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강제퇴위에 불응했고 결국 고종퇴위-순종 즉위식은 두사람이 불참한 상황에서 권정례(權停禮)로 행해졌음
심지어 고종은 퇴위나 양위가아니라 세자가 대리청정하는거라고 했음
* 권정례 : 조선시대 국가 의례에서 왕이나 왕비, 세자나 세자빈 등 의례의 주인공이 참석하지 않은 채 거행하는 예식
사진은 남아있지 않지만 당시 상황이 묘사된 사진과 기록이 있음
삽화속 사람은 순종이아닌 대역임
1907년 8월 4일자 이탈리아 잡지 '라 트리부나 일루스트라타(La Tribuna Ilustrata)' 1면에 '조선의 새 황제 즉위식'이라는 설명과 함께 실린 삽화 그림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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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7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도 "상오 칠시에 중화전에서 권정례로 하였다더라."라고 보도했고, 통감 이토 히로부미도 같은 내용의 외교전보를 일본 외무차관에게 보냈다.(통감부 전보 번호 제76호 : 今朝七時宮中中和殿ニ於テ權停禮ヲ施行)
대한매일신보도 1907년 7월 19일(광무 11년 금요일)에 호외를 발행해서 "상오 8시에 황제폐하께서 황태자전하께 대리를 명하시옵고 조칙을 반포하였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대리청정'과 '권정례'는 일본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대신들의 퇴위 요구에 대한 고종의 반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종이 고분고분 하지 않았던 임금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일본 역시 고종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임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강제 합병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고종을 눈엣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던 중에 헤이그 밀사 사건이 발생하자,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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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응 양위아니고 대리청정임ㅋ 그리고 우리 참석 안할거임ㅇㅇ" 해버리니까 일본 관리들이 이거어떡하지? 하고 양위식으로 날조하려다가 결국 나아아아중에 순종 즉위식을 새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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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 관료들 사이에서 대리로 한 이 '대리청정' 의식을 양위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많았는지, 외무장관은 '한국황제 양위확인(韓國皇帝 讓位確認) 및 양위식(讓位式)에 관한 件'(내전 來電 제846호)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정부의 이사관과 부이사관들에게 내부문건을 회람시킨다. '대리청정 조칙은 양위의 의미가 명백하다'라는 내용이었다.
첫댓글 지금남아있는 친일파놈들이 또 날조했나보네..
진짜 역사날조 너무 심하고 고종이 너무 역사에 백성을 버린 왕으로 남은게 안타깝다ㅜ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할텐데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