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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 (오나라 왕) |
진 나라 장수 | ||||||
오나라 장수 | ||||||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 (419) (마지막회) 삼국통일
진주 사마염(晉主 司馬炎)은 양호의 유언에 따라 두예(杜預)를 진남대장군 도독형주사
(鎭南大將軍 都督荊州事)에 봉했다. 두예는 부지런하고 노련했으며, 학문을 좋아했다.
특히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전(春秋傳)을 즐겨 읽어, 자리에 앉든지 눕든지 항상 손에서
춘추전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두예에게는 '좌전벽(左傳癖, 좌전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두예는 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양양으로 가서 백성들을 돌보고 군사력을
양성하며 오를 정벌할 준비에 매진했다.
그무렵, 오나라에서는 노장 정봉(丁奉)과 육항(陸抗)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오주 손호
(吳主 孫皓)는 매일 술잔치를 벌여 놓고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호는 괴팍한 술자리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하들로 하여금 술을 진탕 마시게 해놓고는 잔치가
파하면 감주관(監酒官)에게 신하들의 술취한 실태를 낱낱이 고하게 하여 잘못이 있는
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뽑아내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손호의 이러한
행태에 조정의 신하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백성들도 모두 공포에 떨었다.
진나라 익주 자사 왕준(益州 刺史 王濬)은 오나라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내
황제에게 상소 하나를 올렸다.
오주 손호의 황음무도하고 흉폭한 태도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속히 오를 정벌하소서. 혹여 손호가 죽고 다시 어진 임금이 옹립하면 동오의 기강이
단단해져서 깨치기 어려워 질 것이옵니다. 게다가 신이 함선을 만든지 벌써 칠 년째라
날이 갈 수록 함선이 낡고 있습니다. 또, 신의 나이도 이제는 칠십이라 언제 죽을지
앞날을 알기 어렵사옵니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사옵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지 마소서.
진주는 상소를 읽고는 동오 정벌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신하들을 소집했다.
진주가 말한다.
"왕공이 올린 상소 내용이 바로 양호 도독의 뜻과 같소. 짐은 이미 뜻을 정했소."
시중 왕혼(王渾)이 나서서 아뢴다.
"신이 듣자하니 손호가 우리와 맞서기 위해 군사들의 기세를 바짝 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하옵니다. 제 풀에 지치도록 일 년만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동오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경의 말도 타당하군."
진주는 중신들의 의견을 따라서 동오 정벌을 일년 후로 미루기로 했다.
진주가 비서승 장화(秘書丞 張華)와 더불어 심심풀이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두예로부터
표문이 올라왔다는 신하의 보고가 들어왔다. 진주는 바둑판을 앞에 둔 채 두예가 올린
표문을 펼쳤다.
지난날 양호 장군은 동오 정벌 계획을 조정의 신하들과 두루 의논하지 않고 폐하께
은밀하게 아뢴 까닭에 조정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이해 관계는 마땅히 따져야 하는 것이온데, 이번 거사에 이로움을 얻기란 십중팔구
이고, 혹여라도 얻을 해로움이라고 해봐야 공을 세우지 못한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오를 정벌하려는 우리의 계획이 이미 적에게 노출되었으니, 만일 계획을
중단하면 손호에게 준비할 시간만 주는 꼴이 될 것이옵니다. 손호는 일 년의 시간동안
도읍을 무창(武昌)으로 옮기고, 강남의 모든 성곽을 수리하여 백성들을 그곳에 살게
할 가능성이 아주 크옵니다. 그렇게 되면 적은 난공불락이 될 것이며, 들판에서 식량을
약탈할 수도 없게 되온즉, 결국 우리로서는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옵니다.
진주가 표문 읽기를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비서승 장화가 바둑판 위의 바둑돌을
손으로 쓸어버리더니 두 손을 모으고 아뢴다.
"폐하께서는 성스럽고 용감하시며, 나라는 윤택하고 군사는 강하옵니다. 그에 비해 오주
(吳主)는 음탕하고 포악하여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나라 상황은 피폐합니다.
지금 오를 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사오니 폐하께서는 주저하지
마시옵소서."
진주가 결심을 확고히 하고 말한다.
"지금 경의 말은 이해득실을 잘 살펴서 한 말이니 짐이 무얼 주저하겠는가?"
진주는 즉시 대전으로 나가서 오를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남대장군 두예를 대도독
(大都督)으로 삼아 십만 대군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나아가게 했다. 진동대장군 낭야왕
사마주(鎭東大將軍 瑯琊王 司馬伷)는 오만 군사로 도중(涂中)으로 진격하고, 정동대장군
왕혼(征東大將軍 王渾)은 오만 군사로 횡강(橫江)으로 진격하고, 건위장군 왕융
(建威將軍 王戎)은 오만 군사로 무창으로 진격하고, 평남장군 호분(平南將軍 胡奮)은
오만 군사로 하구(夏口)로 진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장수들은 두예의 지휘에
따르도록 했다. 또, 용양장군 왕준(龍驤將軍 王濬)과 광무장군 당빈(廣武將軍 唐彬)
에게는 수륙군 이십만 명, 전함 수만 척을 이끌고 장강 하류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관군장군 양제(冠軍將軍 楊濟)에게는 양양에 머물며 여러 갈래의 군마를
통제하도록 했다.
진나라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움직이자 그 소식은 금세 동오에 알려졌다. 깜짝 놀란 오주 손호는 승상 장제(丞相 張悌)와 사도 하식(司徒 何植), 사공 등수(司空 騰修)를 불러모아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했다.
장제가 오주에게 아뢴다.
"거기장군 오연(車騎將軍 伍延)을 도독으로 삼아 강릉으로 진격하여 두예를 막게 하시고,
표기장군 손흠(驃騎將軍 孫歆)에게 하구를 비롯한 각 방면의 적군을 막게 하십시오. 신은
좌장군 심영(左將軍 沈瑩), 우장군 제갈정(右將軍 諸葛靚)과 더불어 십만 군사를 이끌고
우저(牛渚)로 나아가서 여러 방면의 군사들을 지원하겠사옵니다."
손호는 장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제를 위시하여 여러 장수들이 각 방면으로 떠나고,
손호가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그 표정에 근심이 떠올랐다. 중상시 잠혼이 손호에게
묻는다.
"폐하, 어찌하여 용안에 근심이 가득하시옵니까?"
"진의 대군이 쳐들어오다고 하여 각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긴 하였으나...... 장강을 따라
내려오는 왕준의 전함 수와 군사 수가 많고 그 예기 또한 날카롭다고 하니 걱정이로다."
"신에게 계책이 있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왕준의 배쯤이야 산산조각 낼 수 있사옵니다."
손준이 눈을 한 번 크게 반짝 뜨며 잠혼에게 묻는다.
"계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강남에는 철이 많이 나옵니다. 그 철을 이용하여 길이가 수백 장 되는 쇠사슬을
수백 개 만들되, 각 고리의 무게는 이삼십 근 정도로합니다. 그 쇠사슬을 장강 연안의
중요한 길목마다 가로질러 깔아놓으십시오.그리고 길이가 일 장 정도 되는 송곳을
수만 개를 만들어 물 속에 설치하십시오. 전선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다가 송곳과
부딪히면 배는 침몰하게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쇠사슬이 곳곳을 막고 있으니 저들이
무슨 재주로 강을 건너겠습니까?"
"놀라운 계책이로군. 당장 시행하시오."
손호의 명에 따라 즉시 도성 안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소집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사슬과 송곳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장강의 요해처에는 무수한 송곳과
쇠사슬이 설치되었다.
한편, 진나라 도독 두예는 군사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아장 주지
(牙將 周旨)에게 수군 팔백 명과 작은 배를 주고 은밀히 장강을 건너 낙향(樂鄕) 땅을
야습하도록 명했다. 주지가 출격하기 전, 두예가 주지를 불러다가 작전을 일러둔다.
"낙향을 점령하면 파산(巴山)에 매복하라. 숲 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두고, 낮에는 포를
쏘면서 북을 치고, 밤에는 여러 곳에 횟불을 올려 적의 이목을 흐트려라."
이튿날, 두예는 본대를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동시에 나아갔다. 두예가 길을 재촉하는데
앞서 갔던 정탐꾼이 달려와 급보를 전한다.
"적이 세 방면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연은 육로, 육경(陸景)은 수로, 그리고 선봉장 손흠군
의 선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두예는 결전의 의지를 다지며 계속 진군해나갔다. 손흠은 이미 당도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양쪽 군사들이 처음으로 싸움에 붙으려는데, 돌연 두예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손흠은 얼른 연안으로 상륙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두예의 뒤를 쫓았다. 오군이
두예군을 정신없이 추격하는데 갑자기 포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사방에서
진군(晉軍)이 쏟아져나왔다. 당황한 오군들은 급히 퇴각했다. 손흠군에게 쫓기던
두예군이 이번에는 손흠군을 뒤쫓기 시작했다. 힘의 흐름이 바뀐 틈을 타서 두예가
군사들을 휘몰아 오군을 마구 무찔렀다. 이때 죽은 오군의 수는 셀 수가 없었다.
오군 선봉 손흠은 더이상 대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성까지 부리나케 도망쳤다.
패잔병들이 성 안으로 진입하는데, 주지의 군사 팔 백이 성 앞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패잔병에 몰래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사위가 고요해진 시각,
성벽 위에 횃불이 높이 올랐다. 패잔병에 섞여서 잠입했던 주지의 군사들이 올린
횃불이었다.
횃불을 보고 손흠이 놀라서 외친다.
"적군은 날개라도 있는 것인가! 어떻게 강을 건너 성 안까지 온 것인가!"
손흠이 황급히 퇴각하려는데 주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주지는 손흠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오군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달아났다.
전함에 있던 육경은 강남 연안에서 불길이 치솟고 파산 위에 '진남장군 두예'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사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육경은 얼른 배에서 내려
뭍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뭍에 발을 내린 순간 진의 장수 장상(張尙)이 나타나서
육경의 목을 쳤다.
오군 주장 도독 오연은 각 처의 군사들이 모두 대패한 것을 알고 성을 포기하고
달아나다가 진의 복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오연은 결박된 채로 두예 앞으로 끌려갔다.
두예는 오연을 흘낏 보더니 말한다.
"이런 놈은 살려둬봤자 쓸모가 없다. 목을 베어라!"
두예는 어렵지 않게 강릉을 점령했다. 강릉이 함락되자, 원수(沅水), 상강(湘江) 일대와
광주(廣州)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의 수령들은 진나라 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전부
성문을 열고 나와 인(印)을 바치며 항복해왔다. 두예는 점령지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군사들로 하여금 노략질을 절대로 하지 않도록 명했다. 두예의 계속되는 진격에 무창성
역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자진하여 항복했다.
기세를 크게 떨친 두예는 드디어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을 칠 마음을 먹었다.
장수들을 소집하여 건업을 공략할 계책을 상의했다.
호분이 말한다.
"백 년이나 대적해온 적을 일시에 손에 넣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봄물이 불어나서
오래 머물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내년 봄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업 정벌을 미루자는 호분의 의견에 두예가 답한다.
"지난날 악의(樂毅, 연나라 장수)는 제수(濟水) 서쪽 지역에서 결전을 벌여 강성한 제나라를 억눌렀다. 지금 우리 군사의 위세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니 지금처럼만 나아가면 적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크게 힘을 쓸 것도 없다."
두예는 여러 장수들에게 격문을 보내 건업 정벌의 뜻을 밝히고 일제히 건업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이때 용양장군 왕준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오고 있었다. 전방에서 앞서가던 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오나라에서 쇠사슬과 쇠송곳을 만들어 강에 설치해놓았습니다."
왕준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까짓 것으로 나를 막겠다는 것인가? 가소롭군. 혼쭐을 내줘야겠어. 하하하하!"
즉시 군사들로 하여금 뗏목 수십 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뗏목 위에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든 허수아비를 세워서 송곳과 쇠사슬이 있다는 곳으로 흘려보냈다. 오군 장병들은 멀리서 허수아비를 보고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그대로 달아났다. 오나라에서 깔아놓은 송곳은 뗏목에 걸려 모조리 뽑혔고, 또 다른 뗏목에 기름을 붓고 불을 올리자 불 올린 뗏목과 닿은 쇠사슬은 녹아내려 끊어졌다. 진의 수군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동오의 승상 장제는 좌장군 심영과 우장군 제갈정에게 명을 내려 진군을 맞아 싸우도록 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진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심영이 제갈정에게 말한다.
"상류에서 적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적군이 반드시 여기까지 올 것이오. 승리를 거두면
다행히 강남을 안정시킬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패한다면 만사는 끝장이오."
"공의 말씀이 맞소."
둘의 대화가 계속되는데 급보가 들어왔다. 진군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 기세를 감당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심영과 제갈정은 급히 장제에게 달려갔다. 제갈정이 장제에게
말한다.
"승상,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고 앉아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장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나라에 망국의 기운이 들어찬 것은 똑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아는
바이오. 그렇다고 국난 중에 목숨을 던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임금과 신하가 모조리
항복하고 만다면 그 또한 치욕이 아니겠소?"
장제의 말을 듣고 제갈정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다. 군사들 대부분도 전의를 상실하여
진영을 버리고 흩어졌다.
장제와 심영은 얼마남지 않은 군사들을 이끌고 적과의 마지막 싸움을 위해 나섰다.
얼마가지 않아 오군은 진군에게 둘러싸였다.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주지가
달려나와 장제와 맞섰다. 장제는 창과 칼이 모두 꺾이도록 분투했지만 진군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싸움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영은 주지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오군
병사들은 흩어져서 달아났다.
진나라 군사는 우저를 점령하고 오나라 경계까지 침투했다. 왕준은 이 소식을 낙양에
보고했다. 진주 사마염은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옆에 있던 가충이 아뢴다.
"우리 군사가 땅과 물이 낯선 외지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병에
시달리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으니 이제는 군사들을 거두시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충의 말을 듣고 장화가 말한다.
"우리 대군이 이미 적 깊숙이 들어가서 오나라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손호를
잡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군사를 거두는 것은 안 될 일이옵니다. 이대로 군사를 물리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텐데, 그렇다면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겠사옵니다."
진주가 끼어들 새가 없이 가충이 장화를 나무란다.
"그대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시기가 지금 와 있는 것인지, 땅의 형세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 있는 것인지 판단할 줄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망령되이 공훈만을 탐내어
군사들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오? 그대가 자진하여 목을 내놓는다하여도 그 죄를 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진주는 가충을 저지하며 말한다.
"오나라를 깨치려하는 것은 곧 짐의 뜻이오. 장화는 단지 짐의 뜻과 함께하는 것이니
경들은 말다툼을 그만 두시오."
이때 두예의 표문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두예의 표문 역시 서둘러 진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주는 두예의 표문으로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전장에
나가 있는 군사들에게 끝까지 진격하여 오나라 정벌을 완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준과 두예 등이 진군하는 곳마다 그 기세가 거침이 없어서 오나라 사람들은 적군의
깃발만 보고도 성문을 활짝 열어 스스로 항복해왔다.
오주 손호는 그런 상황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신하들이 손호에게 묻는다.
"북쪽에서 온 군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건업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강남의 군사와
백성들은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손호가 어두운 낯빛을 하더니 도리어 신하들에게 되묻는다.
"어찌하여 싸우지 않는 것인가?"
손호의 물음에 모든 신하들이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이런 화가 닥친 것은 모두 중상시 잠혼 때문이옵니다. 청컨대 폐하께서
잠혼에게 극형을 내리십시오. 저희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서 적과 싸우겠습니다."
손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한다.
"하찮은 환관 따위가 무슨 재주로 나라를 망칠 수 있겠는가?"
모든 대신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께서는 촉나라의 황호를 못 보셨습니까?"
마침내 대신들은 오주의 명을 받지도 않은 채 잠혼을 붙잡아다가 갈갈이 베어 죽이고
그 살을 씹어 삼켰다.
끔찍한 처결이 끝나고 도준(陶濬)이 손호에게 아뢴다.
"신이 가진 전선은 규모가 모두 작사옵니다. 군사 이만과 큰 배만 있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손호는 즉시 어림군을 도준에게 내주며 상류에서 적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전장군 장상
(前將軍 張象)에게는 수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했다. 두 장수가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서북풍이 크게 일더니 배 안에 세워두었던 기치가
우수수 쓰러졌다. 불길한 징조였다. 오군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 도망쳤다. 그러고나자 장상에게 남은 병사는 겨우 십여 명 뿐이었다.
한편 진의 장수 왕준이 돛을 높이 달고 삼산(三山)을 지나가는데 배를 젓는 군사가
왕준에게 말한다.
"바람이 세고 물결이 높아 배가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이 조금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가시지요."
왕준은 칼까지 빼들고 화를 낸다.
"지금 석두성(石頭城) 점령이 코앞인데 멈추자는 것이냐!"
그리고 당장 크게 북을 울리며 진군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때 오나라 장수 장상은
가망이 없는 싸움을 벌이려는 마음을 접고, 십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왕준에게 와서
항복하기를 청했다. 왕준이 장상에게 말한다.
"그대가 진정으로 항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라면 선봉이 되어 공을 세우라."
장상은 곧장 자신의 전선으로 돌아가서 석두성에 이른 뒤, 성 안으로 소리를 쳐서 성문을
열도록 했다. 이리하여 왕준은 싸움 없이 석두성을 손에 넣었다.
진나라 군사가 입성했다는 보고를 받은 손호는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려고 했다.
그때 중서령 호충(中書令 胡沖), 광록훈 설영(光祿勳 薛瑩)이 손호를 말린다.
"폐하, 안락공 유선(安樂公 劉禪)의 예를 따르심이 어떻겠습니까?"
손호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항복의 절차에 따라 수레에 관을 싣고 스스로를 결박한
채 문무대신들을 뒤따르게 하고 왕준의 군사 앞으로 나가 항복했다. 왕준은 손호를
풀어주고 관을 불에 태우게 한 후, 왕의 예로써 그를 대해 주었다.
이제 동오의 4주(州) 43군(郡) 313현(縣), 52만 3천 호(戶), 3만 2천 명의 관리, 군사
23만 명, 남녀노소 230만 명, 미곡 2백80만 섬, 배 5천여 척, 궁녀 5천여 명은 모두
진나라의 것이 되었다.
나라의 대사(大事)가 정해지자 왕준은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모든 창고에
봉인을 붙였다.
이튿날 도준의 군사는 임금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무너졌다.
이어서 진의 낭야왕 사마주와 왕융의 대군들도 전부 와서 왕준이 세운 큰 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다음날에는 두예도 도착하여 삼군에게 큰 상을 내리고 대도독의
직권으로 식량 창고를 열어 오나라 백성들을 구제했다. 두예의 넉넉한 인심에
그제서야 오나라 백성들은 마음을 놓았다.
오의 건평태수 오언(建平太守 吳彦)은 성을 지키며 끝까지 항거하고자 하였으나
오나라가 이미 멸망했다는 소식에 곧 항복했다.
왕준은 낙양에 승첩을 띄웠다. 조정에서는 오나라를 평정했다는 소식에 임금과 모든
신하가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축하연에서 진주 사마염은 술잔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늘의 영광은 모두 양태부(양호)의 공로인데 그가 살아서 직접 보지를 못하니
애통하도다!"
표기장군 손수(驃騎將軍 孫秀)는 오나라 손권의 종손으로, 위나라 때부터 조정을
섬겨왔다. 손수는 승전 축하연이 끝나고 조정에서 나오면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한다.
"지난날 토역장군(討逆將軍, 손견)은 일개 교위(校尉)의 신분으로 기업(基業)을 세웠는데,
오늘 손호는 강남을 모조리 남에게 넘겼으니, 유유히 흐르는 푸른 하늘이여! 세상에
어찌 이런 사람을 내셨나이까?"
한편 왕준은 낙양으로 개선했다. 오주 손호도 낙양으로 함께 데려와서 진주를 뵙게 했다.
동오의 패주 손호는 진주 사마염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진주는 손호에게
자리를 내주어 앉기를 권하며 말한다.
"여기 앉으시오. 짐은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마련해놓고 경이 오기를 기다렸소."
"신도 남녘 땅에 자리를 마련해놓고 폐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끌려온 와중에도 손호는 이렇게 당차게 대답했다. 진주 사마염은 손호의 당당한 태도에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곁에 있던 가충이 손호에게 묻는다.
"남쪽 땅에는 사람의 눈알을 뽑고 얼굴 가죽을 벗기는 형벌이 있다던데 대체 무슨 죄를
지으면 그런 형벌을 받는 것이오?"
손호가 곧장 대답한다.
"신하로서 제 군주를 시해하려는 자와 간사하고 불충스러운 자에게 가하는 형벌이오."
손호의 대답에 가충은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지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손호는 그저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가충이 느끼기에는 마치 '너 같은 놈'이라고
지적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주는 손호에게 귀명후(歸命侯)의 작위를 내렸다. 그리고 그 자손들은 중랑(中郞)으로
삼고, 함께 항복한 오나라 신하들은 모두 열후(列侯)에 봉했다. 또한 끝까지 충심을
다해 싸우다 죽은 승상 장제의 자손들에게도 빠짐없이 작위를 내렸다. 오나라 정복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왕준에게는 보국대장군(輔國大將軍)의 작위와 함께 큰 상을 내렸고,
그 밖의 군사들에게도 후하게 포상했다.
이로써 오래도록 정족지세를 이루던 삼국이 모두 진제 사마염의 수중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었다. 이른바 '천하대세는 합쳐진지 오래면 반드시 분열하고, 분열한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天下大勢 合久必分 分久必合]'라는 말 그대로였다.
그뒤 촉주 유선(蜀主 劉禪)은 태시(泰始) 7년(271)에, 위주 조환(魏主 曹奐)은 태안(太安)
원년(302)에, 오주 손호(吳主 孫皓)는 태강(太康) 5년(284)에 세상을 떠났다.
후세 사람들이 삼국의 발자취를 시(詩) 한 편으로 적어 노래했다.
高祖提劍入咸陽 한고조 칼 빼들고 함양에 들어갈 때,
炎炎紅日升扶桑 이글이글 붉은 해 부상에 떠올랐네.
光武龍興成大統 광무제 크게 일어 대통을 이으니,
金烏飛上天中央 금빛 까마귀 하늘 한가운데 비상하였다.
哀哉獻帝紹海宇 슬프도다, 헌제가 천하를 이어받고서,
紅輪西墜咸池傍 붉은 해는 서쪽 함지 곁으로 떨어졌구나.
何進無謀中貴亂 하진이 무모하게 십상시의 난을 일으키니,
涼州董卓居朝堂 양주의 동탁이 조정을 차지했네.
王允定計誅逆黨 왕윤이 계책 세워 역당을 죽였으되,
李傕郭汜興刀槍 이각, 곽사 창칼을 들고 날뛰었네.
四方盜賊如蟻聚 도적이 사방에서 개미떼처럼 일어나니,
六合奸雄皆鷹揚 이 세상 간웅들 매처럼 날개를 편다.
孫堅孫策起江左 손견, 손책은 강동에서 일어나고,
袁紹袁術興河梁 원소, 원술은 하량에서 떨쳤도다.
劉焉父子據巴蜀 유언 부자는 파촉을 차지하고,
劉表軍旅屯荊襄 유표의 군대는 형양에 주둔하네.
張燕張魯霸南鄭 장연, 장로는 남정의 패권을 쥐고,
馬騰韓遂守西涼 마등, 한수는 서량을 지키도다.
陶謙張繡公孫瓚 도겸, 장수, 공손찬도
各逞雄才占一方 각기 웅재 떨쳐 한 지방을 차지했네.
曹操專權居相府 조조가 승상에 앉아 권력을 틀어쥐니,
牢籠英俊用文武 문무 영재를 수하로 끌어들인다.
威挾天子令諸侯 천자에게 위엄 떨치고 제후들에게 호령하더니,
總領貔貅鎭中土 사나운 군사로 중원을 진압하네.
樓桑玄德本皇孫 누상촌 유현덕은 본래 한나라 황손,
義結關張願扶主 관우, 장비와 의형제 맺어 천자 돕기를 원하네.
東西奔走恨無家 동분서주하여도 기반이 없음을 한탄하니,
將寡兵微作羈旅 적은 장수, 미약한 군사와 떠도는 신세여라.
南陽三顧情可深 남양의 삼고초려 그 정이 어찌나 깊었는지,
臥龍一見分寰宇 와룡은 첫 만남에 삼분천하를 알아보네.
先取荊州後取川 형주를 차지하고 후에 서천을 얻으니,
霸業圖王在天府 패업과 임금의 길 서천땅에 있었더라.
嗚呼三載逝升遐 안됐구나, 유현덕 삼 년만에 승하하며
白帝託孤堪痛楚 백제성 어린 아들 부탁하는 그 마음 찢어지게 아프도다.
孔明六出祁山前 공명이 여섯 번 기산으로 나아가니,
願以只手將天補 기울어가는 하늘 한 손으로 붙잡으려함이었네.
何期歷數到此終 어이하리, 운수가 다한 것을
長星半夜落山塢 한밤중 장성이 산기슭에 떨어지네.
姜維獨憑氣力高 강유 홀로 제 혈기, 능력에 의지하여
九伐中原空劬勞 아홉 번 중원을 쳤으나 공 없이 헛수고네.
鍾會鄧艾分兵進 종회, 등애가 두 길로 진격하니,
漢室江山盡屬曹 한나라 강산, 조씨 것이 되었네.
丕叡芳髦纔及奐 조비, 조예, 조방, 조모, 조환을 거치는 동안
司馬又將天下交 천하가 사마씨로 바뀌었네.
受禪臺前雲霧起 수선대 앞은 운무가 자욱하고,
石頭城下無波濤 석두성 아래는 물결조차 일지 않는구나.
陳留歸命與安樂 진류왕, 귀명후, 안락공이여
王侯公爵從根苗 왕후공작은 그런 뿌리에 나온 싹이네.
紛紛世事無窮盡 분분한 세상사 끝이 없고,
天數茫茫不可逃 아득한 하늘의 운수에서 도망갈 길 없네.
鼎足三分已成夢 정족삼분은 이미 꿈으로 돌아갔거늘,
後人憑弔空牢騷 후세 사람은 애도한다며 공연히 떠드네.
-소주병의 삼국지(三國志) 끝-
감사의 말씀:
그 동안 삼국지를 애독하여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동시에 본 삼국지는 저자 소주병 선생의 글을 본인이 본지에 나오는 인물(장수 및 모사 등)의 사진을 삽입하였고 또 더러는 배경음악을 가미한 것 뿐이며 저자가 소천 후에는 그분의 따님되시는 분께서 나머지 부분을 작성하여 끝까지 마감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