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건축 - 영천향교
인기멤버
hanjy9713
2024.01.20. 07:00조회 0
댓글 0URL 복사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유교건축
영천향교
영천향교(永川鄕校)는 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자리하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1435년(세종 17)에 대성전을 건립하였고, 1484년에 신후(申侯)가 세재를 짓고 중수하였으며, 1513년(중종 8)에 군수 김흠조(金欽祖)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1546년(명종 1) 군수 이중량(李仲樑)이 명륜당을 중건하고 사마소(司馬所, 현 삼일재)와 서별실(西別室), 행곽(行廓), 유래루(牖來樓) 등을 창건하였으나, 명륜당은 선조 3년(1570)에 소실되었다. 영천향교는 1610년(광해군 2)에 명륜당이, 1622년(광해군 14)에 대성전이 중건되어 여러 차례 수리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영천향교 대성전
보물인 영천향교 대성전은 다른 향교의 대성전과 달리 기둥 키가 높고 창호가 고준하며 광창이 설치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영천향교는 경사지에 세워진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향교 제일 안 영역에는 제향공간이, 그 앞에는 강학공간이 형성되었고, 강학공간 앞 동쪽에는 전교실과 관리사가 있고, 서쪽에는 삼일재가 있다. 삼일재는 사마소라고도 하였는데, 이 지역 향사(鄕士)들이 후진을 양성하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 조선시대 대소과의 과거에 등과한 후손들이 경비를 갹출하고 관의 보조를 받아 건립한 건물이다.
삼일재는 명종 1년(1546)에 건립되었고, 이후 헌종 1년(1835)에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건물은 전면 4칸, 측면 1칸 반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교실은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없으며, 전면 4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로 동향하고 있다. 전교실 북쪽에서 남향하여 선 교직사는 단층 기단 위에 전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학공간의 문루인 유래루를 들어서면 유래루 앞보다 한 단 높이 뜰이 형성되어 있고, 북쪽 중앙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다. 유래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지붕의 중층 누각이다. '牖來(유래)'는 '공부하러 오는 이는 누구도 막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 3칸은 대청, 좌우 각 1칸은 협실로 된 전형적인 향교 명륜당의 건축 형식을 취하였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영천향교 배치도
명륜당 뒤 내삼문을 통하면 대성전이 동무와 서무보다 한 단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외1출목 초익공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조선 세종대에 중국 명(明)나라 목수가 건축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다른 향교에서 보기 드문 건축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건물의 규모에 비해 비교적 높은 기둥을 사용하고 있고, 어칸에 비하여 좌·우측으로 갈수록 도리의 굵기가 굵어져 처마의 앙곡을 형성하였으며, 부연은 단면 형태가 세워 놓은 장방형이 아닌, 옆으로 길쭉한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 내삼문
이외에도, 고준한 창호와 광창 등은 이 건물이 중국인 목수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반영한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과 송조 2현(宋朝二賢)의 위패가,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무와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로, 대지의 경사에 따라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게 기단이 되어 있다. 서무 서쪽 뒤 남쪽으로 위치한 전사청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며 내부는 통칸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 내부
대성전 내부 단청
대성전 내부 가구
[네이버 지식백과]
영천향교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이상해)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