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컨테이너안 풍경인데 작은 생일케익에 불이 붙어있고 호규가 공손히 술을 따랐다.
호리병같은 고급술로 박상이 어색하게 잔을 들고 있었다.
"선생님 생신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추..축하는 무신...고해에 태어났으니 애석해주어야지"
쭉 들이키고는 이생 잔에 술을 따르는 호규에게
"고..고맙다. 호규야"
"그건 나도 동감이오. 그 젊은 날도 어느덧 흘러가버리고...이제 죽을 날이 점점 다가오는 셈이니"
"아..! 무슨 말씀이세요. 백세시대라는데 청년이 늙은이나 되는듯이"
"뭐뭐뭣? 야..야가 또 무신..팍상"
"틀림읎는 말이구만 뭘 그려. 난 아직도 마흔 아홉살밖에 안되었고만"
일곱개의 초를 한번에 불어서 끄는 박상이었다.
"하아...요새 개그는 영 재미가.."
"그래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잖아요. 선생님은 아직 충분히 젊다고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도 충분한 나이라고요"
"호고야..넌 개그에도 소질이 읎지만...교육에도 벨로 소질이 읎단다"
"제 체험담일 뿐입니다. 제가 열일곱에 가수가 되려고 뛰어들었어요. 울 고향에서는 미쳤다고 황당해했지만 프로세계는 모두가 하나같이 늦었다고 한심해하며 말리더군요. 영재 천재들이 벌써 열살전에 조기교육중이라며. 바둑도 그렇고 미술도 음악도...온갖 학원이 어린애로 가득찼으니 대충은 맞겠지요. 하지만 그말을 듣고 제가 포기했다면 오늘의 심호규가 있었을까요?"
이와 박이 숙연해졌다.
"과연 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무리 누구눈이 좋아도 절대루 못만나지. 암"
박의 야유에도 할 말을 잃은 이사장이었다.
"나이 겨우 6학년이면서 10학년이라고 우기는 학생을 남들은 어떻게 볼까? 그려 이생은 백살넘은 전설이라고 인정해줄테니 날 4학년생으로 대접해줘. 아무 불만없이 아번님으로 대우헐게"
그래도 묵묵한 이여병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젖도 못 뗀 핏덩이 주제에 건방을 떤것 같아..."
"아녀 아니랑게..입단이란 모두를 가르칠 자격이라고도...너말이 틀림읎다"
술을 입안에 털어넣은 이생이 호규가 건네주는 안주를 손으로 저어 물렸다.
"난..오늘부터 마흔 여덟살이다. 내 나이엔 안주 따위 안먹었느니"
술병을 덥석 집어들며 입으로 가져가며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술도 먹었다!"
"하..핑계가..그거 비싼거여! 몽땅 털기만 해봐라!"
아주 조금 마시다 이내 떼는 이생
"지가 산 것도 아니면서 쿨럭쿨럭"
"지가? 지가? 지가라니! 니가 정말"
이생의 목을 두둘기며 박상을 말리는 호규
"두분 확실히 젊어지셨네요. 회춘주는 제가 정식으로 내겠습니다"
평택호변의 멋진 카페 전경. 2층 로열석쯤 자리 주변에 젊은이들이 많은데
제법 가꾸고 차려입은 이생과 박상이 좀은 어색해도 주변을 즐기는 중이었다.
호규가 큰 쟁반에 커피 큰 거 세잔과 케익 과일까지 풍성하게 가져와 내려놓았다.
"어쩌지요? 여기선 금주라네요. 헌팅은 당연 금지고"
"너 연애해도 잘하겠다 농담아니다 남자를 이리 기분좋게 만드니 여자는 홀랑..이생 안그려?"
"모처럼 맞는 야그힛네. 야가 개그는 몰라도 유머가 있당게로. 야..저그 세 여자..참말로 이쁘다..어케 작업히봐라..동석만 하면 내가 널 하나님으로 모시마"
"...울내가 완성되는 날..미스코리아 삼십명을 술집에서 부리게 하지요. 약속드립니다"
두 노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는 눈을 빛냈다.
"...분명 약속한거다?"
"호규야.."
"옙. 선생님"
"오늘 자리도 자리지만 배움은 멈출 수 읎는법. 모처럼 명강을 할 예감이 드는구나. 네게 고마워서 그럴게다만.."
호규가 즉시 수첩과 볼펜을 꺼내어들고 필기준비하는 걸 보고도 이생은 근엄을 풀지 않았다.
박상은 흥미있게 지켜보기만 할뿐.
"그래. 서편제 동편제는 알아봤느냐?"
"제..제가 게을러서 겨우 훑기만..공연 형태는 한 명의 소리꾼이 고수(북치는 사람)의 장단에 맞추어 창(소리), 말(아니리), 몸짓(너름새)을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엮어가는데..."
"옳지"
"동편제는 적벽가가 대표적으로 호방하고 직선적인데...서편제는 심청가가 대표적으로 섬세하며 애절하달지..."
"되었다. 나도 깊게 파고들면 골치 아파지니께 그 정도만. 하여간 각기 일장일단이 있어. 하지만 끼와 태라고 할지 꾼에겐 실력을 떠나서 끼와 태가 있어야 되는겨. 내가 처음에 왜 너를 알아봤것냐? 넌 태가 있다고, 된다고 직감했던 거란다. 가령 아무리 나훈아가 죽어라 용을 써도 심수봉이 절대 못 따라가. 심수봉인 태가 있기에 무난히 나훈아 따라갈 수 있어. 호규 넌 개그나 풍자는 젬병이지만 유머가 있는디 그런게 바로 태로 들어가는겨. 개그나 코메딘 태없어도 노력하고 수단과 요령만 있음 모두 따라가. 그러나 타고난 태엔 절대 못당해. 이주일 서영춘 모두 태가 없었어 내가 보기엔..아 왜 엉뚱한디서 헤매냐..
자. 현실로 돌아와보자. 넌 내가 널 호규.호구.오후.호야라고 장소와 상황에 따라 바꿔부르는 차이를 알겠느냐? 날자도 마찬가지 태후 태호 독한년 쥑일년!"
듣고 있던 박상이 이죽거렸다.
"나보고 박선배.박형.팍상.니가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지"
"예. 어림짐작이지만 알 것도 같습니다"
"동편제 서편제에 비해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중고제도 바로 그런겨..중고제 판소리를 이어받으라는 거이 아니다. 째즈 랩...등 모두 현대판 판소리가 아니고 뭐것냐? 그래서 중편제란 말이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중편제니 저작권이니 볼쌍놈이니 시비 걸릴 일 읎고 중고제 본향은 충남 아래쪽과 경기 일부인디 중편제는 전국을 모두 아우른다 서울은 물론 강원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제주도 다 품는다. 케케묵은 아래쪽 노인네들이 뭐라고 시비걸 거냔 말이다"
"마무리가 개갈 안나서 6점만 줘야것네. 이생이 고물상 오래 하더니 중고에 무슨 한이 맺혔는지 모르겠으나 전통을 그리 무시하는 것이 아녀. 나이든 노인네 학대하는 것과 다를 게 뭐인가? 이생은 누가 나이든 퇴물 취급하면 좋것어?"
"그러니까 같은 시행착오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서편제 유봉이가 그리 죽어 뭐가 남았는가 송화는 뭘 남겼고? 오늘날 송화는 그저 티비서 떼로 벌거벗고 춤추는 꼬라지 아닌가 말요"
다시 시선을 호규에게 고정하고는
"모두 떠나서 가령 너가 여기서 소리와 아니리로 멋지게 읊조려봐라 저 이쁜 처자들은 물론 삽시간에 근방의 여자들이 모두 홀려 우러러볼 거란 말여. 헌팅들어가기도 전에"
"정말 그렇겠네요"
"그렇긴 개코나..5점!"
"세상이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니 현혹되지 말거라. 잃을 것이 없는 이생이야 겁날 게 없겠지. 하지만 가진..잃을 게 많은 이들의 힘은 초능력이란 걸 알아야 한다"
"그럴지도요.하지만 중편제 이제 겨우 태동이니...시간을 두고 공부해야겠지요. 울내처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