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평화연대
통일교·신천지·전광훈, 그리고 박주환 신부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은 말하고,
양심은 침묵당했다
박주환 신부 복직을 요청하는 공개 탄원
전광훈이 “불구속 100%”를 말하며 감방이 “편하다”고 농담처럼 떠드는 장면은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디까지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법 앞에서의 겸손도, 신 앞에서의 두려움도 없는 확신. 이 확신은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권력과 결탁한 종교의 오만에서 나온다.
범죄에 연루된 종교는 목소리를 높이고, 진실을 말한 종교인은 침묵당한다. 신천지, 통일교, 그리고 전광훈으로 상징되는 정치화된 개신교 세력. 이들은 신앙 공동체라기보다 조직화된 이익집단에 가깝다.
신앙은 동원의 언어가 되었고, 종말론과 구원 담론은 정치 선동과 자금 조달의 도구가 되었다. 교회는 더 이상 양심의 공간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을 축적하는 기업 모델로 작동한다.
종교 문제는 단순한 종교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문제다. 종교가 정치의 뒤에 숨을 때, 법은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시민은 동원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 결과는 언제나 같다. 책임지는 이는 없고, 피해자만 남는다.
불교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한국 종교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진실 규명 이전에 침묵과 정리가 먼저 요청되는 구조. 이것은 특정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화된 종교 전반의 병리다.
더 비참한 장면은 따로 있다.
풍자 한 편, 문제 제기 한 문장 때문에 사제직무 정지를 당하고 침묵 속으로 밀려난 종교인이 있는 반면, 사회를 분열시키고 혐오를 선동해 온 이들은 거리에서 확성기를 잡는다. 이것이 지금 한국 종교의 정의 감각이다. 조용한 양심은 제거되고, 요란한 선동은 보호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 ‘풍자글의 주인공’은 바로 박주환 신부다. 그는 신앙의 이름으로 폭주하는 종교 권력과 왜곡된 정치 결탁을 향해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혹독하다.
그는 지금 긴 겨울, 어둠의 시간을 홀로 인내하고 있다. 말이 끊긴 자리에서, 소명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사제의 양심을 붙들고 버티고 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침묵은 누구를 위한 침묵인가.
이 인내는 왜 한 사람에게만 요구되는가.
교회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개인의 일탈이나 내부 질서의 문제로 미뤄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징계의 유지가 아니라 재검토이며, 배제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인사적 결단이다.
박주환 신부가 겪고 있는 이 겨울이, 교회의 책임 있는 판단을 통해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은 특혜를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균형의 문제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본래 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다. 예언자는 언제나 체제의 바깥에서 말했고, 종교는 약자의 편에서 권력을 심문해 왔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다. 권력을 심문해야 할 종교가, 권력의 면죄부가 되고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느 종교가 옳은가”가 아니라,
“어떤 종교가 책임을 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종교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조건은 단순하다.
-법 앞에서 예외를 요구하지 말 것.
-정치 권력과 거리를 둘 것.
-자본 축적의 구조를 투명하게 드러낼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진실을 말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처벌하지 말 것.
지금 이 질문을 외면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영성의 이름이 아니라 위험한 특권 집단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종교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하다.
권력의 방패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양심의 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침묵은 방조이며 부끄러운 교회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천주교정의평화연대 박주환 신부 복직 탄원 서명
https://forms.gle/yb9M3c4iCrbcCoyr9
참여 안내
이 탄원은
✔ 비방이나 정치적 선동이 아닌
✔ 교회와 사회의 건강한 회복을 위한
✔ 평화롭고 책임 있는 연대의 표현입니다.
뜻을 함께하시는 분들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서명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