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大麻) 길쌈하기
나의 어린 시절 우리 고향(강릉 학산 마을)에서는 삼베 길쌈을 많이 했다. 삼베는 경상북도 안동지방 안동포(安東布)를 최고라고 했지만, 전국 어느 곳에서나 하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이제는 하는 곳이 거의 없어져 잊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대강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본다.
농한기인 겨울철이면 집집마다 부녀자들은 삼을 삼아 삼베 실을 만들고 옷감을 짜서 옷을 지어 입거나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저녁이면 아낙네들은 삼 쬐기를 한 모숨씩 들고 이 집, 저 집을 번갈아 돌아가며 안방에 모여앉아 삼을 삼았다. 삼 껍질을 입으로 가늘게 찢어서 무릎에 대고 비벼 길게 잇는 것을 ‘삼 삼는다.’고 한다.
집집마다 안방의 한쪽 구석 천정에 삼단을 매달아 놓는데 마른 삼 껍질을 한 모숨씩 묶어 수십 개, 혹은 백여 개(?)를 둘둘 감은 것으로 운동회 때 아이들이 굴리는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공만 했다. 어머니는 겨우내 삼아도 삼단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푸념을 하시곤 했다.
영동지방에서는 삼(大麻)이 잘 자라지 않아 가을이면 어머니는 대관령 넘어 횡계(橫溪)나 진부(珍富), 혹은 봉평(蓬坪) 쪽으로 삼을 하러 가셨는데 차가 귀하던 시절이니 머리에 이고 걸어 다니셨다.
강릉지방에 삼을 심으면 키가 작아 노끈을 만드는 것 외에는 못 쓴다고 했다.
삼(大麻)밭에서 삼 수확하는 모습
<1> 삼(大麻) 건사하기
삼(大麻)은 어린잎에 강한 향정신성 환각작용이 있어 대마초(大麻草)의 원료가 되는 것이라 지금은 함부로 심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강원도 영서(嶺西)지방에서 많이 심었다.
교통편이 불편했던 시절, 바다 구경을 못한 영서지방의 떠꺼머리총각 녀석이 하는 말,
‘바다가 아무리 넓다 해도 등 너머 우리 삼밭만 할까?’ 했다니 얼마나 삼을 많이 심었는지 짐작이 간다.
삼은 키가 2~3m 이상 자라는데 아직 줄기가 파랄 때 밑동을 잘라서 이파리 부분은 대충 훑어낸 후 개울 옆에다 땅을 파내고 넓적한 돌로 구들을 놓아 삼가마를 만든 다음 안에다 삼단을 켜켜로 쌓고 거적으로 덮은 후 다시 흙을 덮고 아궁이에 불을 땐다. 얼마만큼 김이 올라오면 진물을 주어야 하는데 위에 구멍을 뚫고 물을 붓는 것으로, 이때 잘못하면 삼가마가 터진다고도 했다.
<여자들 머리숱이 많고 길면 삼단 같은 머리라고 했는데 저 삼 묶음을 두고 생긴 말인 듯>
알맞게 쪄졌다 싶으면 흙과 거적을 벗겨내고 삼단을 꺼내어 흐르는 개울물에서 씻어내며 식힌 후 껍질을 벗기는데 가운데 하얀 심(속대) 부분이 쉽게 쏙 빠져나오며 벗겨진다.
이 가운데 하얀 속대를 겨릅대(강원도 사투리로 저릅대)라고 하는데 가늘고 길다. 아이들이 살이 안찌면 ‘꼭 겨릅대같이 말랐다.’고도 하고, ‘겨릅대로 아이를 때리면 아이가 살이 안 찐다.’는 말도 있었다.
이 겨릅대는 집 지을 때 벽을 만드는 외를 엮을 때 쓰이기도 하고 삼베 실을 도투마리에 감을 때 사이사이에 넣기도 한다.
이렇게 장만된 삼은 개울가 자갈밭에 널거나 줄을 매고 널어서 말리는데 바짝 마른 후 ‘삼을 삼는 것(길게 이어 실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