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작사 서세건,심진구/ 작곡 서세건)는 1975년 6월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음반의 타이틀 곡으로 「이종용」(1949년생)이 불러
오랫동안 1위를 지키던 당대 최고의 히트곡입니다.
방송 3사 최장 인기 가요 1위를 차지하며 「이종용」은 그해 각
방송사 '신인 가수상' 을 휩쓸었습니다. 이 곡은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싱어 롱' 가요로서도 가장 인기 높은 곡 이어서 발표 이후
가을과 겨울에 이르기까지 '통 기타 부대의 단골 곡'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실 『너』의 원 주인은 형제 듀엣 "유심초"였습니다. "유심초"의
형 '유시형'이 군대 입대해 있던 때, 휴가를 나와서 이 노래를
"유심초"가 부르기로 하고 연습을 하였으며, 녹음까지 마치고 들어
갔는데 「이종용」이 먼저 방송에서 부르는 바람에 음반이 발매되자,
"유심초"의 노래가 실린 음반을 칼로 그어 못 틀게 만들어 방송사에
보내지면서 "유심초"의 노래는 숨은 노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종용」은 후일 목사가 되어 자신이 저지른 죄를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유심초"는 "너와의 석별"과 "사랑이여" 등 히트곡이
많아 신경 쓸 틈이 없었다고 하죠. 참고로 『너』를 만든 '심진구',
'서세건'그리고, "유심초", 같이 활동하던 '백영규' 모두
「인천 동산중고교」동문들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종용」은 1975년 데뷔 곡인 『너』를 부르며, 단숨에
가요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당시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8개월
연속 1위를 차지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75년 12월 3일. 연예인 200여 명이 붙잡혀 들어갔던
'대마초 사범(事犯) 일제 단속'에서 구속 1호가 됩니다.
뒤이어 '신중현', '이장희', '윤형주', '김추자' 등 당시 내로라하던
가수들이 줄줄이 긴급 체포되어 구속됩니다.
더구나 「이종용」이 체포된 그날은 『너』를 통해 8개월 연속 1위
가수에 오르면서 황금 트로피를 받기로 돼 있던 날이었습니다.
상(賞) 대신 수갑(手匣)을 찬 셈이 됐습니다.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던 그에게는 ‘공급책’이라는 죄명(罪名)이
붙었습니다. 그 때 '마약(痲藥)사범(事犯)'이라면 가수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26살의 스타는 그렇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4년이 지난 1980년 '겨울 아이'등을 발표하며 다시
복귀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그런 그가 1982년에 또다시 반전(反轉)을 꾀합니다. 갑자기 모든
걸 던져버리고, 신학(神學) 공부를 하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간 거죠.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Cornerstone' 교회에서 성공적인
목회(牧會)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양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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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지는 그 숲 속에 파란 바닷가에
떨리는 손 잡아주던 너
별빛 같은 눈망울로 영원을 약속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던 너
웃음 지으며 눈감은 너
내 곁을 떠난 뒤 외로운 집시처럼
밤을 태워버린 숱한 나날들
오늘도 추억 속에 맴돌다 지쳐버린
창백한 나의 넋
바람에 실려가고 빗소리에 몰리는
잊어버린 너의 목소리
부서지는 머리 결을
은빛처럼 날리 우고
되 돌아선 너의 옛 모습
웃음 지으며 눈감은 너
내 곁을 떠난 뒤 외로운 집시처럼
밤을 태워버린 숱한 나날들
오늘도 추억 속에 맴돌다
지쳐버린 창백한 나의 넋
창백한 나의 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