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버무리
- 한나 안 -
저녁을 먹고 나 호박죽 한 그릇을 들고 길 건너에 사는 친구 집에 마실 갔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텃밭이 넒은 주택에 산다. 친구 집 텃밭에는 온갖 꽃들과 채소들이 가득 심어져 있어 그 친구 집을 방문 할 때면 텃밭에 파랗게 자라고 있는 야채들, 꽃 들을 둘러본 후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참, 우리 텃밭에 쑥이 많이 자랐는데 좀 줄까 ?” 밖이 어두워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친구는 마당가에 쭈그리고 앉아 수북이 자란 쑥을 한 움큼 뜯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잎들이 야들야들하게 자란 초록빛 겨울 햇쑥이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콧속을 간질이는 쑥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나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자랐다. 매년 봄이면 만날 수 있는 향긋한 봄나물 달래, 냉이 와 더불어 쑥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봄 친구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에 오면 친구들과 어울려 청보리 밭둑에 쭈그리고 앉아 이른 봄 땅을 박차고 올라온 쑥을 캤다. 작은 손칼로 쑥 밑동을 싹둑 도려내며 치마폭가득 쑥이 모아지면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부엌문 열어놓고 빨랫줄 간짓대 에 앉아 지지배배 지저기는 새소리 들으며,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날리는 마당가에서 쑥 속에 석여있는 잡티를 골라냈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캐어온 쑥을 쑥 형태 그 데로를 살려 찹쌀가루 밀가루를 섞어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둘러 가며 쑥전을 지져 주기도 하셨고, 멸치와 다시마 육수를 내어 씻은 쑥에 날콩가루 옷을 입혀 쑥 된장국을 끓여주시기도 하셨다. 내가 즐겨 먹던 쑥국은 된장을 풀어 바지락을 넣은 쑥국과 도다리를 넣고 끓인 도다리 쑥국이다.
쑥은 봄철 건강 채소로 식욕을 돋우는 효능이 있고 성인병예방 혈액순환이 좋아져 몸이 차가운 사람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 한다. 쑥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콩고물 옷 입은 쑥 인절미와 쑥 버무리는 먹을 것이 흔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밥을 하면서 뜸을 들일 때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열고 끓은 밥 위에 굵은 모시 천을 펴고 그 위에 밀가루에 버무린 쑥 버무리를 놓고 밥의 뜸을 들이면서 익혔다. 쑥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쭉 늘어나는 쑥 인절미를 먹은 게 참 오래 인 듯하다.
쑥 버무리와 같이 잊지 못할 추억의 간식이 있다. 우리가 살던 시골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더 깊숙한 시골로 들어가면, 평사리 우리 논들을 맡아 경작해주던 소작인집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내 또래의 여자아이 봉자가 사는 그 집으로 방학 때면 자주 갔었다. 어른들은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가고 봉자와 나는 코흘리개 아이들과 어울려 동네를 휩쓸고 다니며 놀았다. 밭둑에 열린 야들야들한 흰 박에 손톱자국을 내며 낄낄대기도 하고 밀밭에서 밀을 비벼 껌을 만들어 씹기도 하고, 냇가에서 멱 감고 물 장난치며 놀기도 했다. 점심때쯤 배가 출출 해지면 봉자는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손잡이가 긴 소쿠리를 내려 열고는 손톱만한 연한 갈색 풋콩이 듬성듬성 박힌 밀개떡과 밥알이 붙어 있는 찐 고구마를 내놓았다.
밀개떡은
집에서
밀을
맷돌에
갈아
채에
걸러서인지
입안에서
껄끄러웠으나
맛은
고소했다. 풋콩을 섞어 손으로 동그랗고 납작하게 만든 밀개떡 반죽을 밥이 끓으면 밥
위에
호박잎을
펴그
위에
놓고
뜸을
들여가며
익힌
것이다. 밀개떡과 찐
고구마가
우리들의
점심
이었다.
어렸을 적, 여름철 장마는 유난히 길고 후덥지근했다.
기와지붕에
잇대어
만든
양철처마에
또드닥
또드닥
소리를
내며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빗줄기의
작달비가
하루
종일
끝도
없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빗물이 쏟아져 내리는 처마 밑
토방에는
동그랗게
줄지어
빗물
홈들이
파였다.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쏟아지는 낙숫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무상의 경지에 이르고 빗소리는 음악이 되어 마당 가득 고였다. 천둥소리가 아주멀리서 울려오고 낙숫물이 그치는 추녀 밑으로 앞산에 무지개가 뜨고는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머슴들도
밥하는
언니도
하루
종일
집안에
박혀
빗소리
자장가에
취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는
했다. 영애 언니는 파란 비닐우산을 펴들고 밭담 울을 뒤덮은 호박넝쿨을 뒤져서 애호박을 따서는 채를 썰어 햇
밀가루에
버무려
호박
부침개를
부쳐
주었다. 부침개를 부치는 고소한 냄새는 집안에 진동했다. 볶은 콩 한 공기에 참기름이 자르르 도는 연둣빛 애호박 부침개는 장마철 지루함을 잊게 하는 최상의 간식이었다.
시드니에서 쑥을 만난 게 뜻밖이다. 이 귀한 쑥으로 무엇을 만들까? 싱싱한 도다리를 사서 도다리쑥국을 끓여볼까 ? 아니면 바지락을 넣고 쑥 된장국을 끓여볼까 ? 망설이다가 쑥 버무리를 만들기로 했다. 잡티를 골라낸 후 흐르는 물에 쑥을 씻어 멥쌀가루에 버무려 쑥 버무리를 만들었다. 찜 솥에서 퍼지는 그윽한 쑥 향은 집안 가득하고, 마음은 어렸을 적 시골로 돌아가 서성이었다.
쑥 버무리
- 한나 안 -
저녁을 먹고 나 호박죽 한 그릇을 들고 길 건너에 사는 친구 집에 마실 갔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나와는 달리 친구는 텃밭이 넒은 주택에 산다. 친구 집 텃밭에는 온갖 꽃들과 채소들이 가득 심어져 있어 그 친구 집을 방문 할 때면 텃밭에 파랗게 자라고 있는 야채들, 꽃 들을 둘러본 후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 참, 우리 텃밭에 쑥이 많이 자랐는데 좀 줄까 ?” 밖이 어두워 핸드폰 라이트를 켜고 친구는 마당가에 쭈그리고 앉아 수북이 자란 쑥을 한 움큼 뜯어서 비닐봉지에 넣어 주었다. 잎들이 야들야들하게 자란 초록빛 겨울 햇쑥이 고향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콧속을 간질이는 쑥 냄새가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나는 유년기를 시골에서 자랐다. 매년 봄이면 만날 수 있는 향긋한 봄나물 달래, 냉이 와 더불어 쑥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의 봄 친구이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집에 오면 친구들과 어울려 청보리 밭둑에 쭈그리고 앉아 이른 봄 땅을 박차고 올라온 쑥을 캤다. 작은 손칼로 쑥 밑동을 싹둑 도려내며 치마폭가득 쑥이 모아지면 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부엌문 열어놓고 빨랫줄 간짓대 에 앉아 지지배배 지저기는 새소리 들으며, 벚꽃이 꽃비가 되어 날리는 마당가에서 쑥 속에 석여있는 잡티를 골라냈다. 엄마는 언니와 내가 캐어온 쑥을 쑥 형태 그 데로를 살려 찹쌀가루 밀가루를 섞어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둘러 가며 쑥전을 지져 주기도 하셨고, 멸치와 다시마 육수를 내어 씻은 쑥에 날콩가루 옷을 입혀 쑥 된장국을 끓여주시기도 하셨다. 내가 즐겨 먹던 쑥국은 된장을 풀어 바지락을 넣은 쑥국과 도다리를 넣고 끓인 도다리 쑥국이다.
쑥은 봄철 건강 채소로 식욕을 돋우는 효능이 있고 성인병예방 혈액순환이 좋아져 몸이 차가운 사람은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분이 있다 한다. 쑥으로 만든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콩고물 옷 입은 쑥 인절미와 쑥 버무리는 먹을 것이 흔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밥을 하면서 뜸을 들일 때 커다란 가마솥 뚜껑을 열고 끓은 밥 위에 굵은 모시 천을 펴고 그 위에 밀가루에 버무린 쑥 버무리를 놓고 밥의 뜸을 들이면서 익혔다. 쑥 향이 은은하게 나면서 쭉 늘어나는 쑥 인절미를 먹은 게 참 오래 인 듯하다.
쑥 버무리와 같이 잊지 못할 추억의 간식이 있다. 우리가 살던 시골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더 깊숙한 시골로 들어가면, 평사리 우리 논들을 맡아 경작해주던 소작인집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내 또래의 여자아이 봉자가 사는 그 집으로 방학 때면 자주 갔었다. 어른들은 논과 밭으로 일하러 가고 봉자와 나는 코흘리개 아이들과 어울려 동네를 휩쓸고 다니며 놀았다. 밭둑에 열린 야들야들한 흰 박에 손톱자국을 내며 낄낄대기도 하고 밀밭에서 밀을 비벼 껌을 만들어 씹기도 하고, 냇가에서 멱 감고 물 장난치며 놀기도 했다. 점심때쯤 배가 출출 해지면 봉자는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손잡이가 긴 소쿠리를 내려 열고는 손톱만한 연한 갈색 풋콩이 듬성듬성 박힌 밀개떡과 밥알이 붙어 있는 찐 고구마를 내놓았다. 밀개떡은 집에서 밀을 맷돌에 갈아 채에 걸러서인지 입안에서 껄끄러웠으나 맛은 고소했다. 풋콩을 섞어 손으로 동그랗고 납작하게 만든 밀개떡 반죽을 밥이 끓으면 밥 위에 호박잎을 펴 그 위에 놓고 뜸을 들여가며 익힌 것이다. 밀개떡과 찐 고구마가 우리들의 점심 이었다.
어렸을 적, 여름철 장마는 유난히 길고 후덥지근했다. 기와집웅에 잇대어 만든 양철처마에 또드닥 또드닥 소리를 내며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빗줄기의 작달비가 하루 종일 끝도 없이 주룩주룩 쏟아졌다. 빗물이 쏟아져 내리는 처마 밑 토방에는 동그랗게 줄지어 빗물 홈들이 파였다.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 쏟아지는 낙숫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무상의 경지에 이르고 빗소리는 음악이 되어 마당 가득 고였다. 천둥소리가 아주멀리서 울려오고 낙숫물이 그치는 추녀 밑으로 앞산에 무지개가 뜨고는 했다.
비 오는 날이면 머슴들도 밥하는 언니도 하루 종일 집안에 박혀 빗소리 자장가에 취해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는 했다. 영애 언니는 파란 비닐우산을 펴들고 밭담 울을 뒤덮은 호박넝쿨을 뒤져서 애호박을 따서는 채를 썰어 햇 밀가루에 버무려 호박 부침개를 부쳐 주었다. 부침개를 부치는 고소한 냄새는 집안에 진동했다. 볶은 콩 한 공기에 참기름이 자르르 도는 연둣빛 애호박 부침개는 장마철 지루함을 잊게 하는 최상의 간식이었다.
시드니에서 쑥을 만난 게 뜻밖이다. 이 귀한 쑥으로 무엇을 만들까? 싱싱한 도다리를 사서 도다리쑥국을 끓여볼까 ? 아니면 바지락을 넣고 쑥 된장국을 끓여볼까 ? 망설이다가 쑥 버무리를 만들기로 했다. 잡티를 골라낸 후 흐르는 물에 쑥을 씻어 멥쌀가루에 버무려 쑥 버무리를 만들었다. 찜 솥에서 퍼지는 그윽한 쑥 향은 집안 가득하고, 마음은 어렸을 적 시골로 돌아가 서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