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 성 베네딕도 예찬 - 유럽의 수호자,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
2023.7.11.화요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
잠언2,1-9 콜로3,12-17 마태19,27-29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그 둘레에,
그분의 천사가 진을 치고 구출해 주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8-9)
어제부터의 분위기는 웬지 모를 잔치날 분위기처럼 참 흥겹게 느껴졌습니다. 저녁 식탁도 꽉 찼습니다. 무려 머물고 있는 손님이 6명, 전체의 1/3이니 정주수도원의 환대 영성이 빛납니다. 바로 오늘은 유럽의 수호자이자 서방수도생활의 아버지인 사부 성 베네딕도 대축일이 흥겨운 잔치분위기를 형성했던 것입니다.
중세초기 암흑시대에 성 베네딕도가 없었다면 유럽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요? 중세 야만의 유럽을 문명화한 성 베네딕도는 유럽을 구원한 은인이자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1964년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성 베네딕도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이어 1980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성 베네딕도를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와 더불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했습니다.
2008년 교황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베네딕도 성인은 자신의 삶과 업적을 통해 유럽의 문명과 문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유럽이 로마제국의 몰락이후 이어진 역사의 어두운 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감격에 벅차 고백했습니다. 한 성인의 업적은 얼마나 위대한지요! “성 베네딕도 규칙서”와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가 성인의 위대함을 웅변합니다. 저녁기도 성경 소구가 성인의 모습을, 계응송이 베네딕도 규칙의 위대함을 정확하게 묘사합니다.
“그분은 위대한 증거자로다. 그는 구름들 사이에 있는 아침 별과 같고 보름의 둥근 달과 같도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전 위에 비치는 태양과 같고 영영광의 구름에 걸린 무지개와 같도다.”(집회50,5-7)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슬기로운 절제와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했도다. 이 거룩한 사람은 자기가 체험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르칠 수 없었도다.”
성 베네딕도 자랑을 하기로 하면 끝이 없습니다. 성 베네딕도 자랑은 결국 하느님 자랑이라 기분이 참 유쾌합니다. 성 베네딕도의 영성은 저는 산과 강의 영성이라 합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안으로는 맑게 흐르는 강의 영성이라 정의하고 이렇게 살도록 노력합니다. 프란치스코 수도명을 지닌 저는 “밖으로는 성 베네딕도의 산, 안으로는 성 프란치스코의 강”이라 자칭 일컫기도 합니다. 저는 외로움을, 스승의 부재를 전혀 느껴본적이 없습니다. 주님께 인도하는 위대한 멘토이자 스승을 세분이나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 요셉, 성 베네딕도, 성 프란치스코 이 세 성인이 시공을 초월하여 저와 영원히 함께 하는 수호성인들입니다. 전임 고 베네딕도 16세 교황은 시공을 초월한 자신의 영원한 스승이자 멘토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라 고백했습니다. 산과 강으로 요약되는 성 베네딕도의 삶은 다음 제 좌우명 고백시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오랜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2.“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느님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서론이 길어졌습니다. 제 간절한 단 하나의 소원은 성 베네딕도를 닮아 죽는 그날까지 “산과 강의 영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 오늘 말씀이 그 비결을 알려 줍니다.
첫째, 추종입니다.
바로 복음이 답을 줍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수호성인들의 인도에 따라, 한결같이, 끊임없이 주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물음에 대한 답이 우리에겐 무한한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베드로의 생각이 참 짧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일편단심, 오매불망 사모하는 주님을 따르는 자체가 더할나위없는 축복이요 행복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지요!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그러나 자상한 예수님은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진시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첫째가 꼴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버지의 집에 이르는 귀향의 여정, 방심하지 말고, 끝까지, 죽는 그날까지,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시종여일, 초지일관 한결같이, 끊임없이 겸손히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저녁 성무일도 찬미가도 주님 따르는 기쁨을 한껏 노래합니다.
“예수님의 발자취 따르는 이들, 아버지요 스승인 성 베네딕도
찬란하게 빛나는 이날 기리며, 노래 불러라.
스쳐가는 세속의 행락등지고, 주님 찾는 보람을 한껏 누리며
천사들과 한노래 부르는 영복, 끝이 없어라.”
둘째, 사랑입니다.
주님을 사랑으로 따를 때 사랑의 은총 선물입니다. 사랑의 샘, 주님으로부터 샘솟는 사랑이 있어 지칠줄 모르는 하느님 사랑, 형제 사랑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사랑의 대가였습니다. 베네딕도 전기에 나오는 무수한 기적들은 바로 사랑의 기적들이었습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참으로 사랑할 때 기적이 일어나니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온통 사랑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1.동정과 2.호의와 3.겸손과 4.온유와 5.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6.용서해 주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7.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지는 끈입니다. 8.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9.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모두가 사랑으로 수렴됩니다. 사랑밖엔 답이 없습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엔 역시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평생 사랑의 전사, 사랑의 학인이 되어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답게 한결같이 끊임없이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셋째, 지혜입니다.
지혜는 감추어진 보물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깊고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지혜입니다.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사랑의 빛, 지혜의 빛이 무지의 어둠,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사랑과 지혜가 결정체를 이룬 성 베네딕도입니다. 분별력의 지혜, 중용의 지혜는 바로 모두를 살리는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날로 주님을 따라 주님을 닮아갈 때 사랑과 지혜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제1독서 잠언 말씀이 감로수같습니다.
“네가 만일 내 말을 받아들이고 내 계명을 네 안에 간직한다면, 지혜에 네 귀를 기울이고 슬기를 향해 네 목소리를 높인다면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 그때에 너는 주님을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그분의 입에서는 지식과 슬기가 나온다.”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시작입니다. 사랑이 지혜입니다. 참으로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사람이 되어 가면서 주님을 닮아갈수록 지혜로운 삶입니다. 주님을, 성 베네딕도를 닮고 싶습니까? 한결같이 끊임없이 주님을 따르는 추종의 사람, 사랑의 사람, 지혜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을 닮아 추종과 사랑과 지혜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을 경외하여라, 주님의 성도들아.
그분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아쉬움이 없으리라.
부자들도 궁색해져 굶주리게 되지만,
주님을 찾는 이에게는 좋은 것 뿐이리라.”(시편34,10-11).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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