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 이유
옛말에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아랫사람(자식)은 사랑하기 쉬워도 윗사람(부모)은 자식만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뜻인데
사실 이는 자연스런 모습이며 사주 명리학의 관점에도 맞는 말이다. 왜 그럴까?
사주팔자의 원국은 4개의 기둥과 8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년주-월주-일주-시주로 읽어간다.
일주가 본인(중년의 나)이며 월주는 체(體-본성, 본질)로는 부모궁이고 시주는 체로는 자식궁이 된다.
일주라는 나를 기준으로 내 윗사람으로는 부모가, 내 아랫사람으로 자식이 있는 모습인데
보통 만세력을 보면 같은 간격으로 있기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큰 차이를 보인다.
년주-월주는 지구의 공전의 모습이며 이로 인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생긴다.
일주-시주는 지구의 자전의 모습이며 이로 인해 아침, 낮, 저녁, 밤의 하루가 생기니
년월일시의 사이즈, 또는 부피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용(用-쓰임, 용도) 년주가 국가궁, 월주가 사회궁으로 공적영역이며
일주, 시주는 개인영역이 된다. 년주는 국가궁이니 부피가 가장 크며, 월주는 사회궁이니 그 다음이 되고
일주-시주로 내려갈수록 부피가 줄어드는 대신 밀도는 높아진다.
부피와 밀도는 음양의 관계이니 한쪽이 커지면, 한쪽이 작아지는 상대성을 가진다.
밀도는 다른 말로 친밀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나와의 직접적이 연관성과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나라, 또는 해외(국가궁, 조상궁)인 가자지구에 폭탄이 떨어져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해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일주의 나와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연관성이 적기 때문이다.
월주(사회궁)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 사망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 것은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시주는 다르다. 시주는 자식궁이 되며 일시주의 사적영역중 가장 개인적인 영역을 뜻하니
내 집에서의 나의 모습과 같다. 내 자식이 길을 걷다 넘어져서 다쳐 기브스를 하거나 한밤에 고열에 시달리면
부모 마음은 쓰리고 메어지는데 일주와 시주의 (친)밀도는 가장 높기 때문이다.
자식의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갈 때 마치 내가 먹듯이 흐믓한 것도 이러한 모습을 반영한다.
하지만 나와 부모의 관계는 일주-월주의 모습이니 일단 밀도가 시주보다 떨어진다.
따라서 일주인 내가 월주인 부모의 밀도보다 시주인 자식과의 밀도가 높기에
자식과 부모중 누구를 먼저 구해야하는 극단적인 선택에서 자식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주 명리학은 자연의 법을 다르기에 명리학의 관점에서도 맞다.
이것은 맞고 올바른 선택이 아닌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시대에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 자식을 죽이려고 했다는 손순매아의 설화는
현대인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는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대는 충과 효를 강조하던 시대였고 그러한 이데올로기(효자, 열녀, 충신)의 주입이 강했고
특히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더 확산하고 전파하여 아이를 묻으려고 했던 손순의 이야기가 자랑스럽게
기록되고 전해내려온 것 뿐이다.
인간의 삶의 모습과 형태(用)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 본질(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기에 명리학의 관점에서는 그 시대의 손순매아 역시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이것이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힘들다' 에 대한 명리학적 정의이다.
삶의 모습은 명리학 이론에 반영되고
명리학 이론은 삶의 모습에 투영된다 - 허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