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김대성
<경주·토함산>
지금의 경주 땅 모량리에 경조라는 한 가난한 여인이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들은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하여 생긴 모습이
마치 성과 같다 하여 이름을 대성이라 불렀다.
그는 이웃망르 부자 복안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며
그 집에서 얻은 몇 이랑의 밭을 갈아 끼니를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점개(보살의 경지에 이른 스님)라는 스님이 복안의 집을 찾았다.
『스님, 어서 오십시오. 이른 아침부터 어인 일이신지요?』
『소승 홍륜사에서 개최할 육륜법회에 필요한 불사금을 화주키 위해 이렇개 일찍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정성껏 시주하셔서 부디 공덕을 지으시길…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저는 베 50필을 공양올리겠사옵니다.』
『신도가 즐겨 보시를 하면 천신이 항상 보호하여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게 도리 뿐 아니라 안락과 장수를 누릴 것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점개 스님이 이렇게 축원하는 말을 옆에서 물끄러미 듣고 있던 대성은
급히 어머니에게 뛰어갔다.
『아니 무슨 일이기에 숨이 턱에 차도록 이리 급하냐?』
『어머니, 지금 막 어느 스님이 주인 어른께 하는 말을 들었는데요,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했어요.
아마 우리는 과거에 좋은 일을 해놓은 것이 없어서 이같이 가난한가 봐요.
그러니 지금 보시를 안하면 내생에는 더욱 가난할 것 아니겠어요?
어머니, 제가 고용살이 해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하였으면 합니다.』
『그래, 참으로 기특한 생각이구나. 그렇게 하도록 하자.』
어머니의 승낙을 받은 대성은 다시 복안의 집으로 달려가 점개 스님에게 밭을 시주했다.
그 후 얼마 안돼서 대성은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대성이 죽던 날 밤은 유난히 별이 총총했고 재상 김문량의 집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면서
하늘에서 큰 별이 그 집을 향해 떨어졌다.
『모량리 대성이란 아이가 네 집에 환생하리라.』
김문량의 집 식구들은 모두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누구 하나 빠집없이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김문량은 곧 사람을 시켜 모량리를 조사시켰는데 그날 밤 대성이 죽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김문량의 아내는 태기가 있어 10개월 후 아들을 낳았다.
아기는 건강했고 이목이 뚜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왼손을 꼭 쥔 채 펴지 않더니 7일만에 펴는 것이었다.
아기의 손바닥에는 「대성」이라 새긴 쇠붙이가 있었다.
김문량의 집에선 아기를 대성이라 이름하고 그 어머니(경조)를 모셔다 후히 대접하고 봉양했다.
재상의 아들로 환생한 대성은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환경에서 씩씩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는 장성하면서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토함산에 올라가 곰을 잡았다.
그날 밤 산밑 마을에서 유숙한 대성의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신하여 나타났다.
『어째서 너는 나를 죽였느냐? 내 다시 환생하여 너를 꼭 잡아먹을 것이니라.』
귀신이 당장 잡아먹을 듯 호령을 하자 대성은 두려워 벌벌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하여 주십시오.
별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사냥을 좋아하다 보니
남의 생명 귀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세세생생 다시는 그런 잘못이 없을 것이오니 너그러이….』
대성이 눈물을 흘리며 진실로 뉘우치니 귀신은 화를 가라앉힌 듯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네가 나를 위해 절을 세워 주겠느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성은 선뜻 맹세를 했다. 「이제 살았구나」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꿈에서 깨 보니
잠자리는 땀으로 흠벅 젖어 있었다.
그 후 대성은 그 곰을 잡았던 자리에 장수사(일명 웅수사)를 창건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성은 깊은 대비원을 발하게 됐다.
경전 공부에 열을 다하고 사찰 참배 기도에 전력하던 대성은 부모은중경을 읽으면서
효사상을 부처님 가르침의 중심일 뿐 아니라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임을 깊이 깨달았다.
대성은 부모를 위해 절을 세우기로 원력을 세웠다.
그는 현세 부모를 위해 불국사 건립의 대작불사를 시작했다.
『사바세계의 불국, 그리고 극락세계와 연화장세계의 불국도량을 이룩하여 부모의 명복을 기원하고
나라의 안녕과 모든 자연의 보호,
그리고 나 자신의 구원을 기원하리라.』
김대성의 발심은 드디어 대가람을 이룩했다.
그러나 대성은 불국사 건립으로 자신의 기도가 끝났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가난한 시절에 자기를 키우느라 애쓰셨고,
선뜻 밭을 보시하신 전생의 어머니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령을 천도하고
은혜에 보답키 위해 토함산에 석불사를 세웠으니
그 절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늘의 석굴암이다.
특히 신라 오악의 하나로서 영산으로 알려신 토함산과
그 기슭에 전생과 현세 부모를 위해 절을 창건한 김대성은 그
대작불사에 신라인의 호국염원을 발원하기도 했다.
그것은 토함산이 군사적 요새라는 점에서 후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밭 한 뙈기를 공양 올린 공덕으로 김대성은 우리 민족의 존귀한 유산이며
귀의처인 가람을 세워 후세인에게 존앙을 받게 되었으니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은 다음과 같이 예찬하고 있다.
「(상략) 화엄에 눈을 대고 연장을 보며 일불국에 마음 돌려 안양을 찾네/ 마산(魔山)에서는 독장(毒?)을
평평하게 하려 하니/ 마침내 고해에서 경랑(驚浪)을 없게 하도다/
귀중한 스님의 한 말씀 법시(法施)를/ 단원이 마음 바쳐 따르기를 기약하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