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동판지
삼월이 중순에 접어든 둘째 월요일이다. 아침 식후 아파트단지 이웃 동 꽃밭으로 나가니 밀양댁 안씨 할머니는 호미를 들고 꼼지락거렸다. 여든 살 넘은 분이 흙과 더불어 친하게 지냄이 건강을 관리하는 비결이기도 했다. 그간 돋아난 싹이 없어 꽃밭 주변 서성이기만 하다가 깔판을 움직여 뭔가 쪼며 시간을 보냈다. 본인은 느끼지 못하는 가벼운 치매 끼도 꽃을 가꾸면서 극복했다.
꽃밭에 가꾸는 꽃을 유튜브 방송 소재로 삼는 꽃대감은 보이질 않았다. 주인장이 내려오지 않은 꽃밭에는 여러 가지 봄꽃이 피어났다, 히말라야바위취는 분홍 꽃을 피웠고 드리운 가지에서 노랗게 핀 영춘화였다. 자스민 향이 나는 샤프란은 봉오리를 맺어 솟아오르고 내가 미산령 고산지에 업둥이로 업어온 복수초도 샛노란 꽃잎을 펼쳤다. 춘란에는 꽃대가 여럿 나와 꽃잎을 펼쳤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동읍 방면으로 나가려고 102번 버스를 타고 창원역 앞으로 갔다. 창원역 기점 신점 종점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가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거쳐 주남삼거리를 지날 때 내렸다. 오전은 주남지와 인접한 수액이 오르는 동판지 갯버들을 살피려는 일과로 정할 생각이었다. 동월과 판신 두 마을을 줄여 동판저수지라 불렀다.
주남삼거리부터 동판지 수면과 갯버들의 앙상한 가지들이 보였다. 가월마을 앞 연이 자라던 늪에는 아직 북녘 본향으로 떠나지 않은 몇 마리 쇠기러기가 보였다. 제법 멀리 떨어진 내가 폰 카메라를 누르는 작은 소리도 들리는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줄을 지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떠난 선발대와 본진에 이어 가장 늦게 귀향 대열에 합류할 철새들이었다.
가월마을 앞에는 전에 없던 찻집이 보였고 주남저수지 들머리도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동월마을로 건너가는 왼편 시야엔 드넓은 주남저수지와 들판 농경지가 드러났다. 한때 동월과 판신에는 주민들이 환경단체의 지나친 간섭으로 사유지 재산권을 행사 못해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적힌 펼침막을 내걸리기도 했다. 주남저수지를 두고 환경단체와 지역민들과 갈등 표출이었다.
단감과수원과 밭뙈기에 농가 몇 채가 자리한 동월마을이다. 인기척이 아무도 없는 마을 안길에서 동판지 가장자리로 가니 무성한 갯버들이 드러났다. 주남지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산남지고 남쪽은 동판지다. 수문으로 연결된 세 개 저수지에서 갯버들이 가장 무성한 동판지다. 갯버들은 철새들에게 적당한 은신처가 되어 동판지에서 겨울을 지내다 떠나는 새가 주남지보다 많았다.
큰고니를 비롯해 그 많던 겨울 철새들을 북녘으로 먼 비행을 떠나 이제 저수지 수면은 빈 동지가 되다시피 했다. 가장자리에 무성한 갯버들은 펌프질하듯 수액을 빨아올려 잎을 틔우려는 즈음이다. 갯버들이 연녹색을 띠기는 아직 때가 일러도 엷은 녹색이 비쳐가는 듯했다. 갯버들 가지 사이로 철새들이 떠난 저수지 수면 건너편은 동읍 덕산의 아파트단지와 정병산 산세가 우뚝했다.
야트막한 산모롱이를 돌아간 동월마을까지 갯버들은 열병하듯 저수지 가장자리를 따라 숲을 이루어 자랐다. 봄이 점차 무르익어 갯버들 잎이 돋으면 눈부신 유록색을 띨 날도 멀지 않을 듯했다. 동월마을 앞에서 일자형 둑길을 따라 걸으면 무점마을에 이르나 방향을 돌려 주천강으로 향해 주남마을 앞 들녘으로 나갔다. 들판이 끝난 아득한 곳은 진영 신도시 아파트단지가 보였다.
드넓은 들녘 논바닥은 추수 이후 깊이갈이를 해두고 봄을 맞은 벼농사 지대였다. 농로를 따라 들녘을 지나니 고등포마을이 나왔다. 수로 언저리에는 봄까치꽃이 점점이 피어 화사했다. 고등포를 지니니 들녘 마을은 신등이 나오고 상등은 장등으로 이어졌다. ‘등’은 우리 몸의 등처럼 저지대 들판에서 홍수에도 물이 잠기지 않은 약간 높은 언덕으로, 촌락이 형성되기 알맞은 지대였다. 24.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