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과 우리말 / 강원도 원주 문막
무수막이 변해 문막으로
‘뭇’은 ‘물’의 뜻이어서 많은 변형 땅이름을 낳아
‘물’과 관련된 땅이름이 무척 많다. 그래서 ‘물’자가 들어간 땅이름이나 이의 옛말인 ‘뭇’, ‘무시’, ‘무수’ 등이 들어건 땅이름들도 많다. 전국에 많이 보이는 물골, 물말, 무수막, 무시막, 무쇠막, 뭇막 등이 그러한 이름들이다.
물이 도는 곳에는 ‘물돌이(무돌이)’ 같은 이름들이 나왔고, ‘돈다(回)’는 뜻이 담긴 ‘도래말’, ‘돌내’ 같은 이름도 나왔다. 물말이나 물골은 한자로 수촌(水村)이나 수곡(水谷)이 된 것이 많다.
‘무수막’, ‘무시막’. ‘무쇠막’, ‘뭇막’ 등의 이름은 ‘물’의 옛말인 ‘뭇’이 바탕이 된 이름이다. 강원도 원주의 문막(文幕)은 원래 ‘뭇막’, ‘뭇으막’이 ‘문막’으로 불리다가 소리빌기로 한자가 옯겨간 경우다.
‘석계(石溪)’라는 이름을 ‘돌내’로 뜻옮김하여 ‘돌’과 연관지어 뜻을 풀기도 하지만, 이 중에는 물이 돈다고 하여 ‘돌내’로 된 것이 많다. 서울 성북구의 석계동도 그 하나다.
경기도 양평에 있는 ‘두물머리’는 한자로 ‘양수(兩水)’가 되었는데, 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져서 나온 이름이다.
우리말에서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을 일컫는 명칭은 다양하다. 그러나 ‘아우라지’ 이외에는 모두 땅이름에서 나타날 뿐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합수목(合水목)이나 합수머리(合水머리)은 두 갈래 이상의 물이 한데 모이는 물목을 말한다.
‘아우내’, ‘아우라지’ 등도 ‘물이 어울어짐’의 뜻이 들어간 이름이다. 충남 천안의 아우내는 한자로 ‘병천(竝川)’으로 한자 의미상으로도 ‘어우러짐’의 뜻이 들어가 있다. 경기도 파주의 교하(交河)의 옛이름은 어을매(於乙買). 여기서의 ‘매’는 ‘물’을 뜻하는데, 한강과 임진강이 어울어진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교하’라는 이름도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나루가 있는 곳에는 우리말로 ‘~나루’, ‘~개’ 식의 이름들이 붙는다. 이것이 한자로 표기될 때는 ‘~진(津,鎭)’ 또는 ‘~포(浦)’의 이름이 붙는다. 서울의 버들고지나루는 한자로 ‘양화진(楊花津)’이 되었고, 삼개는 ‘미포(麻浦)’가 되었다.
서울의 내(하천) 관련 이름들
서울 일대엔 한강이 지나고 있고, 그 한강으로 흘러드는 많은 갈림내들이 있어 물과 관련된 땅이름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모래내, 곰달내, 한내, 마른내, 오목내, 덜굴내. 까치내 등 무척 많다.
모래내(사천.沙川)는 북한산쪽에서 흘러내리는, 지금의 홍제천을 일컫는 이름인데, 그 하류인 남가좌동의 마을 이름 역시 모래내이다.
곰달내는 지금의 양천구 신월동 일대를 지나는 내인데, 지금 이곳을 지나는 길의 이름이 곰달래길(곰달내길)이다.
한내(한천.漢川)는 지금의 중랑천이다. 지금 이 이름을 딴 한천로가 노원구에 있다. 이 근처의 상계(上溪)-하계(下溪) 등의 이름은 이 내의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있다고 해서 나온 것이다.
두뭇개(두모포.豆毛浦)는 성동구 옥수동에 있던 나루터 이름이자 동네 이름이다. 청계천이 동쪽으로 흘러내려가서 중랑천과 합수하고, 남서쪽으로 흘러서 저자도를 사이에 두고 한강물과 두 줄기 물을 이루다가 이곳에서 한강 물과 합수한다고 하여 두물개(이수포.二水浦), 곧 두뭇개가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뚝섬과 더불어 한강 상류지방에서 오는 고추, 마늘, 감자류 등 전곡과 목재 등의 집산지였는데 동호대교의 건설로 기능이 상실되었다. 지금의 동호나루터 근처이다.
마른내는 지금의 중구 인현동 일대를 지나는 내로, 조선시대엔 이곳의 마을 이름을 건천동(乾川洞)이라 했으나, 일제 때에 이름을 없애 버렸다. 이곳을 지나는 길의 이름을 한때 마른냇길이라 한 것은 그 옛 땅이름을 살려 쓴 것이다.
개포동(開浦洞)은 양재천의 남쪽의 낮은 지대로, 과천에서 흘러오는 양재천과 경기도 광주에서 흘러오는 숯내(탄천)기 만나 한강으로 흘러들어 장마 때면 물이 쉽게 빠지지 않아 범람이 잦았고, 갯벌이 크게 형성되곤 했다. 갯벌 때문에 개펄이 개패로 불리다가 개포(開浦)란 한자명이 되었다, 개포2동에 전하는 자연부락인 '한여울'은 한강이 이곳에 이르러 여울이 거세어져 흐르는데, '반곡'이라고도 불렸다.
오목내(梧木川)는 의왕시 왕곡동의 백운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군포시, 안양시, 광명시와 서울의 금천구, 구로구, 양천구, 영등포구 등을 지나 성산대교 서쪽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금천현」 편에 "대천(大川)이 금천현의 서쪽 4리에 있고, 과천현의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양천현의 철곶포(鐵串浦)로 흘러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양천의 지명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안양천은 '갈천(葛川)'이라고도 하는데 토박이 이름으로는 '앞개울', 수암천을 '뒷개울'이라고도 했다. 양평동 근처에서는 오목한 지대를 흐른다 하여 '오목내'라고도 한다.
이 밖에도 서울에는 청숫골(청담.淸潭), 물치(수색.水色), 연못골(연지.蓮池), 물아랫골(수하.水下), 새내(신천.新川), 무수막(수철.水鐵.금호동) 등의 물 관련 이름이 있다. 서울 도봉구에는 물놀이터로 잘 알려진 무수골이 있는데, 이 역시 물골(물의 골짜기)의 뜻이다.
물의 마을 뭇막이 변해 문막으로
지방에서 잘 알려진 곳으로는 깅원도 원주의 문막(뭇막)이 있다. 이는 ‘물의 마을’이란 뜻의 ‘무수막’과 같은 지명이다.
뭇(물)+(의)+막(마을) >뭇으막 > 무스막 > 무수막(뭇막.문막)
원주의 문막읍(文幕邑)은 본래 원주군 사제면이 되어 분일리, 분이리, 삼리, 분삼리, 사리, 분사리, 분오리, 분육리의 8개 리를 관할하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면내면(미내면)의 일리, 이리, 칠리, 구리의 4개 리를 병합하여, 건등산의 이름을 따서 건등면이라 하여, 반계, 건등, 궁촌, 동화, 문막, 비두, 취병, 포진, 후용의 9개 리로 개편하였는데, 1936년에 문막리의 이름을 따라, 문막면으로 고쳤다.
섬강을 건너는 사람을 위해 막을 치고 물막이라던 것이 번창하여 문막이 되었다고 하지만, 물막이 아닌 뭇막이 문막으로 발음되어 그렇게 적혀 왔던 곳이다.
물의 옛말은 ‘매’와 ‘미’
경기도 수원의 옛 이름은 매홀(買忽)이고 인천의 옛 이름은 매소홀(買召忽) 또는 미추홀(彌鄒忽)이다. 그리고 광주(光州)의 옛 이름은 무진주(武珍州) 또눈 무주(武州)이다. 이들 이름에서의 매, 미 무 등은 모두 ‘물’을 나타내고 있다. ‘물’의 옛말이 ‘매-미-무’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즉 ‘물골’을 이와 같이 나타낸 것이다. 이들 지명에서이 ‘홀’은 고구려말로 ‘골’을 표기한 것이며 이는 ‘고을’을 가리킨다.
물의 옛말이 ‘미’이기도 했음은 지금의 말에 ‘미나리’, ‘미숫가루’ 등이 있음을 봐서도 알 수 있다.
매화리(梅花里)나 수화리(水花里)란 이름을 보고 꽃을 생긱할까? 매화와 수화는 꽃이름이 아니라 ‘물(水)의 고지(串)’를 뜻하는 말이다. 서해안에 있는 이 이름은 삐죽이 그 머리를 내민 이 지역의 지형상의 특징을 잘 반영한 이름이다. 먼저 매화의 ‘매'에 관해서 그 쓰임을 알아보기로 한다.
매화라고 할 때의 ‘매(梅)’란 표기는 고구려 때의 이름 매골의 ‘매(買)'와 함께 그 이전 삼한의 모수국의 ‘모(牟)’로 소급되는 것으로 이들은 모두 동일어의 다른 표기라 할 수 있다. 아득한 옛날 마한(馬韓)에 모수국(牟水國)이 있었다고 사서(史書)는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모수국이 지금의 어디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고구려의 매골(매홀.買忽)이 우리가 추정하는 대로 이 모수국의 계승이라면 그 곳은 아마 화성시에서도 바다에 연한 남양면이나 송산면, 또는 서신면이나 매송면 그 어디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모수국(牟水國)에 대한 당시의 호칭도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이를 ‘벌믈' 또는 ‘물벌’, ‘물골’의 발음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모(牟)'의 한자음은 ‘모'이지만 속음(俗音)으로는 ‘무'로도 읽힌다. 정확한 고대 한자음은 ’무(mou/mau/mu)이다. 자전(字典)에 의하면 모(牟)는 ‘클모' 또는 ‘땅이름모'로 적고 있으나 소리빌기 표기법에서는 ’모‘의 차자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모' 혹은 ‘무'가 지금의 물〔水〕이란 말의 어형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물의 중세어는 ‘믈'로서 이 믈이 어두에 놓여 다른 말을 수식할 때는 받침 ‘ㄹ'이 떨어져 나가 ‘무/모', 혹은 ‘미'로 쓰일 경우가 있다.
<’물’이 ‘무’로 쓰인 낱말들>
무자이(물높이자.수척.水尺)
무자위(물을 높은 곳으로 빨아올리는 기계)
무삼(수삼.水蔘.캐내어서 아직 말리지 않은 인삼)
무소(수우.水牛.솟과에 속한, 물에 사는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무살미(‘물꼬'의 옛말)
무삶이(물이 있는 논을 써레와 나래로 골라 부드럽게 만드는 일)
무넘이(무너미.무네미)
무좀(백선균에 의한 피부병의 하나.물의 좀이란 뜻에서 붙여짐)
<’물’이 ‘미’로 쓰인 낱말들>
미나리〔芹葉, 물+나리〕,
미장이〔泥水匠〕
미숫가로
모수국(牟水國)의 모(牟)가 중국측의 표기라면 매홀군(買忽郡)의 매(買)는 우리측의 표기라 할 수 있다. 매(買)의 중국 한자음은 ‘마이'(mai)이며, 우리나라의 전통 한자음은 ‘무' 또는 ’매‘라고 추정된다.
물나리를 미나리라고 하고 물장이를 미장이라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원적으로 볼 때 중세어 ‘믈'은 ‘므리'의 어형으로 재구(再構)할 수 있다. 우리 국어가 본래 개음절어(開音節語)였음을 감안하면 믈 역시 받침이 없는 두 음절의 어형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한편 기원형 ‘므리'는 그 말이 놓이는 위치나 여건에 따라 어형변화를 거쳤을 것이다.
<므리[水]>
-수식어로 쓰일 경우 : 므리 > / 매 / 모 /미
-피수식어로 쓰일 경우 : 므리 > 믈 > 물
<고지명에서 매(買)의 대응 표기>
이지매(伊珍買) 경기도 이천시
내을매(內乙買) 강원도 양구 일부
살매(薩買) 평북 청천강
생지매(省知買) 경기도 여주시 일부
어을매(於乙買) 교하(경기도 파주시)
’물의 마을‘이란 뜻의 무수막(무시막)은 무쇠막(무쇠골.무쇠울)이 되어 한자로 철(鐵)자로 취해진 것이 많다. 수철리(水鐵里)란 지명이 그것인데, 이들의 대부분은 ’철(鐵)‘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쇠울'이 강가에 많은데 그 이유가 있다.
'물'의 뜻인 '뭇'이 이음홀소리 '으(우)'나 '애'와 이어져 '무수' '무새'로 되다가 '무쇠'로 간 것이 많다.
뭇(물)+울 > 뭇(애)울(무새울)
뭇(물)+말 > 뭇(애)말(무새말)
이런 이름들은 대개 ’무쇠‘와 관련지어 지명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듭 강조하지만 대개는 무쇠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심지어 무쇠로 다리를 놓아 무쇠다리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무쇠가 많이 난다고 적은 곳들(한글학회.지명총람)>
무쇠골 [水鐵里] 【마을】 충남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 / 무쇠가 많이 남.
무쇠골 【마을】 경북 포항시 죽장면 상옥리 / 물이 많이 솟음.
무쇠골 【골】 전남 화순군 청풍면 세청리 / 무쇠가 많다 함.
무쇠골 【골】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 무쇠를 났다 함.
무쇠다리 [水鐵里] 【다리】 경북 영주시 풍기면 수철리 / 무쇠로 다리를 놓음.
무쇠막 【골】 강원 양구군 동면 팔랑리 / 옛날 무쇠점이 있던 골짜기.
무쇠막(무수막) 【마을】 충북 충주시 신니면 광월리
무쇠막 [무수막, [水鐵里] 【마을】 서울시 마포구 구수동 / 솥, 농기구 만들던 공장 있었음.
무수막 [무쇠막, 무수동] 【마을】 충북 충주시 신니면 / 광월리 무쇠점이 있었음.
무수막 [水鐵幕] 【마을】 강원 홍천군 북방면 성동리 / 무쇠가 많이 남.
무수막 【마을】 경기 포천시 신북면 삼성당리 / 무쇠막이 있었음.
무수막 [무쇠막, 水鐵里,金湖洞] 【마을】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 / 무쇠솥으로 메주 쑤는 막이 있었음.
* 친척말
-무지개 무더위 무논 무자위 미나리 미숫가루 미장이
* 친척 땅이름
-무너미 【마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무네미 [물넘이,수유촌] 【마을】 강원도 홍천군 동면 삼현리
-뭇가 【마을】 경북 울진군 울진면 봉평리
-뭇골 [수동] 【마을】 강원도 고성군 간성면 금수리
-뭇두리(무두리) 【마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밋골 【골】 경북 청송군 현서면 무계리
-무숫골 【골】 경북 경산시 용성면 매남동
-어을매(於乙買) 경기도 파주시 교하(交河)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