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사 계단
김분홍
한발 한발 스텝을 섞듯 말을 섞는다.
서먹해진 관계를 좁혀 보려고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어 보지만
당신의 혀는 양파 속이다.
내가 백 미터 다가가면 당신은 백 미터 후퇴한다. 당신은 수직이고, 나는 수평이기 때문에
우리의 간격은
제자리에 멈춰 있다.
우리가 고층과 저층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고삐 풀린 생각이 방황하는 곳에
임시방편으로 침묵을 말뚝으로 박아 놓는다.
당신의 말과 나의 말이
부딪쳐서 찌그러지기도 하고, 계단 아래로 위태롭게 굴러 갈 때가 있다. 거기에는 당신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한 나의 말도 있다.
모든 스텝에선 화약 냄새가 풍긴다.
헐은 내장처럼 장 누수가 있는 말,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당신의 말에 변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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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오데사 계단」을 읽는 이들의 의견은 두 갈래였다. 무슨 제목인지 모르겠다,주를 달아서 설명을 해야 할 게 아니냐? 아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데 주를 달게 되면 너무 싱겁다. 검색하면 알 수 있으므로 주를 다는 건 독자의 탐구심을 빼앗는 지나친 친절이라는 것은 내 주장.
영화를 즐겨 보는 이들 중엔 옛날 영화를 연구하는 이들도 꽤 많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의 노래를 좋아서 배우고 그 옛날 노래를 부르는 젊은 세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 〈전함 포텐킨〉은 영화사에 자주 오르내리는 매우 뛰어난 흑백영화이다. 이 시는 아기를 태운 유모차가 층계(‘계단’은 일본식 한자어)를 굴러 내려가는 드라마틱한 장면에서 소재를 취한 작품이다. “당신의 말과 나의 말이/부딪쳐서 찌그러지기도 하고, 계단 아래로 위태롭게 굴러 갈 때가 있다. 거기에는 당신이 쏜 총에 맞아 부상당한 나의 말도 있다.”에서 보듯 인간관계에서 부딪히는 소통의 어려움을 상당한 기교로 형상화하고 있는 시다.
강인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