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땡볕을 밀어내고 갑작스레 찾아든 비가 반갑다. 겨우 먼지잼할 정도지만 그래도 좋다. 거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비를 좀 더 쏟아낼 모양이다. 이런 날은 비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싶어진다. 막역지우와 막걸리라도 나누며 비의 냄새와 소리와 풍경에 마냥 취하고 싶다.
나는 애주가다. 술이라면 다 좋아라하지만 그중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 막걸리 예찬론자에 가까운 나를 보며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다.
“이 친구 이거 분위기는 딱 와인 분위긴데 말이야.”
“막걸리가 젤로 좋다꼬? 진짜로?”
이걸 어찌 해석을 해야 하나. 탁하고 시큼털털한 막걸리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촌스럽다는 걸까. 아니면 아직도 막걸리가 예의 그 촌스런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일까. 이유야 어떻든 무슨 상관이랴.
묘하게도 나는 자꾸 막걸리에 끌려든다. 끌린다는 게 꼭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막걸리라는 말 속에는 소탈함이 묻어난다. 인정이 묻어난다. 땀 냄새와 흙냄새가 묻어난다. 밀이며 보리 일렁이는 고향도 들어있다. 밭둑길을 따라 중참광주리를 이고 가는 어머니 모습도 들어있고, 나무 그늘에서 잠시 콩죽 같은 땀을 식히며 몇 잔의 막걸리를 달게 드시는 아버지 모습도 들어있다. 막걸리는 순박한 사람을 닮았다. 경계심을 내려놓고 스르르 가슴을 열게 하는 그 매력에 어찌 끌려들지 않을 수 있으랴.
막걸리도 세월을 타는가 보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입맛도 변했다. 오랜 세월동안 서민들의 고단함과 애환을 달래주던 막걸리는 맥주에 밀려났다. 시앗에게 안방을 내어주고 뒷방으로 밀려난 조강지처처럼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화이트칼라의 증가와 여성음주량이 늘어나고 도시집중화 현상이 가속 되면서 맥주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졌다. 탈색되고 찌그러진 누런 양은주전자에 비해 매끈하게 빠진 맥주병, 텁텁하고 무거운 막걸리 맛에 비해 개운하고 깔끔한 맥주의 맛은 얼마나 세련되어 보였겠는가.
한 때 막걸리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정치적 흥정거리가 되어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많던 양조장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60년대 중후반, 우리 곡물로 빚는 막걸리를 법으로 금지한 적이 있다. 그러자 수입밀로 만든 밀막걸리가 성행했다. 결국 독과점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인해 사람들은 집에서 밀주를 빚기 시작했다. 내 유년의 기억에도 뒤란에서 솔가지를 덮은 채 몰래 익어가던 우리 집 술독이 떠오른다.
막걸리는 집집마다 그 맛이 조금씩 달랐다. 누룩과 고두밥, 물의 양과 적정한 발효 정도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술을 즐기는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는 종종 막걸리를 빚곤 했다. 고두밥과 누룩을 잘 섞어 버무린 후 독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고는 이불로 술독을 바닥에서부터 위까지 푹 덮은 뒤 입구를 고무줄로 단단히 묶어두었다. 발효 중에는 가능한 뚜껑을 열어보지 않는 게 좋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독 속의 것들이 마침맞게 잘 끓어올랐다.
어머니는 커다란 오지그릇 위에 겅그레를 걸고 체를 얹은 다음 술을 걸렀다. 술을 거르기 전 용수를 박아서 맑은 웃물만 떠내면 청주요, 물을 더 넣은 후 지게미를 거르지 않고 밥알이 그대로 떠 있게 하면 동동주요, 걸러내면 막걸리가 되었다. 한 독에서 나올 수 있는 세 가지의 술 중 우리 집은 언제나 막걸리를 택했다.
막걸리는 꼭 아버지를 닮았다. 아니 어쩌면 아버지가 막걸리를 닮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막걸리가 따라 나온다. 꼬부랑 밭둑길로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가던 상고머리 계집애도 나온다. 주전자 주둥이로 퐁퐁 튀어나오는 막걸리를 몰래 맛보았던 고 앙큼스런 기억까지도. 내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도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았나 보다.
막걸리는 별칭도 많다. 탁주, 탁배기, 곡차, 농주, 재주, 희주, 이화주, 도깨비뜨물이라고도 하며 대포라는 말도 많이 쓴다. 대포는 주둥이가 넓은 사발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대포나 한잔 하자’라는 말은 큰 사발로 막걸리를 들이키자는 뜻이니 허리끈 풀어놓고 맘껏 마셔보자는 의미도 되리라.
막걸리는 툭박진 별칭이 대부분이지만 이화주라는 고운 별칭도 있다. 배꽃이 필 때 누룩을 만든다고 하여 고려 때부터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중 도깨비뜨물이라는 별칭이 내 마음을 쏙 잡아끈다. 농주의 희뿌연 빛깔은 쌀뜨물과 닮았다. 게다가 많이 마시면 도깨비가 조화라도 부린 듯 사람의 정신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란다. 이는 과음을 경계하라는 은유적 표현이니 이 얼마나 맛깔나고 재미난 표현인가!
“근데 막걸리를 왜 막걸리라고 부르지?”
잔이 몇 순배 돌고 살짝 취기가 오르면 누군가 이런 말을 던진다.
“그냥 막 걸러서 막걸리가 아닐까?”
우스갯소리 같은 대답에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막걸리에 대한 어원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막 거른 술’과 ‘막아 거른 술’ 두 가지의 설이 양립하고 있다니 말이다. 말 그대로 거칠게 막 거른 술과 체로 누룩을 막아 거른 술을 이르는 두 가지 설에 대한 우열은 아직 판가름 나지 않았단다. 막걸리는 안주마저도 소탈해서 더욱 좋다. 깍두기나 김치주저리만 있어도 충분하다. 풋고추에 파전이면 무얼 더 바라겠는가.
몇 년 전부터 다시 막걸리 붐이 일었다. 수출까지 늘어나는 추세라니 참 반가운 일이다. 각종 기능성 막걸리와 과일 막걸리, 유기농 막걸리에 탄산 막걸리까지 종류도 다양해지고 디자인도 세련되었다. 맛 또한 경쾌하고 부드러워 입에 착착 감긴다. 항암효과와 콜레스테롤을 감소시켜 주고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막걸리 전성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젊은이들에게까지 사랑받는 막걸리가 반가우면서도 나는 살짝 아쉬워진다. 세월 따라 모든 건 변하게 마련이다. 막걸리라고 예외겠는가. 퓨전화시대라지만 부디 옛 맛과 멋이 더는 퇴색되지 않기를, 사람 냄새 물씬 풍겨나는 막걸리를 오래도록 맛볼 수 있기를 바람 해본다.
비꽃이 몇 방울 창으로 떨어진다. 다시 비가 쏟아지려나보다. 서둘러 폰을 집어 든다. 오늘도 비에 대한 예의를 함께 차려줄 친구가 있으려나. 문자를 띄워본다.
“이보시게들, 오늘 도깨비뜨물 한 탁배기 어떠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