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이 되기 6일 전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라는 곳에 거하십니다. 요한은 그곳이 예전에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졌을 때 마리아는 비싼 향 기름을 가져다가 예수님께 붙고 그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비하며 동시에 구약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인 메시야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룟인 유다는 그것을 보고 비싼 향유를 허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 말하기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돈을 빼돌리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가난한 자들은 항상 같이 있지만 예수님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승천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와 함께 있지 않습니다(1-8). 본 단락에서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과 예수님의 죽으심이 대비를 이룹니다.
유대인의 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자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고자 합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나가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듭니다(13). 종려나무 가지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왕을 맞이 할 때 흔들 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예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린 나귀(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심으로서 겸손의 왕으로서 스가랴 9장 9절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으로 힘을 가진 왕이 아니라 겸손으로 당신의 목숨을 내어 주어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제자들도 이것을 그 때에는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많은 사람들이 나사로가 부활했다는 기적을 듣고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르게 됨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를 죽이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의 노력은 소용 없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놓은 것임을 보여줍니(14-19).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도 예루살렘에 와서 예수님을 만나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도 예수님께로 돌아오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로서 영생하도록 보존될 첫 열매이셨습니다(25). 나아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말씀함으로 다시 한 번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관계가 부각이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이 하나님과 단절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 하는 것임을 알기에 괴로워 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당신을 이 땅에 보낸 사명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순종하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게 해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 스럽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실 때 제자들을 붙들어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들려 돌아가시면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이십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를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7-36).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보냄을 받는 분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이며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생을 주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그 영생을 받을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37-50).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시고 행하시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마리아는 그리스도로 제대로 알고 믿었고, 그분의 죽으심 또한 믿어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예수님 자체가 그 향유보다 훨씬 귀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 당신의 백성에게 참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이방인이었던 헬라인 조차도 예수님을 믿고자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영생을 얻게 하신 예수님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귀한 분으로 모시고 살아가는지 돌아보는 하루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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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