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읽고 싶은 글
허 열 웅
“내 시를 읽어주는 분이 한 사람이면 충분하고, 두 사람이면 행복하죠, 백 명이면 위대한 일입니다”라고 곽재구 시인이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쓰는 일일 것이다. 요즘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하여 따라가기조차 힘들 지경이 되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지구촌 소식과 수준 높은 지식이 각 종 매체를 통해 빠르게 전달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적수준이 향상되어 누구나 작가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활짝 열려있는 온 라인에 분출하듯 써 올린 글들로 도배되고 있지만 끝까지 읽어내려 간 글은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독자가 끝까지 읽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어떤 창작기법이 필요할까 생각해본다. 그 동안 나는 20년이 넘게 창작교실을 다니며 시조時調로 시작해서, 자유시. 소설, 수필 등 그 분야에서 명성 있는 교수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 배웠다. 분야별로 주제선택이나 창작기법은 좀 다를 수 있으나 감동을 주거나 독자를 끝까지 읽게 만드는 기법은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글의 서술에 있어서 기승전결起承轉結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독자들은 클라이맥스나 어떤 반전을 기대하며 어떻게 끝날 것인가 궁금해서 중간에 책을 접지 않는지도 모른다. 피천득의 대표작 “인연”에서 아사꼬와의 세 번째의 만남에서도 첫 번째나 두 번째의 감정과 똑 같았다면 수필의 완성도는 물론 설령 끝까지 읽은 사람도 심드렁한 감정으로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끝 구절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의 반전으로 궁금했던 상상력과 그리움은 가슴에 품고 있을 때 가장 빛난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어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 서울 종로1가 교보빌딩 건물에 한 줄의 시가 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아왔다. 이른바 ‘광화문 글 판’의 시 중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의 나태주 시인 “풀꽃”이었다. 앞 두 구절은 중학교 수준정도면 누구나 말 할 수 있는 평범한 표현이다. 문제는 마지막 구절 “너도 그렇다”라는 결구에 있다. 여기에 클라이맥스는 물론 반전이 있기에 “너도 그렇다”에서 독자들은 너를 자신으로 대치하여 생각하기에 많이 읽히고 설문조사에 참여한 2,300명 중 가장 많이 선택한 것이라고 믿는다.
성희롱 미투로 문인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읽어보자 첫 구절에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 이더군>으로 표현해 놓고 결구엔 <꽃이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처럼 ‘잠깐이 영영 한 참‘으로 반전되었기에 이 시집을 발행하자마자 30만부 이상이 팔려나갔다고 볼 수 있다.
미투의 대상인 ‘En 시인’의 시를 분석해보자.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첫 두 구절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말이다. 마지막 구절 ‘그 꽃’이라는 표현에서 젊은이들은 이별 후 잊을 수 없는 그 연인의 매력을 회상하고 나이든 사람은 젊었을 때 모르고 스쳐지나간 인연이나 아쉽게 놓쳐버린 기회를 상상해보기에 내가 좋아하는 시 중의 한편이다.
며칠 전 합평시간에 여류작가의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진리의 말씀으로 맺은 글이 있었다. 내용이나 표현력에 있어 나무랄 데 없는 거의 완벽한 글이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되려면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자세를 낮추는 반전이 있을 때 독자도 같은 마음으로 공감을 느껴 끝까지 읽게 될 것이다. 여러 글 중에 선택해서 읽을 수 있는 독자에게는 궁금증이나 반전이 없으면 끝까지 읽고 싶은 유혹이 남아있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 동안 글을 잘 쓰는 선배작가들이 말하는 서술방법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즉 독자가 짐작하는 글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다. 또는 평범함을 뒤집는 소재로‘개가 사람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쓰면 아무도 읽으려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었다’라고 쓰면 무슨 내용이지? 하면서 호기심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100편의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백 사람에게 끝까지 읽히는 한 편의 글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신춘문예를 비롯한 각 종 현상응모작품을 심사해온 한 교수는 작품을 조금 읽어가다 보면 뒤 줄거리가 뻔해 보이는 글은 끝까지 읽지 않고 탈락시킨다고 했다. 글의 구성이나 문장력도 중요하지만 심사자나 독자가 끝까지 읽어가도록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생각한다. 글 쓰는 작가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지인이나 독자가 자기 작품을 끝까지 읽고 덕담과 함께 격려를 해줄 때이다.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공부처럼 왕도가 없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공력이다. 우선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자신의 경험은 책을 통해 얻은 또 다른 경험을 통해 만나 문장 속에서 더 생생하게 거듭나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자기답게 표현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모파상은 독자의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위로해 달라. 2, 즐겁고 때론 슬프게 해 달라. 3, 감동시켜 꿈꾸게 해 달라. 4, 전율시켜주고 생각하게 해 달라 등이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300편 이상을 책으로 엮으면서 독자를 얼마나 의식하며 끈기 있게 글을 썼는지 아쉽게 뒤돌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