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義는 인간의 탐욕을 극복하지 못한다
성경에서 최초로 “사냥”이란 단어가 나오는 곳은 창10:9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또 성경에서 최초로 “義”란 단어가 나오는 곳은 창15:6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義로 여기시고”
히브리어에서 “義(צֶדֶק 쩨데크)”라는 단어는 “사냥(צַיִד 짜이드)”이란 단어에서 나왔다. 고대시대에서는 사냥한 짐승을 서로 나누어 먹었다. 즉 사냥감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것, 그것이 義(正義)였다.
히브리어에서 義라는 뜻을 갖는 대표적인 두 단어가 있다. 쩨데크(צֶדֶק, 또는 쩨다카צְדָקָה)는 사회적인 義(윤리적인 義)를 뜻했고, 미쉬파트(מִשְׁפָט)는 法的인 義를 뜻했다.
쩨다카(צְדָקָה)는 레위기나 신명기에서 보듯이 네 주변에서 배고파하는 사람이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유대인들은 자기 수입의 10%를 정부에 기부금으로 내며, 정부는 그 돈으로 사회 약자들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正義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도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義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히브리어 譯을 보면 역시 쩨데크(צֶדֶק)를 사용하고 있다.
카를 마르크스의 할아버지는 유대인 랍비였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어려서부터 모세오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창안한 공산주의 개념 역시 모세오경에서 나왔다. 빈부 차이 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사는 사회! 얼마나 좋은 사회인가. 천국 같은 사회 아닌가?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는 70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왜 문을 닫았을까? 正義가 “인간의 탐욕”을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동기들 중에는 저축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최저 생계비도 안 되는 생활비로 살아가는 동기도 있다. 그렇다고 넉넉한 동기가 궁핍한 동기를 도와줄까?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義’를 구하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사는 동기는 없는 것 같다. 결국, 正義는 “인간의 탐욕”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