표는 앞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을 보고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직선은 절대 뒤를 돌아 볼 수가 없다.
직선적 사고에서는 뒤를 본다는 것은 뒤처지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흐르는 강물도 직선은 자연의 이치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가 지나 온 길을 돌아본다는 것, 앞만이 아니라 옆 혹은 뒤를 보면서 가는 것, 혹여 늦더라도 그렇게 가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것이 기도이다.
하지만 라비린스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리라.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요술 상자도, 소원을 들어주는 절대적 도구도 결코 아니다.
그저 여유 없이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러 장치 중의 하나일 뿐이다.
주님과 동행하며 지금 여기의 나를 돌아보게 하는 여러 기제중의 하나일 것이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쓴 “새로운 미래가 온다.”라는 책에서 라비린스가 소개된 덕분에 더 유명해 졌다.
기업의 CEO, 기관의 장이나 중견 직급의 사람들이 한 번쯤을 읽었을 이 책에서도 결국 라비린스의 방법으로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연산, 분석의 좌뇌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디자인과 공감, 놀이와 스토리, 의미를 추구하는 우뇌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논리인데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신앙으로 환언(換言)하면 결국 ‘우리 삶의 목표는 내 뒤에 있다.’ 라는 명제에 다다르게 된다.
함께 조화롭고 즐겁게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시대에는 그 만큼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숙고해야한다.
결국 자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불구불 곡선을 통해 버림과 기다림, 비움의 성찰을 갖도록 노력하면서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미래의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리라.
*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교구 그레이스 주교좌성당(Grace Cathedral) 바닥의 라비린스
김경현 신부 (스테파노, 병천교회) <성공회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