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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9-34
솔로몬에게 본 받을 점 / 박봉수 목사
작년 말부터 개명신청이 쇄도한다고 합니다. 2005년 11월 “이름을 바꿔달라고 신청한 사람에게 범죄 은폐 등 나쁜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고 대법원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한 분이 개명허락을 받아서 이름을 바꿨답니다. 원래 이름이 김섭섭입니다. 아버지가 풍진 세상 불꽃처럼 살라는 뜻에서 불꽃 “燮”자를 그것도 두 개나 넣어서 김섭섭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아버지가 이름 속에 자식에 대한 기대를 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름이 놀림감이 되는 바람이 그 기대는 꽃피우지 못했습니다.
어느 학교에 문제아가 있답니다. 갖가지 사고는 도맡아 치고 선생님들이 두 손 두발 다 들 정도랍니다. 학교에서 퇴학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정도랍니다. 그런데 그 아이 이름이 “주 찬양”이랍니다. 분명히 부모가 늘 찬양하며 살라는 신앙적 기대를 그 이름 속에 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찬양은커녕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와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납니다. 많은 경우 그 기대를 이름에 담아 새겨놓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기대가 너무 부담스러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아예 그 기대를 저버리고 욕된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또한 때로 그 기대에 부응하며 자랑스러운 삶을 살 때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솔로몬은 특별히 하나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습니다.
대상 22: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 아비 다윗에게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림으로 이스라엘에 평강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을 바라시는 하나님의 기대가 그 이름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삼하 12:2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심을 인함이더라.”
솔로몬이 태어나자 하나님께서 다시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솔로몬의 또 다른 이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디디야”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살아달라는 기대가 그 이름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엡 2:10 말씀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솔로몬뿐 아니라 우리도 이 땅에 태어날 때 하나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솔로몬의 삶은 우리에게 귀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의 지침을 줍니다.
기대 이상의 삶
대하 1장을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 왕권을 장악한 후에 제일 먼저 했던 일은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나와 제사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우선 솔로몬은 예루살렘에서 약 11키로 북쪽에 위치한 기브온 산당을 제사처로 삼았습니다. 아직 성전이 세워지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브온 산당에 모세가 만들었던 하나님의 회막 곧 성막이 있었고, 그 옛날 브살렐이 만들었던 놋제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의 예배 태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어서 예배 장소에 대한 규정이 없었던 때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산당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성막이 있던 곳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솔로몬은 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물론 일천번제란 천 번의 제사라는 일천 번 제(一千番 祭)는 아닙니다. 천 마리의 번제물로 드린 제사라는 일천 번제(一千 燔祭)입니다. 그래서 표준 새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번제물은 일천 마리가 넘었을 것이다”
여기서 솔로몬의 예배에 대한 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00마리의 번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면 얼마나 정성을 쏟았겠습니까? 천 마리의 소를 값으로 따진다면 얼마나 될 것이며, 또한 천 마리의 소를 제물로 각을 뜨고 피를 받고 불사른다면 그 수고가 또한 얼마나 될 것입니까?
어쨌든 이 전무후무한 제사를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셨습니다. 왕상 3: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나님께서 뜻밖의 엄청난 제사를 받으시고 너무 놀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상을 주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예배로 하나님의 기대를 넘어 하나님을 놀라게 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지난 5월에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새가족은 많이 늘었는데 생각만큼 예배 출석 인원이 늘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를 찾아보니 주일을 끼고 연휴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학교 가지 않는 소위 ‘놀토’라는 것도 끼어있었습니다. 다른 교회도 알아보니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주말 마다 비가 오기를 바라기 까지 했습니다.
현대의 복잡한 상황 속에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성수주일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직장 상황이 여의치 않고, 가정과 주변 상황이 예배드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이유가 있고, 핑계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해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기브온 산당을 찾아 제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솔로몬을 기뻐하셨던 것처럼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배에 정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일천 번제로 제사에 정성을 다한 솔로몬을 기뻐하셨던 것처럼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왕상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왕상 3:5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감동적인 제사를 받으시고 너무 기쁘셔서 상을 주시고자 물으신 것입니다. 3:9에 솔로몬이 이렇게 답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답에 더 큰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3:11을 보면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이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답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장수나 부귀나 개인적인 정치적 권력을 구할 줄로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도록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되 무엇을 기도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간구하기보다 주님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도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것 자체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솔로몬처럼 기도를 잘 드림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릴 수 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삶
솔로몬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나서 바로 성전 건축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대상 28:1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는 삼갈찌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소의 전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찌니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대상 28:11절 이하를 보면 성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하나님께 받은 그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기가 왕으로서 성전을 지어야 하며 또한 어떻게 지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치밀하게 성전건축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왕이 된 후 4년 이 월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왕상 6:3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십 일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성전을 그대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잘 짓고 난 다음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서 봉헌했습니다. 왕상 8장을 보면 성전에 언약궤와 기물들을 완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께 봉헌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왕상 9:2 이하를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고 나자 하나님께서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이 성전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 가운데 임재해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나아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성전건축이라는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우선적으로 기대를 품으셨던 것이 바로 성전건축이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이미 준비를 시작하셨고, 설계도까지 자세하게 전하셨습니다. 솔로몬은 그대로 철저하게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대로”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가 있습니다.
노만 카슨이란 분이 나이 50세에 온 몸이 시멘트처럼 굳어지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99%가 장애인이 되거나 죽게 되므로 그는 깊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는 잠언 17장 22절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치유의 방법임을 믿고 다른 치료를 중단하고 말씀대로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카슨은 그날부터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킬만한 비극이나 폭력 등 어두운 내용의 책은 일체 보지 않고, 웃을 수 있고 마음이 기뻐지는 희극이나 즐거운 노래 등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소리 내어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1년 뒤 카슨의 난치병은 완전히 치유되었습니다. 그는 치유된 후 웃음과 건강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교수가 되어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에 대해서 강의하였고‘질병의 해부’라는 책도 썼습니다. 사람들은 그를‘웃음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솔로몬처럼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해 살 수 있고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사람들의 뜻대로 사시는 일을 중단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기대를 저버린 삶
솔로몬의 말년은 정말 우울하고 안타깝습니다. 후반기 통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잘못을 범합니다.
우선 왕상 10:26에서 “그는 자신을 위하여 많은 말들을 모으지 말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마병과 병거를 자신을 위해 모았습니다. 왕상 10:28-9을 보면 “그가 말들을 모으기 위하여 백성들을 애굽으로 내려 보내지 말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사람들을 보내어 말들을 애굽에서 가져왔습니다. 왕상 11:1-4에서 “그는 그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비가 700이나 되어 왕비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키게 했습니다. 이 점이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왕상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상 10:16-7을 보면 “그는 자신을 위하여 은과 금을 많이 모으지 말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자신을 위해 엄청난 재물을 모았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왕상 11장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됩니다. 9절에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13절을 보면 나라를 빼앗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입니다.
왕상 11:14을 보면 하닷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반기를 들었습니다. 11:23을 보면 르손이라는 사람이 일어나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11:26을 보면 여로보암이 일어나 반기를 들었습니다. 끝내 북왕국을 세우고 르호보암과 맞서게 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면서 고통 중에 살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기대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사람이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적 긴장을 풀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부흥성회에 오셨던 김삼환 목사님께 제가 개인적으로 여쭈었습니다. 목회의 대선배로서 오늘 이 시대의 목회 지침을 하나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평소 늘 생각하시던 것 하나를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 긴장을 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회 자리를 잡았다고,매사가 순탄하게 잘 이루어진다고, 심각한 기도 제목이 없다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목회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늘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하루하루 영적으로 긴장하며 목회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제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더 긴장의 고삐를 죄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만사가 다 순탄하게 될 때 영적 긴장의 고삐를 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막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보다는 자기 욕심대로 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기대보다는 자기 뜻을 따라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 뿌리 기도할 제목이 없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영적 긴장이 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긴장이 풀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