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theqoo.net/index.php?mid=square&filter_mode=normal&page=4&document_srl=2284985503
1987년 6월 10일 그날 마산종합운동장에서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준결승전 한국A vs 이집트 경기가 열리고 있었음
그런데 전반전 시작한지 20여분만에 갑자기 이집트 선수들이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음
그렇게 경기는 중단되고 그날 관중은 23000명 가량이 있었음
당연히 갑작스런 중단에 관중들은 빡쳤고.. 일부는 경기장에 난입하기도함
이 경기는 KBS를 통해 전국 중계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결국 생방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됨
어떻게 된건지는 다음날 9시 뉴스에 짤막하게 등장하는데
그 설명은
일부 경기가 시위로 차질을 빚었다... 이게 끝임
뭐야 설명 더내놔요
ㅇㅋ 여기부터 그날 마산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설명 들어감
오후3시 경남대에서는 3시간후 3.15의거탑에서 벌어질 호헌철폐 집회를 위한 출정식을 하고있었음
근데 어라라 옆에서 차한대가 불타고있네?
알고보니 감시 사찰 하던 차를 학생들이 붙잡고 불태워버린거였음
그때 모여있던 학생이 약 3천명 가량
그리고 시위대는 민주화의 상징 3.15의거탑으로 향했지만
경찰과 공무원은 3.15의거탑의 출입을 차단하고 원천봉쇄하고있는 중이었음
그래서 결국 시위는 다른곳에서 시작하게됨
이날 시위는 마산 창원 뿐만 아니라 진주의 경상대 등에서도 참석한 시위였음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기 시작할때인 이때만 해도 아직 축구경기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음
하지만 마산종합운동장 부근에서 계속해서 시위대와 경찰은 격렬한 공방전을 펼쳤고 투석전에 화염병, 최루탄 등으로 맞붙고있었음
근데 이 최루탄과 화염병에서 나온 가스 연기들이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갔을까..?
바람을 타고 축구장으로 날라가서 이집트 선수들이 쓰러졌던 것임......
경기는 중단됐고 그 이후부터 이제 무언가 일이 벌어지기 시작함
전두환이 주관하는 축구대회에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제발로 관람하러 갔겠음? 좆까라 시전하겠지
그러니 그때 관중은 대부분 강제 동원되었던 사람들인데 표는 공짜였을까? 놉 강제 직관하게된 사람들의 몫이었고
경기가 중단됐는데 환불해줬을까? ㄴㄴ 당연히 관중들 빡침
경기가 중단되었으니 안에 있던 관중들은 일시에 밖으로 쏟아져 나왔는데...
어라라 밖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열리고 있네?
그대로 그 관중의 대부분은 시위대에 합류하게되었고 그렇게 만명은 그냥 넘는 대규모 시위로 번지게됨
아참 이런일도 있었음
이후 시위대는 마산시내 파출소를 방화하고,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사무실로 쳐들어가 전두환 및 국회의원의 사진을 불태우며 새벽까지 경찰들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집에서 생중계로 관람하던 인근 주민들도 거리로 뛰어나와 시위대에 합류함
축구경기의 중단이 1979년 유신체제에 맞섰던 부마민주항쟁 이후 경남에서 가장 큰 시위를 이끌어낸 셈이 되었음
경찰은 연좌농성하는 시위대에 최루탄으로 대응했지만 이미 시위대의 규모는 겉잡을수 없이 커진 후였음
이외에도 마산 시내 곳곳에서는 산발적인 시위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음
이후 6.29선언이 나오기까지 시위는 끝나지 않았음
그리고 6.29선언
우리의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며
많은사람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이를 잊거나 왜곡하려하거나 해서는 안됨을 가슴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함
-87.06.26 부산 문현교차로 "평화대행진"에서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마라!"외치며 뛰어나가는 모습
첫댓글 아 사진 울컥하다 진짜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되지 설강화고 뭐고 앞으로 역사 왜곡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제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