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27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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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소통 (1)
내가 초등학생 때 예쁜 여학생들의 고무줄을 자른 것은 그 여학생을 좋아한다는 뜻이었다.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그리 못한 건, 내 마음을 네게 들켜 버리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너를 가슴 아프게 한건 그래도 네가 좋아서였다.
‘달이 무척 밝지요.’ 하며 그대 물을 때 ‘구름이 없으니 밝지-’ 라고 답하고, 장가든 후에도 그 버릇 못 버리고 내가 아는 말이라곤 ‘밥 묵었나?’ ‘아는?’ ‘자자!’ 소리뿐 이었으니,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비로소 늙은 스승이 말했다.
그리 말하면 아니 된다고, 꽃을 전하고 시집을 받으라고
시인은 천재다!
답답한 어느 시인이 맨 날 술만 퍼마시고는 시 700편을 쓰고는 죽었다 한다. 사람들은 술 때문에 죽었다 하기도하고 시에 미쳐서 죽었다 하기도 한다. 시를 모르는 세상이 답답해서 죽었을 꺼다.
내 나이 쉰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시든 꽃송이조차도 보이지 않는 지금, 뒤 늦게 철이 들어서 마지막 남은 온기라도 전하고자 내 마음이 본시 그게 아니었다며 찬 밥 같은 마음들을 불러내어 글을 쓴다. 그래도 옛날 버릇이 남아서 아직도 글속에 아픔을 담아버리고는 내가 또 나를 아프게 한다. 그래서 나는 자꾸 미안하다는 말만 쓴다. 예쁜 여선생이 내 꼴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요즈음 세상에는 ‘초딩은 꽃을 주고 선수는 고추를 준다’고, 나는 정말 오랜만에 껄껄 웃었다. 시원스레 웃었다. 매운 고추가 막힌 곳을 확 뚫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은 시인은 바보다!
저승에 가 봐야 시 마저도 없다는 것을 몰랐을 꺼다.
시인이 죽기 전에 술이나 한잔 줄걸 그랬다. 저승에는 꽃도 없고 고추도 없을 것인데 그 답답한 마음을 아는 체라도 해줄 걸 그랬다. 선생님은 이 어긋난 소통에 대해서 또 뭐라 하실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글과 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인이시니까 ‘그래도 그리 말하면 안 된다’ 하실 것이고 큰 스님은 “이 등신아, 니 그래가 언제 중 될래.” 하실 것이다.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한 여름날의 냉수 같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멘’주1)이란 말이 튀어 나오는데 누님이 또 까분다고 빗자루 들고 쫒아 온다.
메롱! 하고 달아나 바위에 올라앉으니 산 아래 홀로 구름이 떠간다. 나는 누님이 좋다. 큰 스님보다 스승님보다 누님이 더 좋다. 누님은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때문이다. 구름은 비가 되고 비는 또 강이 되고 강은 다시 바다로 통한다. 바다에서 다시 구름이 일어나고- . 나는 구름이 되고 싶다.
통하면 불통하고
불통하면 통한다.
* 주1)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라는 뜻인데 하나님의 의지가 땅과 인간들에게 그대로 잘 소통 된다는 의미이다.
어긋난 소통(2)
동창회에서 부부동반으로 소금산 등산을 가던 날 차안에서 총무가 떡을 나눠 주었다. 싱거운 친구가 사회자로 나서더니 “밤이 새도록 떡을 만든다고 수고하신 회장님 부부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냅시다.” 한다. 모두들 까르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이때 웃음의 의미는 통했다는 것이다.
생명 ! 그 거룩한 것만이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태어난다. 태초에 신이 만들어 준 그대로의 방법으로 태어난다. 제왕도 부처도 거지도 강아지도 바로 그 방법으로 태어난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평등하다.
시골초등학교 동창회만 가도 드럼통 보다 더 굵어진 허리를 한 여자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구르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생명을 낳아서 길러낸 여인만이 지닐 수 있는 배포가 담겨있다. 그 앞에서면 남학생들은 기가 죽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그래서 여학생들이 대장이다.
가장 원시적인 환경일 때 ‘권력은 여자에게서 나온다.’고 나는 확신한다. 황우석이가 불만이 있었는지 복제 개를 생산했다. 이제 개는 사람보다 더 형이상학적인 동물이다. 세상은 비로소 인간이 생명을 창조했다고 감탄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개가 왕 노릇 할까봐 지레 겁이 난다. 수컷들은 이제 거세되어 평생 고기만 만들다가 죽을 운명이다.
“초딩은 꽃을 주고 선수는 고추를 준다” 고 한 예쁜 여선생이 귀엽다.
꽃이 고추로 통하고 고추가 생명으로 통하고 여인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건 꽃이 아니라 고추라는 젊은 여선생의 농담은 옳은 말을 하고서도 나이가 주는 부끄러움이 있어 폭소를 자아낸다. 그런 여성들이 많아야 남성이 남성다워진다. 이제 내가 꽃집에 가서 꽃을 사면 세상의 여인들은 저 고추를 누구에게 주려는 가 궁금해 할 것이고 칼국수 집에 가서 고추를 먹을 때마다 또 꽃을 생각 하며 웃을 것이다.
떡!,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하던 그 떡이, 떡이 아닌 의미로 통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