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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청년 정치가였던 존 케네디(Kennedy, John F.)는 참 짧은 일생을 살았습니다마는 그가 미국 역사, 혹은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압니다. 바로 그의 비서로 11년 동안을 일했었던 이블린 링컨은 [여비서가 본 인간 케네디]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이 일약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Look at me, I am the great'--'나를 보라, 나는 위대하다. 그러나 케네디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상원의원이었을 때에도 겸손했고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는 더 겸손했습니다. 그와 일을 해본 사람은 다 압니다. 잠깐만 만나보아도 그가 누구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가 위대한 사람이요, 그가 대통령이요.....이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케네디는 사람들을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만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위해 11년 동안을 일했습니다.” 당신은 다른 이들에게 순수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습니까? 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시길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겸손한 신앙 성경 : 마 11: 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 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11:28-30) "겸손한자는 떨어질 염려가 없다" 이 말은 존 번 연의 천로 역정에 나오는 말입니다. 겸손은, *인생의 미덕 중에 미덕이며, *도덕 중에 으뜸 가는 미덕이고, *완숙한 인격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합니다. 교만한 인간은, *스스로 우쭐됩니다. *자랑합니다. *잔꾀를 부리며 교활합니다. *또한 경건을 두르고 배우처럼 연극을 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그 능력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엉이처럼 살고 원숭이처럼 삽니다. *모든 것이 스스로의 나팔이고 울리기만 하는 소리나는 꽹과리입니 다. *아마 이런 사람의 혈관 속에는 수분보다는 철분이 더 많을 것 같습 니다. *그는 입만 열면 미움과 분열이고 토설과 짜증입니다. *또 혼란을 일어 키는 바람입니다. *또 혼란을 일어 키는 바람입니다. 경치가 좋다는 속리산 입구에 오백년 묵었다는 한 그루의 노송이 있습 니다. 이 이토록 연륜의 이끼가 낀 나무라도 도끼로 찍으면 삽시간에 넘 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국보로 정하고 아낍니다. 이처럼 사람에게도 아끼 고 감싸야할 형제가 있고 동역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만의 도끼는 인정이 없습니다. "인생은 곤궁할 때는 겸손하나 부유해지면 교만해진다"고 했는데 그러한 인생은 교만의 비대증을 터트 리는 비방을 배워야 합니다. *값진 것일수록 작습니다. *금언 할수록 문장이 짧습니다. *그래서 웅변 인생보다는 침묵인생이 더 났습니다. 물론, 침묵의 바다에는 많은 고통이 가라 않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되면 그것은 세상의 소금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은 누구나 열 번 백 번 겸손해야 합니다. 지도자일수록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앤드 류 머레이는 말하기를 겸손 그것은 기독교 최고의 도덕이며 "겸손은 기 독교의 핵심적인 진리요, 구속의 원리이다." 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성도들의 생활이 불화 타락하고 있습니다. 이 유는 겸손의 신앙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용기, 열성, 축복을 신앙의 제 일 큰 목표인 것처럼 강조하는 오늘날의 교회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적 불화, 타락,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참신한 신 앙을 이루어야 합니다. 1. 그러면 겸손이란 무엇인가? 국어 사전에 보면 "겸손은 남 앞에서 제 몸을 낮춤" 이라고 정의하였 습니다. 즉, 인간사회의 겸손이란 사람 앞에 자기 몸을 낮추는 형식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겸손이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중심을 낮 추는 내면적 낮춤을 의미합니다. 1)피조물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계4:11말씀에 보면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 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 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하 여금 그의 완전에 동참케 하셨습니다. 축복에 참여케 하셨습니다. 이 놀 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자각하는 마음이 곧 겸손입니다. 잠3:-34-35말씀에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 느니라. 고 했다.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피조물 된 것을 자랑하고 참된 겸손히 이루어 져야합니다. 2)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눅18:9-14말씀에 보면 성전에서 기도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 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시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 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고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주일도 잘 지킵니다. 십일조도 잘합니다. 불의 의 일을 저지르지도 아니하면 생활합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바리세 파 교인들은 오늘날의 교인들보다 더욱 더 철저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 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시고 저주까지 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세리같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애통을 상상 했기 때문입니 다. 신앙 생활은 마치 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의 껍질에 덮여 씌워진 원목입니다. 껍질 없이 존재하는 나무가 없듯이 죄 없이 존 재하는 인간도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도 죄의 껍질에 덮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순간마다 부끄러움과 고통으로 내 죄의 껍질을 설정하 고 도려내어 하나님의 생명의 새 삶에 접붙여 나가야 합니다. 겸손이라 함은 끝없이 죄의 껍질을 부끄러워하고 벗겨 나가는 고백이요, 통회입니 다. 여호와 하나님은 겸손한자를 붙드시며 겸손한자를 구원하십니다. 사 57:15말씀에 보면"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룩하며 거룩하다 이름하 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자의 영을 소생케 하시며 통회하는 마음을 소생케 하려 함 이라" 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고 죄의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끝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통회하는 위대한 겸손을 회복 시켜야 합니다. 3)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눈을 가리고 손뼉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삶을 찾는 놀이를 하 곤합니다. 하나님과 인간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두 눈을 가진 장님과 같습니다. 언제 망할지 알지 못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허우적거리며 가다가 넘어 지기도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 기도 합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 다. 그러면 가장 확실한 소리가 무엇인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신 바로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명확한 소리를 들려주시려고 예 수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의 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절 대 완전하게 의탁하는 것뿐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잠언11:2) 하나님께서는 겸손한자 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십니다. 시 149:4. 잠언 22:23을 보면 "겸손과 여 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잠언29: 23에 보면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겸손은 온전한 도덕의 기 초입니다. 덕행의 최고 목표입니다. 은혜와 축복과 영광의 길입니다. 하나 님 앞에서 완전히 절대적으로 의탁하는 자는 개인의 가정과 그들의 사회 는 변화된다. 우리에게도 겸손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2.겸손을 이루는 길은 무엇인가? 그러면 어떻게 이 겸손의 신앙을 이루어 갈 수가 있는가? 예수 님의 마 음을 품고 그 겸손을 배워야 가능합니다. 1)예수 님의 겸손 예수님은 종종 자신을 이끄는 원동력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원 동력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요6:38."내 가 하늘로써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함은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7:16.에는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 신 이의 것이 나라. 예수님의 존재, 근원 ,능력, 뜻, 말, 가르침, 수나, 영 광, 등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이다. 그 자신은 아버지 하나 님께서 존재하시도록 자신의 의사 능력 존재조차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서 즐겨 하시는 것을 친히 자기 안에서 하실 수 있도록 맡기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의 겸손입니다. 예수 님의 겸손의 힘은 곧 예수 님의 움직임 생명력이었던 것입니다. 2)예수 님의 겸손을 마음에 품고 배워야한다. 겸손의 신앙을 이루는 길 은 예수 님의 마음을 품고 그 겸손을 배우는 길입니다. 빌2:5-9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 의 본체 시나..........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곧: 1)예수 그리스도의 하늘에서 내려오신 겸손, 2)사람의 몸을 입으신 겸손, 3)사람과 같은 고통을 받으신 겸손, 4)처참히 죽으신 십자가의 겸손 때문입니다. 겸손해 지셨으므로 보다 더 높아지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님은 "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생명입니다. 무거운 인생의 삶을 짊어지고 가는 인생들의 무지를 한탄하며 내 겸손대로 살라는 외침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님의 겸손을 마음에 품고 배워서 "쉼을 누려야 합니다. 3) 제자들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의 겸손을 직접 보았습니다. 들었습니다. 체험했습니다. 마 5:3-12의 산상설교를 들으며 마 20:27의 세베대의 두 아들이 야단맞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발을 씻기우며 낮아지고 종 의 생활을 겸손의 도로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탄이 불어넣은 교만에 빠져 겸손하지 못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렬하고 활동적이 었습니다. 그러나, 겸손치 못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것 같았습니다. 흑암의 권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도저 히 겸손의 마음을 품을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향해 죽음의 행진을 하는 예수님의 뒤에서 "누가 높은 곳에 앉을 것인가?"하고 다투었습니다. 교만은 혈육자체여서 의식이나 능력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을 때, 제자들은 변화하 였습니다. 원죄의 본성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고칠 수 없었으나, 예수님 의 부활하신 후 오순절 성령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말씀이 귀를 들어와 서 머리에 마음에 남아있는 모든 악의 세력을 깨뜨렸습니다. 제자들의 죽음을 보면 안드레는 그리스도 모양의 십자가에서 순교하였 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매달려 처형되었습니다. 빌립의 시체는 파피 루스 종이에 쌓아 묻었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예수님과 동행한 취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로 높아지겠다던 이들이 이렇게 변화되었습 니다. 우리 마음에도 언약을 온전히 이루시는 예수님의 수해의 역사가 이루 어져야 합니다.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들의 심령 속에서 성령을 통해 이 루어질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실하고 경건한 인격의 특성은 겸 손에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부족을 부족으로 앎니다. 겸손한 사람은 사실을 사실로 시인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죄를 죄로 여깁니다. 이것이 겸손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창조주 앞에 선 피조물의 본연의 자 세입니다. 덕에 있어서는 인생의 한계상황을 알고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마음의 창문을 개방하는 자세입니다. 겸손한 믿음은 항상 알맹이 찬 이삭처럼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나, 어느 때이고 선은 선이고 악은 악입니다. 겸손한 믿음은 두 마음을 모릅니다. 겸손한 믿음은 청렴결백합니다. 겸손한 믿음은 일편단심입니다. 그러기에 미움은 사랑으로 바꾸고 이익을 손해로 대치합니다. 겸손한 자 는 스스로 밀 알이 되고 촛불이 됩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항상 밀 알이 썩는 진통이 있습니다. 촛불이 타는 아픔이 있습니다. 실로 겸손의 자세는 믿음의 기본자세입니다. 교만한 사람일수록 남의 교만을 미워하고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죄를 가혹하게 정죄합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십니다. 교 만으로 닫혀진 창문을 여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기 실 존의 빈곤을 깨닫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십자가를 져 야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생들이여! 자신의 소유물로 인하여 우쭐대지 맙 시다. 오직 겸손을 배우고 실천합시다. 우리들은 가장 겸손하게 그리스도 앞에 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을 과장해서 선전한 적 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 말씀 속에서 진정한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벧전 5:5-6에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고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 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 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
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구원사역의 도구로 쓰임받고 열매 맺게 하소서 샬롬
아무리 훌륭했어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죽어
그가미국 학교에서 채풀시간을 없에버리고
총맞아죽고
박정희대통령도 훌륭했지만
석가탄신일을 공휴일로정하고
총맞았지요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고촌애 집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