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중앙시장 별미기행
강릉시 금성로에 자리한 강릉 중앙시장은 강릉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상설 시장으로 자리를 굳혀 영동 지방 어류와 농작물의 집산지로 통한다. 중앙시장이라고 등록돼 있는 곳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현대식 건물. 하지만 강릉 사람들은 이 건물을 중심으로 한 주변 상가 일대를 모두 중앙시장이라고 일컫는다.
맞은편 먹자골목 입구에서 본 강릉 중앙시장. 현대식 건물을 중심으로 한 주변 일대가 모두 시장 분위기다.
영동 지방 제1의 어류와 농작물 집산지
중앙시장 번영회 회장님에 따르면, 강릉 중앙시장은 일제강점기 단오가 열리지 못하던 상황에서도 시장 상인회를 중심으로 단오를 유치했을 정도로 영향력과 결속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단오제례 때 번영회 회장이 반드시 조문관으로 초대를 받는단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릉 중앙시장은 한때 영동 지역뿐만 아니라 평창 진부까지의 물류를 모두 관장하는 강원도 최고의 시장이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강릉 중앙시장 지하 수산물 시장의 양미리. 영동 지방의 어류와 농작물은 모두 이곳으로 모인다.
현재의 중앙시장 건물은 1978년에 지어지면서 ‘중앙시장 번영회’로 등록됐다. 상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점포는 314개지만, 좌판까지 합치면 모두 520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건물을 둘러싼 주변 노점은 4년 전에 비가림 시설을 하면서 ‘성남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었다.
중앙시장 건물 맞은편, 영동선 철길 아래에도 예부터 작은 노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 노점들 역시 비가림 시설을 하면서 포장마차촌이 형성돼 먹자골목으로 변신했다. 먹자골목이라는 간판 아래 ‘어서 오우야!’라는 강릉 사투리가 적혀 있어 이 지역의 인심을 전해준다. 먹자골목 양쪽으로는 메밀부침개, 감자옹심이, 팥죽, 감자전 등 강릉의 대표 먹거리를 파는 점포에서부터 화장품, 농기구 등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가게가 이어진다.
반건조 오징어, 코다리, 열기…무얼 살까
건어물 가게마다 코다리를 팔고 있다. 김장을 할 때도 코다리를 쓰는 이 지역에서 코다리는 단연 겨울철 거래 품목 1위로 꼽힌다.
중앙시장 1층 도로변에 자리한 건어물 가게가 관광객의 발길을 잡아끈다. 반건조 오징어와 코다리, 말린 열기와 양미리 등을 취급하는 곳이다. 도로 안쪽 건어물 상점에는 오징어, 노가리 등이 그득 쌓였는데 그중 ‘지누아리’라는 해초가 독특하다. 바다 내음을 가득 머금은 지누아리는 채취 즉시 햇볕에 말린다. 간장과 물엿을 반반 섞은 양념을 한소끔 끓인 뒤 식으면 말린 지누아리를 넣고 한 번 더 졸인다. 마지막으로 마늘, 통깨 등을 넣고 한 번 더 끓이면 반들반들 윤이 나면서 쫄깃한 지누아리 무침이 완성된다.
코다리는 반쯤 건조시킨 명태를 이르는 말로, 이 지역에서 1년 내내 팔리는 품목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김장을 할 때도 명태 머리로 육수를 내고 생태, 코다리 등을 함께 넣기 때문에 겨울철 거래 품목 1위로 꼽힌다. 이곳의 코다리는 경포해변 남쪽 안목해변에서 해풍에 말린 것으로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코다리에 이어 말린 가자미와 반건조 열기, 이면수 등도 눈길을 끈다. 붉은색을 띠는 열기는 강릉 사람들의 제수용품으로 많이 쓰인다. 솥 밑바닥에 무를 깔고 쪄낸 열기는 고소한 생선살에 그윽한 풍미를 자랑한다.
집안 대소사에 빠지지 않는 문어
주인을 기다리는 문어. 강릉 중앙시장은 영동 지역 최대 문어 시장으로 유명하다.
입맛 살려주는 문어간장초무침은 이 지역에서 보양식으로 통하는 귀한 음식이다.
지하 1층은 수산물 시장이다. 신선도가 최고 덕목인 이곳 수산물들은 항구에서 바로 실려온 것으로 싱싱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어물전마다 도치, 오징어, 꽁치, 도루묵, 문어 등 동해안에서 잡히는 각종 어류가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좌판에 널브러진 문어다. 강릉 중앙시장이 영동 지역 최대의 문어 시장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삼척, 경북 울진에 이르기까지 동해안에서 잡힌 문어의 집하장이 강릉 아니던가. 강릉 지역에서는 집안 대소사나 제사 등 큰 행사 때 반드시 문어를 올린다. 싱싱한 문어를 삶아서 상 위에 올리기도 하지만 문어포를 이용할 때도 있다.
문어는 대개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만 강릉 지역에서는 문어숙회를 간장 양념에 무쳐 먹는다. 먼저 싱싱한 문어를 끓는 물에 살짝 삶는다. 너무 삶으면 질겨져서 문어의 제맛을 살릴 수 없으니 적당히 삶는 게 좋다. 삶은 문어를 얇게 저민 다음 간장, 설탕, 식초를 섞은 양념에 고춧가루, 통깨, 파, 마늘, 풋고추, 붉은 고추 등을 썰어 넣는다. 양념 간장에 무친 문어는 새콤달콤한 맛과 쫄깃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문어간장초무침은 강릉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양식으로 통하는 귀한 음식이다.
강릉 지방 해장국의 대명사, 삼숙이탕
뭐니 뭐니 해도 강릉의 겨울 별미는 양미리와 도루묵. 싱싱한 양미리가 무더기로 쌓여 겨울 입맛을 풍요롭게 돋운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듯한 도루묵은 알을 품어 배가 불룩하다. 도루묵은 살이 부드러운 생선으로 고추장구이나 조림으로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강릉 지역에서 ‘섭’이라 불리는 자연산 홍합도 인기가 좋다.
중앙시장 2층에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삼숙이탕과 알탕, 추어탕, 생선찌개를 주로 하는 식당들이다. 강릉 지역에서 삼숙이라 불리는 생선은 경기도에서는 삼식이, 경상도에서는 망치, 충청도에서는 물텀벙이라 불린다고 횟집 주인아저씨가 귀띔해준다. 동해안 삼숙이는 머리가 크고 몸통이 작은 어종으로 생김새가 아귀를 닮았다. 탕으로 끓이면 그 맛이 시원해 해장국으로 제격이다.
강릉 중앙시장의 삼숙이탕. 시원한 국물맛이 해장국으로도 일품이다.
삼숙이탕으로 유명한 중앙시장 2층 횟집은 40년 전통을 자랑한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접에 된장 빛깔을 띠는 삼숙이탕이 담겨 나온다. 머리가 통째로 들어 있지만 생선살은 발라 먹을 게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삼숙이란 원래 그런 생선이라 투정을 부릴 수 없다. 하지만 머리에서 우러나는 국물 맛이 일품이다. 맹물에 고추장을 풀고 주재료인 삼숙이를 넣어 끓인다. 먹기 직전에 미나리와 파, 마늘 등을 넣는다. 이곳 삼숙이탕은 메주를 많이 넣어 만든 고추장 맛이 더해져서 맛이 진하다.
닭강정이냐 감자옹심이냐, 선택의 기로에 서서
중앙시장 건물 밖의 닭강정 골목에서 닭강정을 시식하는 꼬마 손님.
중앙시장 건물 밖으로는 소머리국밥 골목과 닭강정 골목이 들어서 있다. 닭강정 골목은 TV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에 등장해 더 유명해졌다. 이 골목에는 원래 생닭을 팔던 점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시대에 걸맞게 닭튀김과 닭강정 가게로 변신했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장사를 하다가 닭강정으로 업종을 전환한 곳도 있다. 냉동 닭이 아닌 생닭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닭튀김 맛이 훨씬 좋다고 자랑한다.
먹자골목에서는 감자옹심이, 메밀 만두 등을 지나치지 말자. 영동 지방에서는 생감자를 갈아서 부침개를 해먹기도 하고, 감자 가루와 감자 전분을 이용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감자옹심이는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체에 거른 다음 물기를 적당히 빼고 동그랗게 빚는다. 팥죽에 들어가는 찹쌀 옹심이 모양의 감자옹심이를 넣고 수제비처럼 끓여내는 것이 감자옹심이다. 전분이 많은 감자옹심이는 입안에 착착 들러붙을 정도로 식감이 쫄깃하다. 감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구수하고 깔끔하다.
중앙시장 맞은편 상가에는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떡집이 자리해 있다. 여느 떡집에서나 가래떡, 호박고지떡, 취떡, 찹쌀떡을 맛볼 수 있지만 이곳 가래떡은 한층 부드럽고 쫄깃쫄깃한 맛으로 인기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