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리 들길
삼월이 한복판을 지나는 셋째 금요일이다. 근교 들녘 면 소재지 파출소에서 부여한 아동안전지킴이는 오후에 맡겨진 임무라도 매일 아침 일찍 현관을 나선다. 어제는 마을 도서관에 머물다 동료와 더불어 점심 식사를 같이하고 임무를 수행했다. 넷은 한 달 한 차례 돌아가면서 자리를 주선해 식사와 차를 들기로 했다. 시간제 봉사활동일지라도 소속감과 공동체 연대 의식을 느꼈다.
금요일 아침나절 동선은 우암리 들녘을 둘러본 뒤 오후 근무에 임할 요량으로 아침 식후 곧장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타고 가다 창원역 앞을 지날 때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대산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기다렸더니 정한 시각에 출발했다. 1번 마을버스와 가술을 지난 모산까지는 운행 노선이 겹쳐도 배차 간격이 뜸해 드문 편이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차창 밖은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현지 주민이 아니면서 강가나 주남저수지 방면으로 산책 나서는 걸음으로 가끔 탔던 마을버스였다. 올봄부터 근교 들녘 초등학교 주변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느라 평일에 매번 타는데 오전 반나절 동선은 날마다 달랐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면 소재지 가술을 거쳐 모산에서 국도를 벗어나 강변을 따라 북부동으로 내려갔다.
재작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 배경이 되어 전국에 알려진 노거수 팽나무가 선 마을 북부동이다. 나는 드라마 방영 이전부터 여러 차례 강변으로 나선 산책에서 봤던 익숙한 주변 풍광이었다. 동부마을에서 내려 농가들이 옹기종기 늘어선 언저리와 언덕에 우뚝한 팽나무를 바라봤다. 팽나무가 선 강둑에서 반대편이 되는 들녘으로 포장된 일직선 길을 따라 남쪽을 향해 걸었다.
넓은 들녘 비닐하우스 안에는 겨울을 건너온 파릇파릇한 당근이 자랐다. 예전에는 벼농사 뒷그루로 수박을 기르다가 근년에 와 작목이 당근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전국에서 생산되는 하우스 봄 당근 출하량 상당 부분을 차지할 듯했다. 당근 농사는 농부와 상인 간에 계약재배라 농부는 생산까지 하는 일이고, 그 이후 수확과 판로는 수집상이 인부를 동원해 캐서 어디론가 싣고 갔다.
농로를 겸한 찻길에서 들녘 마을이 나와 인기척이 없는 골목길을 고양이 발걸음으로 지났다. 낯선 이방인이 현지 주민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골목 안길에서 모롱이를 돌아가니 누군가 등 뒤에서 불러 고개를 돌렸더니 한 사내가 나를 찾아 되돌아 가봤다. 그랬더니 반갑게도 매일 파출소에서 잠시 만나 구역을 달리 해 아동안전지킴이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인사를 나눈 분은 나와 동갑으로 군인과 군무원으로 평생 봉직하다가 은퇴 후 전원생활을 하는 고향이 충청도였다. 내실에 있던 동료의 처가 커피를 타 주어 조경수가 잘 다듬어진 뜰에서 마시고 안부 인사가 오간 뒤 오후에 뵙자 하고 집을 나가니 동구에는 마을회관이 보였다. 비닐하우스가 끝없이 펼쳐진 들녘에는 당근 말도고 풋고추와 방울토마토 농사를 짓는 농가들도 있었다.
들녘을 걸으니 진영 신도시와 대산면 소재지 아파트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농경지로 보내는 물길이 흐르는 언덕에 절로 싹이 터 자란 유채가 싱싱했다. 겨울엔 움츠려 있다가 봄볕을 받아 폭풍 성장을 해 몇 포기는 꽃대가 솟아올랐다. 배낭에서 칼을 꺼내 유채를 잘라 봉지에 채웠다. 더 쇠기 전 채집해 집으로 가져가 데쳐 나물로 무치거나 겉절이로 버무려 찬으로 삼으면 될 듯했다.
대산면 소재지에서 가까운 제동리 국도변 식당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식사 후 근무 시간이 일러 죽동천으로 가서 천변에 개화가 절정을 맞은 산수유 꽃길을 걸었다. 지난주 지기가 차를 몰아 찾아와 함께 지났던 그 길이었다. 국도로 되돌아 나오니 노변에는 자잘하게 핀 꽃이 보여 엎드려 살피니 꽃다지가 앙증맞게 피운 꽃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꽃송이가 꽂다지지 싶다. 2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