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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는 등불
27: 20-21
20.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21. 아론과 그 아들들로 회막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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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하여 이사야는 ‘메뚜기 같은 존재’(사 40:22), ‘구더기 같고, 지렁이 같은 존재’라고 했고(사 41:14). 욥기에서는 인간을 ‘한 번의 호흡에 비유’했으며(욥 7:7), 시편 기자는 ‘그 호흡이 끊어지면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시 146:4). 이 세상에는 연약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심히 연약한 것은 우리 인생들입니다. 모든 인생은 연약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한낱 티끌과 같은 존재입니다. 실로 인생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빛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는 ‘하나님’을 빛이시라고 말씀하였고, 요한복음 1장 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말씀했으며, 마태복음 5장 14절에는 ‘믿는 성도’를 빛이라고 했습니다. 또 마태복음 4장 16절에서는 ‘구원의 복음’을 빛이라, 시편 97편 11절에는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린다’, 잠언 13장 9절에는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하고 등불이 필요합니다.
등불의 필요성
제사 진행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으로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지으라고 명령하셨는데 그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 안에는 창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세상의 빛이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성막 안에 등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 볼 수도 없었습니다. 등불만이 제사장들이 일할 수 있는 조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밤길을 안내할 때 쓰여졌습니다.
옛날에는 밤에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혹은 밤에 길을 가기 위해서 등불을 켜들고 다녔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어두움에 덮여 있습니다. 사회와 경제와 정치가 캄캄함으로 가리워져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지식과 과학이 혼돈과 어두움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청소년, 어른에 이르기까지 어두움에 휩쓸려 있습니다. 이 세상은 실로 등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성령의 등불, 하나님의 빛이 없으면 방황하게 되고 헤매게 되고 혼돈과 무질서로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파숫꾼이 파수를 볼 때에도 등불을 켜놓았습니다.
옛날에는 도시의 성곽마다 높은 망루를 세워놓고 교대하면서 성을 지키는 파숫군이 있었는데 불이 없으면 파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적의 동태를 살피고, 적이 쳐들어오는지, 원수가 어디쯤 왔는지 알 수 있고 또 아군들에게 상황을 전할 때에도 등불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 마귀를 성령의 능력으로 대적하고,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는 죄를 물리치기 위해서 성령의 불빛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이 세상은 빛이 있어야 생명이 살 수 있고, 빛이 있을 때 모든 무질서와 흑암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빛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빛이 없는 인생은 결국 인격과 삶에 파선을 당하여 좌절과 절망과 낙심 가운데 빠져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밝혀주시는 빛의 등대이시며, “세상의 빛”이십니다(요 9:5). 그 빛을 받은 자만이 이 세상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꺼져가는 원인
성경에서 불은 늘 성령을 상징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뜨거운 열심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꺼진 썰렁하고 냉랭한 가슴으로는 일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등불이 왜 꺼져갑니까?
기름이 모자라서 꺼져갑니다.
성막 안의 등대에는 항상 기름을 가득 채워야 했습니다. 등에 기름을 채워야 한다는 것은 우리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등에 항상 기름이 가득 채워져야 하듯이 성도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만이 존재가치가 있고, 예수님이 우리 중심에 계실 때문만이 살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충만할 때만이 사는 역사,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심지가 다 타서 꺼져갑니다.
심지가 완전히 타버리면 불똥이 생기면서 불빛은 점점 약해지고 사그라들고 맙니다. 신앙에도 불똥은 금물입니다. 교만의 불똥, 불평불만의 불똥, 혈기의 불똥, 불순종의 불똥은 신앙생활을 훼방하는 방해꾼입니다. 불똥 신앙은 성령충만하지 않은 삶입니다. 불똥 신앙은 나도 괴롭고, 다른 사람도 괴롭힙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방해하는 아주 나쁜 요소입니다.
다윗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마옵소서”(시 27:9)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나를 떠나기 전에, 성령께서 나를 버리기 전에, 그래서 모든 은사를 잃어버리고, 은혜를 다 태워버리기 전에 말씀으로 충만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고, 열심히 충성, 봉사, 헌신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이 졸고 있기 때문에 꺼져갑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등잔불을 항상 정리해야 했습니다. ‘정금 등대의 위치는 올바르게 놓여 있는지’, ‘불똥 집게와 불똥 그릇은 제대로 정돈되었는지’, ‘심지가 너무 많이 나와 그을음은 나지 않는가?’, ‘심지가 너무 들어가 꺼지려고 하지 않는가?’, ‘기름은 제대로 공급되고 있는지?’ 제사장들은 아침저녁으로 등대를 살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직분자들은 성도의 형편을 잘 살펴서 영적진단을 바르게 하고 언제나 등불을 밝게 비출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낙심하여 들어간 심지는 격려로 올려주고 너무 올라간 교만의 심지는 책망으로 내려주고, 불똥이 생긴 심지는 말씀으로 잘 다듬어주고, 졸고 있는 심지는 기도로 깨워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등대는 밝고 환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꺼져가는 모양
어둡습니다.
성막의 등대는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불이 항상 켜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막 안은 밤이고 낮이고 빛 한 점 없이 캄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등대만 있고 불이 없는 등대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빛을 발하지 못하면 그 교회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등대가 되어 내 가족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우리 이웃에게, 이 땅에 그리스도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악취가 납니다.
성령의 불이 꺼진 신자, 믿다 그만둔 사람, 그처럼 추한 것이 없습니다. 불이 꺼진 신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닌 사람냄새를 풍기고, 교만냄새를 날리고, 죄의 냄새를 냅니다. 성령의 불이 꺼져 악취를 풍기는 사람은 결국 저주와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열이 식어져갑니다.
성소나 지성소에는 의자가 없기 때문에 앉을 수도 없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늘 서서 일해야 했습니다. 서서 진설병을 먹어야 하고, 서서 향을 살라야 하고, 서서 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우리는 받은 사명을 위해 서서 열심으로 봉사하고, 서서 열심으로 헌신하고, 서서 열심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식지 않습니다.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오래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인내의 세계이십니다.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길이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은 인내의 하나님이시며, 오래참으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은 결코 더디지 않고, 결코 늦추지도 않으십니다. 우리가 너무 성급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신앙생활의 모든 부분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기도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랑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전도와, 봉사에도 다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인내가 없는 승리가 없고, 인내가 없는 복이 없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은 미련하고 둔하여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에 불과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이런 쓸모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사랑의 관심을 가지시고, 크게 여기시고, 마음을 쓰시고, 아침마다 권장하시고 분초마다 시험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한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심판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도 않으십니다. 창조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사는 존재요, 허무하고 덧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쓴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벧전 2:9). 그리고 그 옛날 불안한 광야 길을 직접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들을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꺼져가는 심지처럼 절망과 낙심과 좌절과 어두움에 있는 우리 인생들을 다시 회복시켜 큰 횃불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불티같은 인생을 다시금 고쳐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합시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나아가는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기도로 충만하고 말씀이 충만하고 은혜가 충만한 법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성장, 부흥할 것이요, 민족은 부강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심지 갈고 불을 돋우어 서울과 경기도를 비추고 이 민족을 생명의 길로 인도합시다.
불을 밝히는 계절
출 27: 20-21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신으로부터 세상을 창조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물들과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만들면서 각 동물들에게 한 가지 능력을 부여했습니다.
어떤 동물에게는 날개를 붙여 주었습니다.
어떤 동물에게는 아주 단단한 껍질을 주었습니다.
혹은 날카로운 이빨을 주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뒷발을 주기도 했습니다.
동물들에게 하나씩 다 주었는데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었을까요?
프로메테우스는 하늘로 올라가서 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불을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불을 가지고 모든 동물들을 지배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신화입니다. 허황 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뒷부분 불이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은 제법 그럴 뜻하게 들립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 세상은 엇감과 혼동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일 먼저 만드신 것이 무엇입니까? "빛이 있으라." 빛을 만드셨습니다.
엇감과 혼동이 있는 가운데 주님의 말씀과 함께 빛이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환하게 되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므로 세상을 밝히셨습니다.
어두운 세상은 하나님이 밝혀 놓으신 불빛으로 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빨리 흘러 성탄의 계절을 맞았습니다. 불을 밝히는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백화점이나 호텔 같은 곳을 보면 벌써 아주 성질도 급하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불이 아주 반짝반짝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 입구에도 성탄 장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들어오실 때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셨을 것입니다. 왜 성탄절이 다가오면 이런 트리를 장식하고, 또 불을 밝히는 것입니까?
심지어 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 술집 같은 곳에도 트리를 만들고 불을 밝히는 모습을 보면 우습습니다. 그런데 왜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사실 불을 밝히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 뜻이 무엇일까요?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 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세상을 밝힌 참된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 요한복음1:4,5절 말씀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해마다 12월이 다가오면 저 전방 애기봉이라는 곳에 크리스마스 성탄 점화식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절망 가운데 있는 이북 동포들이게도 주님 나신 소식을 전하자. 불을 밝히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정말로 필요한 곳, 그 곳에 빛이 비추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빛이 되는 것을 잘 알기 위해서는 언어의 본문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에서 광야를 행진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만드실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동씩 교회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성막의 구조와 식양을 하나 하나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성막을 또는 회막이라고도 합니다.
왜 회막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만나는 장소, 이런 회막을 설계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을 밝히는 방법까지도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으로 찧어 낸 순결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불을 켜되" 여러분 장막에 불을 밝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기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보통 기름이 아니라, 순도 높은 기름이 필요했습니다. 오직 감람나무 열매를 가지고 짜낸 기름이라야 이 회막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름이 되었습니다. 왜냐면 이 올리브는 아주 특수한 기름입니다. 지방이 60%가량 함류 된 그런 기름입니다. 그래서 오래 동안 탈수가 있습니다.
올리브 가운데서도 최상품 깨끗하게 청소를 해서 그것을 절구에 넣고 찧습니다. 그러면 기름이 나오는데 그 기름은 무색, 색이 없습니다.
아주 투명합니다. 그리고 이 기름을 사용해서 불을 붙이면 연기가 전혀 나지 않습니다. 아주 순도 높은 올리브유를 바로 그렇게 얻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빛이라고 말씀하는데, 예수님이 그냥 빛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죄악과 탐욕으로 어두워진 세상에 밝은 빛이 되기 위하여 그의 전 세계가 올리브 열매가 절구에서 빠지고 아주 잘게 부수어 지듯이 그래서 기름을 만들게 되었듯이 우리 주님의 전 세계는 깨어지고, 부수어 지고 빻아지는 그런 올리브유를 만드는 일생과도 같은 삶을 사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땀을 흘리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를 흘리셨습니다. 올리브 열매가 절구에서 찧어져 기름을 내듯이 예수님의 일생 동안 눈물과 땅을 흘리시고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죄악과 어두움을 밝힐 순수한 기름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기름을 짜는 듯한 모습이 여러 성경에 나옵니다. 몇 군데인가 찾아 보실까요? 누가복음22:4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지금 기름을 짜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의 흐르는 땀이 마치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처럼 변하는, 마치 그 올리브유를 찧어서 기름을 만드는 과정을 눈앞에서 보는 듯 합니다. 요한복음19:34절 말씀입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우리 주님의 몸에서 물이 나오고 피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그냥 불을 밝혀서는 안됩니다. 불을 밝히기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이 올리브처럼 깨어지고 상하시면서 기름을 만드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그에게 감사하면서 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신만이 우리의 빛이십니다." 중세 유럽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무엇입니까?
흑사병이라는 병이었습니다. 왜냐면 몸이 검게 되면서 죽게 되는 병입니다. 쥐가 이 병을 옮기는데 페스트라는 병입니다. 한번 발병을 하면 온 마을이 다 병듭니다.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수십 만명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에 마르세유라는 도시에 흑사병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죽어 갔습니다. 의사들이 모여서 대책을 논의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쥐를 다 잡읍시다."
쥐를 잡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너무 많기 때문에 "불을 다 질러 버립시다." 불을 질러도 사람을 살 곳이 없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지 말고 방금 죽은 시체를 잘 해부해 보면 이 페스트의 원인을 알 수 있으니 연구해 봅시다." "그건 누가 합니까?" 문제는 이 페스트 병에 감염되기 너무 쉽습니다. 해부하다가 다 죽을 것입니다. 그 때 한 의사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의 이름을 규원이라는 의사였습니다. "내가 내 조국의 안전을 위하여 내 몸을 바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이 일을 하겠습니다." 담대하게 그는 일어섰습니다. 그날 밤 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합니다. "주여, 내 몸을 드리오니 이 몸을 받으시고 페스트가 이 땅에 사라지게 해 주시옵소서.
내 민족들이 구원받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를 하고 새벽에 방금 죽은 흑사병 시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해부를 시작합니다. 열심히 해부를 하고 원인을 알기 위해서 여러 중요한 정보를 적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록된 모든 것을 식초 속에 담궜습니다. 전염되지 않기 위하여 드디어 정확하게 12시간만에 이 규원의사는 죽고 말았습니다.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었지만 그 모든 연구했던 자료를 기초해서 모든 병을 규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치료약을 만들어 내었고 많은 사람들을 흑사병으로부터 구출해 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의 몸을 던져 흑암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빛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경배하고 있지만, 이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것을 다 아시면 서도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의 몸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므로 친히 어둠을 밝히는 기름이 되셔서 우리에게 빛을 주셨던 것입니다.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사야53: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빛이십니다. 기름이 준비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순도 높은 감람나무가 준비되었다고 해도 그 기름을 가지고 와서 붙고, 불을 켜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주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등불을 켜는 일입니다. 빛을 받아야 합니다. 불을 켜야 합니다. 성막 안에서 등불을 켤 때, 온 성막이 환해지듯이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악이 물러갑니다.
미움이 물러갑니다. 그래서 환하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의 빛을 받아들일 때, 가정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우리 나라에 주님의 복을 받아들일 때, 나라에 빛이 비추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빛이라고 무조건 빛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짜 빛도 참 많습니다. 오직 순결한 감람나무로 만든 기름이라야 이것이 진짜 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 우리 삶 속에 빛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16세기에 나타난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개몽주의입니다. 여러분 개몽주의가 무엇입니까? 개몽주의라는 것은 이성이 참된 빛이라는 것입니다. 이성을 각성을 시키면 그 이성으로 말미암아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몽주의는 "빛을 밝힌다."라는 뜻입니다. "우리 이성에 불을 밝히는 이성이 일류로 하여금 행복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고, 발전하게 할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인간 이성이 절대로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히틀러, 그는 이성의 이름으로 유테인 6백 만명을 학살했습니다.
그가 내 세운 이성이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열등 종족이 있고, 우등 종족이 있는데, 이 열등한 종족을 없애는 것은 일류 공영을 위해 필요합니다.
"우리 위대한 게르만 민족, 인류의 이름으로 열등한 문제 투성인 유테인들을 죽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잘못된 이성의 빛이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그 사실을 듣고, 다 동참을 했습니다. 6백 만명을 죽여도 양심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빨리 이성의 빛을 받은 나라라고, 자기들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개화된 나라라고 아시아 여러 민족들을 개화시키는 일, 살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자."라고 해서 일으킨 전쟁이 무엇입니까? 바로 대동아 전쟁입니다. 태평양전쟁이 아니겠습니까! 참으로 그들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의 구렁이로 몰아 넣었습니다. 731부대가 인간의 몸을 마루타로 이용을 해서 인체 실험을 하는 수많은 일들 이성의 이름으로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성은 절대로 빛이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빛이십니다.
그 빛을 받아야만 참된 밝음과 향상이 나타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종족은 바로 영국의 원주민 앵글로 색손족입니다
. 이 종족은 원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야만족이었습니다.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싸움만 하고, 아주 사나운 야만 종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빛이 이 앵글로 색손족에게 들어갈 때, 그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신사의 나라로 변했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족속을 이루었습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왕족 시대에는 해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는 그런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독일도 처음에는 주변 나라보다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16세기에 마틴루트를 통해서 성경을 번역하고 복음의 빛이 그 민중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독일 민족은 위대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과학, 철학, 법학의 세계적인 중심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발전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도 빛을 받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빛을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빛을 받지 않으면 어떤 증상이 생깁니까? 멜라톤이라는 호르몬이 생성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이 가라앉고 삶의 의욕이 없고, 짜증만 나고, 죽고 싶은 마음만 생긴다고 합니다
. 빛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빛을 받아야 활력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닫아 놓고 자면 잠이 더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의욕이 점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 정신병원을 가면 밝은 빛을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영혼도 참 빛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않으면 활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빛이 켜지면 기쁨이 넘칩니다. 행복이 넘칩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복음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예수님의 등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돈은 절대로 빛이 아닙니다. 가짜 빛입니다. 돈이 오면 빛이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돈 때문에 어두워지는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권력이 빛이 될 수 없습니다. 명예도 빛이 아닙니다. 과학도 빛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빛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을 밝히는 계절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우리 마음에 영접합시다. 그리스도의 등불이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 가정 속에 환하게 켜지게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독일에 가서 유학을 하던 남녀가 있었습니다.
너무 잘생기고 부족한 것이 없는 남녀였습니다. 둘이 결혼을 했습니다. 학위를 다 마치고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귀국을 했습니다. 한국에서 정착을 하는데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지 모릅니다.
그러나 살다 보니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똑똑한 사람들이 복잡합니다. 부부 싸움을 매일 하다가 마지막에는 "우리 서로 갈라서자." 이혼을 결심을 했습니다. 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마침 남편이 유럽으로 6개월 출장을 받았습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내가 6개월 뒤에 올테니 그때 우리 도장을 찢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좋아. 빨리 할게 뭐 있어."라고 그런데 남편을 보내고 난 여인의 마음속에 캄캄함이 임했습니다. 절망적입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그는 밤중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합니다. 교회 나가서 주님을 영접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점점 마음이 밝아집니다. 머리가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합니다. 6개월 뒤에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공항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아니, 당신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왜 그렇게 얼굴이 환해졌는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한 마디 합니다. "여보, 나 교회 다녀요." "교회?" "여보, 우리 같이 교회 갑시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부부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도장을 찢었을까요? 찢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서울에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훌륭한 믿음의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빛만 들어오면 미움이 사라집니다. 절망이 사라집니다. 눈물이 사라집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환하게 그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등불을 높이 드십시오. 빛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어둠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미움이 물러갈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한숨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절망과 좌절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을 준비하시면서 내 삶의 구석구석에 등불을 켜고 빛을 받으셔서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 가정의 삶을 구석구석을 밝히는 귀한 은혜의 계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빛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나아가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야 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이 성막 안의 불을 꺼지면 안됩니다. 그래서 그 불을 항상 병자 돌보듯이 잘 보호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 불을 자손 대대로 옮겨가야 할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손 대대로 빛추어야 할 불이었기 때문입니다
. 21절 말씀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로 희막 안 증거궤 앞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여호와 앞에 그 등불을 간검하게 하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대대로 영원한 규례니라." 간검이 무엇입니까?
"간"자는 바로 간호할 "간"자입니다. 그러니깐 불을 마치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듯이 그렇게 잘 보살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기만 그 불을 보지 않고 그 불이 대대로 이어져서 수많은 사람에게까지 비출 수 있는 불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불을 켜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 불이 계속 비추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나 혼자 만을 위한 빛이 아닙니다. 나 혼자 만을 위한 불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귀한 은혜의 빛, 이것은 나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빛을 받은 사람은 마땅히 빛을 세상에 비추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그 빛을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내 개인과 가정이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들이는 것을 신앙의 출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완성은 무엇입니까? 내가 받은 빛을 다른 사람에게 비출 수 있으면 그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6절 말씀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는 것은 우리만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집 안방에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을 밝히고 보고 좋아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 빛은, 그 불은 우리만 보고 즐기는 불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향해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할 때만 크리스마스 불빛의 의미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빛을 비추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유명한 중국 선교의 아버지 허디슨 테일러입니다. 한번은 예수를 방금 믿은 성도가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면 좀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될까요? 성경을 얼마나 더 읽으면 제법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될까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테일러 목사님은 말합니다. "날 따라 들어오시오." 그리고 등불에 불을 붙였습니다. 심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방이 환해졌습니다. "형제여 지금 내가 심지에 불을 붙였는데 이 빛이 언제부터 나오기 시작했습니까?"
"그거야, 목사님이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그 빛이 바라게 되었지요." "옳습니다. 형제여, 예수를 방금 영접을 해도 그때부터 빛은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 기다릴 것 없습니다. 지금부터 형제는 그리스도를 위한 빛이 될 수 있습니다.
형제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달이 해 빛을 반사하듯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듯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지난 주일에 오신 분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2부 예배 시간에도 참 많이 오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처음 믿으신 분이라도 그 상태 그대로 빛을 바랄 수 있습니다. 10년, 20년 믿어야 빛 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주님과 함께 살면 저절로 빛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래 전에 믿으신 성도 여러분 두말 할 것 없이 확실한 세상의 빛이 되셔야 합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막의 등불을 늘 돌보고 간검하듯이 우리들도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합니다. 복음의 등불을 높이 들고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를 쉬지 마십시오. 계속 전도를 해야 주님의 빛이 온 세상을 밝힐 것입니다.
여러분 불을 밝히는 계절에 주님의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을 향해 사랑의 등불을 높이 들고 비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존경하는 성프렌시스가 말을 타고 들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람 부는 들판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얼마나 불쌍해 보였든지 가서 물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내가 추워요." 부들부들 떨면서 춥다고 했습니다. 말에서 내려 성프렌시스는 자기 옷을 벗어 그 사람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얼굴을 가만히 보았더니 일그러져 있는 한센시병 환자였습니다. "이제 됐소?" "아뇨, 추워요?" 가까이 다가가서 그 사람을 안아 주었습니다.
"이제 됐소?" "얘, 이제 따뜻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논 주위가 환해지더니 하늘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프렌스시 이제 네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겠노라." 바로 그 사람은 예수님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난 때문에 실직한 가운데 질병 가운데 떨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다가갑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사랑의 등불로 높이 듭시다. 그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덮어 주고 그들을 안을 때까지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빛을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들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을 밝히는 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되 빛인 것을 고백합시다. 주님만이 이 세상의 죄악가 절망을 밝힐 빛이십니다. 어둠과 미움이 가득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등불을 켭시다.
이 시간 우리 속에 미움이 있습니까? 절망이 있습니까? 좌절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빛을 받읍시다.
그리하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미움과 죄악과 절망들이 다 물러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욕심과 헛된 생각이 물러가고 질리와 자유의 빛만 충만하게 합시다
. 세상을 향해 복음의 등불을 높이 듭시다.
그리고 주님만이 참 희망이요, 주님만이 빛이라고 복음을 전합시다. 세상을 향해 사랑의 등불을 높이 들어 질병과 가난과 고독 중에서 허덕이는 우리의 이웃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밝혀 주는 이 계절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고 우리의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빛을 밝히는, 불을 밝히는 복된 계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