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은 녀석이 자꾸만 부엌문에서 기웃거린다.
불빛이 비치는 부엌 안이 따뜻해 보였을까?
가을날씨가 추워지니 부쩍 더 그런다.
망사를 씌운 부엌문을 열 때마다 작은 곤충이 순식간에 날라서 안으로 들어온다.
다리 길이가 긴 풀벌레 베짱이다. 푸르스름한 날개, 몸뚱이. 손가락을 내밀어서 가볍게 붙잡으려고 하면 이리저리 튀면서 숨는다. 책상 위에 많은 잡동사니 틈으로 숨기도 하고. 지능적으로 숨는다.
나는 두 손 바닥으로 살며시 감싸 잡으면, 그 가녀린 다리가 부러지지 않도록, 날개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앞마당 화단이나 바깥마당 화단 위에 슬쩍 던져 주곤 했다.
여러 차례나 자꾸만 부엌문을 기웃거린다.
'너, 안 나갈래?, 그렇게 하다가는 다치거나 죽을 수 있어'
작은 곤충이들이 숱하게 날아오는 내 시골집 울안.
사슴벌레도 날아들고, 장수풍뎅이 암수도 날아오고.
올 8월 말에 시골집에 갔던니만 울안 큰 물통 속에는 암장수풍뎅이가 빠져 죽어서 둥둥 떴고, 마당 위에는 수컷이 죽어 있었다. 너희들 부부였니?
배가 불룩한 송장사마귀 암컷이 앞마당 시멘트 바닥 위에서 엉기적거렸다.
'너, 그렇게 하다가는 밟혀 죽어'
하면서 나는 두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집어올린 뒤 풀밭 위에 던져 주었다. 배 부른 암컷.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알을 까고는 죽을 게다. 알은 추운 겨울을 나고는 내년 늦은 봄에 깨어날 게다. 새끼들은 제 어미와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한철을 살다가 한 살도 안 되는 몇 달을 살다가는 또 제 부모처럼 죽을 게다. 어미도 자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그냥 방치하고는 죽을 게다.
올 여름철에는 시골집에 날벌레가 덜 날아들었다.
날씨가 가물어서 곤충이 덜 발생했다는 뜻도 있겠으나 바깥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선 가로등이 불이 꺼진 것이 진짜로 원인일 게다.
내 텃밭, 바깥마당을 훤하게 비췄기에 여름철에는 날벌레가 숱하게 날아들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올해에는 벌레들이 크게 줄어들었다.
바깥마당에는 벌레가 줄어들었다고 해도 안마당에는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따라서 날벌레가 제법 많이 날아왔다.
날벌레들은 불빛을 무척이나 밝히나 보다.
2.
아내는 이빨이 아픈데도 벌초하려고 서해안 중부 산골마을로 내려가야 하는 나와 동행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치과병원에 들러야 한다기에 내가 시골집에서 더 오래 머물 수도 없어서 그저께는 아내와 함께 귀경했다.
서울 올라온 지가 사흘째.
아내는 어제, 오늘 치과병원에 다녀왔다. 신경을 죽이는 마취를 한 뒤에 어금니를 덧씌울 모양이다.
방금 전, 시골에서 사촌동생이 전화했다.
처와 딸이 있는 대전에 다녀왔다며, 내 시골집에 들렀더니 바깥마당에 차가 보이지 않기에 전화했다고 말했다. 길가에 무화과가 익어 간다기에 나는 '다라도 따 가라. 조금 있으면 물러쳐져서 썩는다. 자루가 긴 호미 끝으로 가지를 잡아당겨서 따라. 많으면 잼 만들어라'라고 일렀다.
나는 추석 쇤 뒤 10월 보름경에나 시골에 내려갈 계획이다. 아내는 치아 치료도 추석 쇤 뒤 10월 중순경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대전 사는 생질(누나의 아들)한테서 전화 왔다고 막내아들이 나한테 말했다.
시골집에 다녀갔나 보다.
생질은 보령시 남포면에 조부모의 산소가 있어서 벌초하려 왔다가 외가인 내 집에 들렀나 보다.
내가 전화를 받았더라면 '무화과, 밤을 따서 가져 가라'고 말했을 터인데...
빈 집에는 날새, 두더지, 날벌레들이 주인 행세를 한다.
서울 올라온 지 사흘째라도 야생들국화, 쑥부쟁이, 코스모스 등 10여 종류의 가을 꽃들이 피었을 게다.
노란 호박꽃은 한철이 지나갔는데도 그래도 어쩌다가 피었겠지.
붕붕 거리는 벌들도 자꾸만 행동이 더뎌질 게다.
오늘 아침에 충남 보령지방 상수도설치업자한테서 전화 왔다.
내일 쯤 바깥마당에 상수도를 설치하겠다고.
나는 지금 서울에 있으니 나중에, 10월 중순 경에나 설치했으면 싶다고 대답했다.
업자는 그렇게 하면 '자기는 벌과금을 내야 한다'고 이의했다.
서울 올라온 지가 고작 사흘째인 오늘, 내가 시골로 내려갈 수는 없을 터.
나는 업자한테 말했다.
'상수도 설치공사 지연사유는 업자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집 주인인 나한테 귀책사유가 있으니 상수도설치 본부 전화 번호를 나한테 문자로 알려라. 그러면 내가 본부한테 설명하겠다.'
그제서야 업자는 안심한 듯이 다시 물었다. '10월 중순경에는 시골 내려올 수 있느냐'고.
상수도 설치는 정말로 욕 나올 만큼이나 만만디이다.
보령호는 1999년에 댐을 설치해서 인근 8개 시군에 물을 공급하는데 정작 10km도 안 떨어진 현지 마을에는 설치를 지금껏 하지 않았다.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는 상수도 배관이 지나가는데 바로 코앞인 마을은 18년 째 방치했다.
2016년 지난해부터 마을 남쪽인 앞산과 앞뜰이 일반산업단지로 토지수용하면서 현지 주민 위로 차원에서 상수도를 이제서야 설치해 준다는 뜻일까?
2017년인 올해에서야 설치하겠다고 집집마다 배관설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행정은 전형적인 늑장행정이며, 현지 주민을 무시하는 태도이다.
'상수도 설치 개인별 비용을 9월 26일까지 내야 하며, 그 이후로는 돈을 받지 않는다. 돈 내려면 보령시에 있는 수도사업소로 직접 들르라'고 핸폰으로만 말했던 그들이었다.
대천시내에 나오라고? 전형적인 고압적인 행정행위로 여겼다.
공공기관이 일반 국민을 무시하는 듯한 언행에 내가 은근히 화가 났다.
설치비용을 농협 여직원이 몇 차례나 사업본부와 통화를 한 뒤에서 겨우 돈을 냈다. 지정창구가 아니란다. 직접 대천시내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일전, 마을주민 몇 사람한테 '설치비용을 냈느냐'고 물었는데도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한참 뒤에나 설치공사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
10월 중순경에 시골집에 내려가야 설치해야겠으며 형편에 따라서는 내년 봄에나...
어미가 죽은 뒤 나는 시골집을 자주 비웠다. 겨울철에는 춥다는 구실로 현지에서 살지도 않았다.
빈 집에 상수도 설치를 해서 무엇할 것인데? 하고 나한테 물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지금껏 야외 텃밭(담부리밭)에 지하수를 조금 깊게 파서 그 지하수로 먹고, 활용한다.
농업용수는 아니고.
점심 밥 먹은 뒤 이 글을 보태는데 식탁 위에는 무화과 두 개가 접시에 담겨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무화과 종류는 여럿이다.
서울 시장에서 나오는 무화과 모양새는 넓적하며, 가운데 꼭지가 많이 벌어진다. 맛은 별로이다.
오십여 년 전, 아비가 과수원을 한다면서 대전에서 시골로 사과, 감나무, 무화과 묘목을 트럭으로 실어왔다.
이제는 늙은 감나무 두 그루와 무화과 자손만 겨우 남았다.
감과 무화과는 오십여 년이나 따 먹는다.
아비가 심었던 무화과는 알이 적은데도 맛은 무척이나 달다.
그 아비는 수십 년 전에 폐암으로 죽어서,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런 잡글은 충남 보령시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나는 냄새의 흔적이다.
야트막한 마을 뒷산(해발 200m도 안 됨)에 오르면 원산도, 대천해수욕장이 내려다보이고, 이번 산업단지로 사라지는 앞산에 오르면 서천바다가 멀리서 보였다. 서북쪽 서낭댕이 앞산에 조금만 오르면 무창포해수욕장이 손에 닿을 듯이 내려다보인다.
몸은 서울에 있는데도 마음은 시골에 내려가 있다.
2017. 9. 23. 토요일
첫댓글 농촌의 정겨움도 도시의 분주함도 좋아요
농촌이 정겹나요? 저는 아닌데요. 뱀 , 벌도 많고, 징그러운 벌레 많고, 가시 많고, 풀독이 있고, 늘 연장(예초기), 낫으로 다치지요. 돌맹이가 팽팽 날아서 무릎, 정강이를 후려치는 곳이지요.
저는 농약을 전혀 치지 않고 농사 짓는 건달농사꾼이지요. 농작물을 시장에 팔려면 농약 안 칠 수가 없습니다. 그 농약 누가 먹나요? 바람 불면 그 농약을 농민이 마시는 겁니다. 친환경유기농은 1%도 안 됩니다. 시장에 나오는 것들? 다 거짓말. 농약으로 쳐발랐지요. 그 농약을 농민이 먼저 마시지요. 농촌? 정다운 곳이 아니지요. 거기에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늘 거짓과 가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