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에 대한 소고
경남 밀양시 하남읍 남전리에 가면 효자문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큰 선비인 載寧李氏門中出身(재령이씨 문중출신) 李申公(이 신공) 의 효자문 비각이 있다.
고려 말기에 충신으로 봉직하다가 이성개의 위화도반란으로 하남읍 조음리로 낙향해서 후학양성과 지극정성으로 부모공양 잘하여 사후에 조정에서 효자문 비각을 세워주고 시호를 내려 귀감이 되게 배려했다 한다.
같은 지역 하남읍 초동면 입구 초동학교 근처에 '대구말' 이란 조그마한 마을 어귀에도 조선조 초기 대재학과 예조판서를 지낸 춘정(春亭) 변개량(卞季良)의 공적비도 있다.
고려의 충신이 조선 초기에 벼슬을 하였다 하여 많은 비난을 받은 바 있는 변개량.
그는 당시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도맡아 지은 명 문장가로, 남긴 시조 또한 널리 회자하고 있다.
[내게 좋다하고 남 싫은 일 하지 말며
남이 한다 하고 의(義) 아니면 좇지 말라
우리는 천성(天性)을 지키어 생긴 대로 하리라]
이 시조는 천성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천성이 있고 이 천성대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천성은 바로 양심이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양심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나에게 이익된다고해서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이 한다고 해도 정의가 아니면 따라가지 말라는 교훈으로 권하고 있다.
"까마귀 검다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 뿐인가 하노라"
밀양 초동초등학교 출신 삼성장군으로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사람이 있다.
공정식(孔正植) 해병 중장이다.
해병대 역사 속에는 흔히 전설의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사령관이 크게 세 명이다.
첫 번째 주인공은 해병대의 아버지로 불리며 창설과 동시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 했다는 평가를 받는 신현준(申鉉俊) 초대사령관 이고,
두 번째 주인공은 통영상륙작전과 진동리 전투를 통해 국내외로부터 "귀신 잡는 해병대"란 찬사를 받는 김성은(金聖恩)사령관이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인공이 "무적해병" 의 신화를 만든 도솔산 전투의 주역이자 파월 청룡부대를 탄생시킨 공정식(孔正植) 사령관이다.
공정식 예비역 해병 중장이 그의 회고록에서 전하는 메세지로 해병대의 존재가치는 "충성"이라고 말한다. 즉 해병대의 명예와 전통은 바로 충성의 역사라는 것이다.
명예는 싸워 이김으로써 얻는 긍지이고 전통은 그렇게 얻은 긍지를 계속 지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충성과 충효는 일맥상통의 같은 부분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비롯에서 나라에 충성할 수 있는 근간(根幹)이 된다.
삶의 살아감의 중심에는 충효의 바탕이 늘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함이 인생을 웅숭깊이 사는 길잡이이니...
시대가 바뀌어 충효가 타령같이 들리고 흘러가는 유행가 한곡조보다 못하게 여겨질지라도,
민족의 정통성과 조국의 정체성을 지키는 삼강오륜이 부활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나는 오늘 밀양지역 방역 예찰 업무가 있어 다녀오면서(하남읍 초동면을 지나면서..)
조선조의 변개량과 공정식사령관을 생각했었다.
낙동강가에서 잠시 머물면서 깨우침도 얻었다.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을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은빛 물 반짝이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리라 다짐을 가졌었다.
예비역 해병병장 시골촌부.
첫댓글 "모든 행실의 근본은 효로 부터 시작한다."
효는 곧 충이요. 백가지 복의 근원이라고 들었습니다.
충효가 타령같이 들리고,
흘러가는 유행가 한곡조 보다 못하게 들릴지라도...
라는 표현이 시대를 반영하는
너무도 적절한 글귀입니다.
급진전하는 대중문화속에,
어느 라인에서 탈락되는 듯한
기분 언짢은 현실 속에서도
담담히 오늘을 엮어가는 님같은 분도 있습니다.
밀양은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난 고장이네요.
충효와 전통을 중시하는 그런 고장인가 봅니다.
혹시 밀양에 사시나요?
시골촌부님,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콩꽃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고운 심성의 소유자일꺼라는 예감이 듭니다.
댓글 주시여 더 없이 고맙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기실 저는 경남 밀양에 대해서는 잘 알지는 못하고
다만 간간히 갈 때면 여기저기 관심은 가져봅답니다.
물론 밀양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제 출생지는 부산영도 영선동이며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이후엔 경남의 소도시 변두리 촌락으로 옮겨다니면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해병의 일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선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20여년을 생활하다 다시금 어머니의 땅에서 손톱 밑 흙끼우며 이렇게 삽니다요.
수고가 많으신 콩꽃 님.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 드릴께요.
자주 뵐께요...
수필수상房 발전을 기원합니다.
@시골촌부 이렇게 소탈하시고,
그기다 글마져 깔끔하신
님의 진면목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일찍 알아봤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예비역 해병병장 촌부님께 )
( 경례~~! ^^ )
ㅡ
쉬~어 !! ^^
앞으로 경례 할 때는 필히 '충성' 구호를 복창합니다. 알겠습니까? ~ㅎ
ㅡ
조금 바쁜 틈바구니에서 그냥 긁적여 보는 푸념 같은 잡설에 어김없이 댓글 주시여 대단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콩꽃님 말씀처럼
모든 행실의 근본은 孝로 부터 시작되며
孝는 곧 忠이요 福의 근원이라는,
충효가 타령같이 들리고 흘러가는 유행가 한곡조 보다 못하게 들릴지라도, 겸허한 자세로 많이 깨우쳐 배우고 자신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가는 그런 삶의 영위를 오늘도 기대와 바램으로 가져 봅시다....
추웅~성 !! 예비역 해병병장 시골촌부.^^*
@혜홀 기합이 완전 빠졌구만 요. ㅋㅋㅋ
울 집 뒷동산 산책갑니다. 좋은 아침..
삭제된 댓글 입니다.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사곶 구CP 산등성이 OP생활이 새삼 회상됩니다.
새벽을 깨우는 총성이 아직도 귓전에 멤돌고,
K50을 견착하여 미그기를 겨냥했었던 그 OP 아래 대공포대에서 근무하셨다는 이유하나만으로도 별다방 님은 제게 더 더욱 부담 없고 거리감 없이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이렇게 다시금 댓글로 만나니 많이 반갑고 또한 고맙습니다.
간단 없이 나눌 얘기가 많으나 차츰차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병 후배님. 늘 강건 하십시오.
@혜홀 뭐가 기막힌 상봉장면입니꺼 ?
백령 별다방의 이쁜 까나리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두고 온 까나리가 새삼 그리웁네. ㅎ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서 할마시로 살아가고 있을려나............?? ㅋㅋㅋ
@혜홀 백령도 아가씨를 '까나리' 라고 별칭하였답니다.
와. 밀양 효자비에 관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몇년 전 마산 살적에는 가끔 찾았던 곳입니다
살기좋은 마산을 떠나 지금은 어디 사시는지오.
게시글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댓글 또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