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 파이브와 료마를 아시나요?
기다리고 고대하던 눈이 내렸다.
강릉 바닥에는 19센티가 좀 넘는 눈이 내렸지만, 산간에는 20~3ㅇ 센티가 내렸다하고, 지금은 그쳐있지만, 오늘 내일에 걸쳐서 60센티 가랑이 내린다고도 한다.
10~20센티는 강릉에서는 큰 눈으로 여기지 않는다.
간밤에 내린 눈도 이미 다 치워져서 통행에 전혀 지장이 없다. 관민이 합쳐서 제설(除雪)에는 1등인 도시다.
한번은 대전 지방에 큰 눈이 내렸는데, 거기는 장비고 실력이고 모두가 엉망이어서 강릉에서 제설차량이 도와주러 간적이 있었다.
방송으로 차량을 치우게 하고, 장비 3대가 비스듬하게 횡으로 늘어서서 달리면서 눈을 치우는데, 그 광경이 하도 멋있고 장관이어서 한동안 인터넷 망을 달군 적도 있었다.
가끔은 1미터 가까운 눈이 내리는데, 반드시 2월 하순에서 3월 초에 내리니. 이때는 반드시 동풍이 불어서 바다로부터 습기가 많은 구름에 유입되어야 한다.
이번에도 이 원칙이 그대로 지켜졌으니, 낼 아침에는 반드시 폭설이 내리리라.
그러나 이 눈은 서쪽에서 팬 바람(양간풍)이 불어오면 바로 다 녹아버리고 산불이 나기 좋은 만큼의 건조기후가 계속된다. 참으로 적응하기가 어려운 곳이 강릉의 기후다.
겨울에도 바다의 영향으로 맹 추위는 거의 없다.
지난 겨울 내내 비나 눈이 전혀 내리지않았다.
서쪽은 눈 피해가 그리 많았다던데.
우리나라 교육이 여러 면에서 엉망인 것은 식자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바인데, 역사교육도 마찬가지다.
한국사나 세계사도 수박 겉핥기로 가르치고 중국사나 일본사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을 정도다.
친일이다 친중이다 하면서 진영 논리에 휘몰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우리와 가장 가까운(거리상) 이웃이면서 우리 역사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역사상) 두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자랑스러운 것만이 아니고, 부끄러운 부분도 모두 우리의 역사이다. 그들의 변화의 역사가 직간접으로 우리의 역사이기에 더욱 그들을 알아야한다.
윗글의 제목이 일본 조슈에 관한 이야기이니 제목만 읽고 왜놈 얘기를 왜하나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서 배우고 반성을 해야 발전이 있다.
일본 우선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번(藩)이라는 독특한 군현(郡縣)제도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군 보다는 크고 도 보다는 작다고 하겠다. 우리의 고려시대 후반에 일어난, 중국 후한시대의 십상시의 난 같은 오닌의 난으로 각지에서는 영주 다이묘(大名)들이 활개를 쳐서, 60여개의 구니(國)로 나뉘어지고 막부(바쿠후 幕府)의 권력이 쇠퇴하는 시기를 맞았고,
200여년의 치열한 합종연횡 끝에,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통일을 이루고, 전국시대가 막을 내린다.
다시 250여년간 막부 시대를 열었는데, 이 막부가 장악하는 새대에도 도꾸가와 막부에 예속은 되었으나, 독자적인 정치 세력을 형성한 것이 번(藩)이고. 위의 구니(國)가 뭉쳐진 세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번 마다 무사가 있고, 무사가 번을 벗어나는 행위는 사형에 처해졌다.
지금도 일본은 내각 책임제이지만, 일본의 이런 막부 같은 형태의 내각제 역사는 이렇게 복잡하고 오래되었다.
일본은 국왕이 전래대로 존재는 하되 군림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지켜졌고, 번주나 다이묘는 연초가 되면 국왕(천왕)에게 공물을 바치고 신임을 받는 역사가 지켜졌으나, 소위 메이지(明治)유신(維新) 때는 국왕이 전권을 행사하는 일이 생겼고, 그 피해를 우리나라를 필두로 동남아 일대가 입은 사변(事變)일어났던 것이다.
이 ‘국왕이 다스리는 나라’, 이른 바 존왕(尊王)을 부르짖은 이들이 조슈번에서 출발한 조슈 파이브라는 다섯 인물인 것이다.
대강(大綱;기본적이 줄거리)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대학에 가서 도서관에 가서는 약한 전공 과목을 보충도 해가면서 야마오까 쇼하치의 대망이나 대벌등의 일본 이야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럼, 조슈 파이브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것 또한 일본의 독특한 학풍(學風)에 기인한다.
독자들은 일본의 기다니 도장을 기억할 것이다.
바둑을 가르치는 개인 사숙(私塾)이니, 작은 사랍학교와 비슷한 개념을 알면된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공부하면서 몇 년이고 사사(士師)를 받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공자나 맹자도 이런 사숙을 운영했다. 공자의 경우는 납입금으로 육포를 받았으나, 일본의 경우에는 번주나 사숙을 운영하는 개인이 그 경비를 부담하였다. 수업료가 없었다.
기다니 바둑 도장도 이와 같아서 우리나라의 조치훈 조훈현 같은 사람도 그곳 출신이다. (돈을 벌어서는 일부 금액을 바쳤는지는 모른다.) 입학 테스트는 거쳤을 것이다.
이들 조슈 파이브는 일본이 개국하자 막부 몰래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다. 조수번의 후원으르 받고.
엔도 긴스케, 노무라 아키치, 이노우에 분다, 이토 순스케,
야마오 요조 등이다.
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토 순스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왕당파 3인중 하나요, 초대 조선총독부의 총독이 된 이토 히로부미(伊藤搏文)이다.
이들은 배를 타고 수 개월에 걸쳐 유럽 – 영국으로 가면서 홍콩, 마카오 등의 기항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당시 홍콩은 영국령이었고, 마카오는 포루투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거기서 지배자는 호화생활을 하고, 나라를 잃은 피지배자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일본도 강력한 왕권으로 된 통일세력이 조선을 포함한 중국과 동남이 일대를 식민지로 다스리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조슈로 돌아와서 나라를 개혁하는데 앞장섰다.
엔도 긴스케는 화폐개혁을 하여 경제분야를 개척했고, 노무라 아카치는 철도 사업에, 야마노 요조는 공업 발전에 공을 세웠다.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우리가 culture를 문화라 하고, philosophy를 철학, literature를 문학이라고 번역하는 따위의 말도 선진화된 그들의 번역을 따랐다. 한자의 종주국인 중국도 못한 일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일본의 근대화와 메이지 유신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카모도 료마(板本 龍馬)였다. 일본에서는 최고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도사번 출신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번을 탈출하여 낭신 신분으로 통일일본의 꿈을 키웠다.
그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소설이나 연속극 등으로 일년 내내 방영이 된다.
간단히 쓰면, 그는 60여개의 번(藩)을 통일하는데 성공을 했다. 가장 사이가 나빠서 둘 사이에 닌자를 파견하고 암살을 일삼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을 통합한 일은 최고의 걸작이다. 번의 통합으로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로 일본 근대사의 일부를 소개하였다.
이것은 그야말로 구우지일모(九牛之一毛 ; 아홉 마리 소 중의 털 하나)일 것이나, 여기서 배울 점은 세계사의 흐름에 빨리 적응하는 자세와.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빨리 하나로 통일된 나라가 되어, 미친 트럼프가 관세를 마치 조자룡 헌칼 쓰듯 휘두르고, 부칸의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성하고, 이제 핵 잠수함을 건조하는 시대에. 아직도 몇 년째 재판과 탄핵, 특검법으로 날이 새는 조선의 앞날이 걱정되어 위의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다.
남이 앞서가면 따라갈 궁리라도 해야 하고, 적이 쳐들어온다는데 식칼이라도 갈아야 하지 않겠는가?
과거 김영삼 시절 최형우 김동영 (좌형우 우동영이라 했다)등이 동교동 팀과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 흥정을 했고, 허주 김윤환도 김대중 팀과 타협을 했던 아름다운 역사가 있다. 여야가 서로 불 구대천지 원수(不 俱戴天之 怨讐)가 된 나라에 앞날은 없다.
술은 이 때 마셔야 한다.
한잔 하면서 풀어가면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우리에겐 왜 료마가 없을까?
을사년 경칩이 지나도 여전히 추운 봄날
풍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