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토지세가 2천4백만원(10. 10)- 철야농성 46일째
이날 자 강원일보에 종합토지세 부과에 관한 기사가 났다.
법인과 개인으로 나누어 1위에서 10위까지의 순위가 실렸는데, 우리의 김OO 이사장은 도내에서 총 97만 7천㎡의 토지소유에 2천4백1십4만원의 종토세가 부과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이 땅을 한자리에 다 모으면 얼마만큼이나 될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13평짜리 아파트도 없어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세상은 왜 이렇게 항상 불공평한 걸까?
기온이 떨어져 이 날부터 농성장에 전기담요를 깔았다.
김세현 교수가 어디서 전기담요를 가져왔다.
좀 꾀죄죄해서 여교수들이 썩 반기지는 않았던 이 담요는 정말 오랜 기간동안 우리와 고락을 함께 했다.
국회방문(10. 12)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그렇지만 아내와 함께 식사 한끼 할 수 없었다.
마음이 아프다.
그 동안 아내한테 잘 해준 일도 별로 없어서 더욱 그러하다.
내일 단과대학별 교수회의가 있다고 한다. 아침 9시부터 12시 사이에 있을 예정이니까, 모든 교수들은 연구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연락이 가면 참석하라고 했다.
총장도 참석하므로 수업이 있더라도 빠짐없이 참석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해결에 성의가 없는 총장이 주최하는 교수회의에 참석할 수 없어 회원들은 이를 거부하기로 했다. 대신 교협 총회를 12시에 연다는 공고를 내붙였다.
장재화·김대식·이상은 교수와 나는 국감에 대비하기 위해 국회로 출발했다.
오후 5시경 국회에 도착한 우리는 교육·체육·청소년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사무실을 돌며 대학의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는 위원장인 조순형 의원과 홍기훈·박석무·장영달·김원웅·정주일 의원 등 야당의원들을 중점적으로 접촉했다.
상지대의 사정을 듣더니 모두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무렵 청주의 서원대 교수들도 학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만나 호소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해결한 것과는 달리, 서원에대는 6년이 지나서야 관선이사가 파견되었고, 그동안 이 분들이 겪은 고생 또한 말로 다 못한다.
'용공조작의혹 규명의 달'을 선포하다(10. 13)
황환교 대표가 와서 총장이 소집한 단과대학별 교수회의의 내용을 전했다.
들어보니 그것은 회의라기보다 총장의 지시를 전하는 모임에 불과했다.
학원정상화 방안을 토론하여 보고하고, 참석자 명단도 보고하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교협은 총회를 개최했다.
임희진 대표는 경과보고를 통해 "원주천 고수부지 집회가 선전포고에 해당한다면, 오늘 이루어질 '용공의혹 규명의 달' 선포는 실전에 돌입한다는 선언이다.
이제 더 이상 학교당국과 나란히 설 수 없는 상황이다. 회원여러분들의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오늘 본관 앞에서 선포식을 갖는다.
오늘은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많이 간 관계로 행사를 약식으로 치르고, 민자당의 도 단위 단합대회를 계기로 하여 정식행사를 가지겠다"고 했다.
취지문이 낭독되었고, 회원들은 박수로 이를 통과시켰다.
우리는 모두 본관 앞으로 내려가 선포식을 갖고 취지문을 현관 벽에 부착했다. 그리고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교내를 한 바퀴 돌았다.
용공조작 해명하라(10. 14)- 철야농성 50일째
총학생회 정책실장이 찾아와 둘이서 몇 가지 문제를 논의했다.
총학에서는 12시부터 본관 앞에서 용공조작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는다고 했다.
12시부터 1시까지 총학의 집회가 있었다.
"용공조작 해명하라", "부패재단 물러가라" 이들은 집회를 마치고 학생처장을 찾아가 해명을 요구했으나 발뺌만 하더라는 것이었다.
국감전야의 국회의원들이 웬 호화술판?(10. 15)
비대위에서 '용공분자가 왜 구속되지 않는가'하는 문건을 검토했다.
그 주요내용은, 지난 86년 10월 14일 상지대교정에 뿌려진 "가자! 북의 낙원으로'등의 유인물은 불온유인물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철저한 수사를 통해 용공분자를 잡아내지 않는가? 86년 10월 20일자 동아일보는 "불온유인물이 교무처 복사기로 복사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연행되었던 학생들은 모두 무혐의로 석방되었고, 경찰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배후에 무엇이 있는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 그래서 상지인 모두에게 안겨진 아픈 상처가 치유되고 의혹은 해명되어야 한다 등이었다.
우리는 이 유인물을 수사기관은 물론 우리 사회의 지도급인사 모두에게 발송하기로 했다.
이 문건을 못 받은 사람은 한국사회의 지도급인사가 아니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날 저녁, 국회 보사위 소속 국회의원 일부가 감사대상인 부산 지방환경청으로부터 술과 식사 등 향응을 받아 크게 물의를 빚었다.
다음 날의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16일의 감사를 앞두고 창원에 내려온 1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15일 밤 창원시내 모 식당에서 부산지방환경청장과 저녁식사를 한 데 이어 마산시내의 대표적 요정으로 자리를 옮겨 밤 11시까지 술자리를 계속했다고 했으며, 이 자리에 있던 의원들의 명단도 나와 있었다.
김재광·강창희·이해찬·문창모·김찬우·주양자 의원 등은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우리의 이사장은 참석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다음날의 국정감사는 핫바지 방귀 새듯 했다는 것이다.
교육관계법 개정을 위한 결의대회(10. 17)
이날 오후 성균관대 체육관에서「교육관계법 개정을 위한 교육주체 공동대책위원회」(교육공대위)가 주최하는 '교육관계법 개정을 위한 서명자 결의대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다.
교육공대위는 92년 6월에 민교협·사교련·국교협·해교협·전강노 등 5개 단체로 구성되어 이미 대전·광주·부산에서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었고, 2학기 개강과 더불어 전국 대학교수 4,258명의 지지서명을 받은 여세를 몰아 이 날 결의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나는 좀 일찍 올라가 성대 교협 회장인 김선종 교수님과 점심을 함께 했다.
민교협 교권위원장인 박거용 교수와 성대출신인 김대식 교수도 합류했다.
이 날의 행사에는 약 250명이 참가해 제법 성황을 이뤘고, 행사를 마친 후에는 혜화동 로터리를 돌아서 성대입구까지 평화시위도 벌였다.
이날 채택된 결의문은 "오늘의 대학은 여전히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며, 대학의 민주화와 자율화를 옥죄는 교육관계법이 비민주적인 채로 남아 있다.
이들 교육관계법을 개정해 대학사회의 실질적인 민주화의 기초를 다져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교원의 노동3권 보장,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보장, 그리고 교원 재임용제 폐지 등의 결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나서 될 일인가, 주지를 바꿔야지!(10. 19)
내일부터 본관 앞에 내걸 「왜 용공분자가 구속되지 않는가」전시판을 장재화 교수와 함께 손질했다.
이상은 교수가 전지 6장에다 쓴 것을 베니어판에 붙이고 비에 젖지 않게 비닐에 싸는 작업이었다.
오후 4시 반이 되자 "인사대·자연대 하나되는 잔치"가 해방뜰에서 열리고 있었다.
와중에 반가운 손님이 한 사람 찾아왔다.
우리 학교에 있다가 청주대로 옮겨간 나모 교수였다.
나교수는 옛 동료들의 투쟁을 격려하고, 과거에 밀렸던 회비 5만원을 주고 갔다.
나교수는 상지대가 너무 골치 아파 청주대로 간 것이라 했는데, 글쎄.....
그러나 청주대는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대학이었다.
98년 2학기에도 과거 교협 회장을 맡아 열심히 노력했고, 94년에는 홀로 단식까지 하며 대학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박정규 교수가 재임용탈락 당했다.
이 나라의 사립대학은 어딜 가더라도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자세로는 결코 대학의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
절이 싫으면 주지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아니 진정한 교육민주화를 위해서는 주지제를 폐지해야 할 것이다.
민자당 강원도지부 단합대회(10. 20)
민자당 강원도지부의 단합대회가 있는 날이다.
12시에 비상총회를 열고 회원전원이 YS를 면담하기 위해 시내에 있는 아카데미극장을 향해 출발했다.
농성장은 허종회 교수가 혼자 지키고 있었는데, 교수들의 시내 행에 동참하지 않은 ㄱ모 교수가 1시 반경에 농성장을 기웃거렸단다.
나 모 교수를 농성장에서 찾다 돌아갔다고 했다.
시내로 진출한 교수들은 YS를 면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학생들 역시 수 백명이 시내로 진출했으나 경찰에 의해 차단되어 YS를 만나는데는 실패했다.
아름다운 손(10. 21)
김세현 교수가 국회의원들의 명단과 주소를 가져와, 아침부터 김정란 교수가 이들의 자택 우편번호를 하나 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시를 써야할 시인이 우편번호를 적고 있었다.
그래, 시를 쓰는 손보다 치열하게 일하는 손이 더 아름다운 법이지.
"으이, XX놈의 새끼"(10. 22)
도무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특별회비를 내라고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회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여섯 명밖에 안 왔다.
30분이 훨씬 넘어서야 19명이 되어 회의를 시작했다.
내 문제(재임용탈락)는 이미 교육부 보고가 끝났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전했다.
교육부에 보고되기 전 철회시키기 위해 싸워왔던 터라, 그 소식에 다소 실망이 되었지만, 어찌 하랴. 끝까지 싸울 수밖에. 물러날 곳이 없지 않은가?
이 날 농성일지에는 당직자 김모 교수가 잠을 자다가 "으이, XX놈의 새끼"라고 잠꼬대한 사실이 적혀 있었다.
배 깔고 봉투작업(10. 23)
이 날 우리는 하루 종일 농성장에서 우편물 발송을 위한 봉투작업을 했다.
인터넷 같은 현대무기가 없었던 터라 농성장 바닥에 가득히 깔린 봉투에 내용물을 넣고, 주소를 붙이고, 우편번호를 써넣은 후 풀로 붙이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회원 교수들의 노력에 의해 수천 통의 봉투가 완성되었다.
김대식·이상은 교수는 오후에 국회로 출발했다.
내일 있을 국감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두 분 교수는 여관방을 얻어 거의 밤 새워 자료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했을 때, 몇 사람의 재단 측 교수들과 조우했다.
재단측의 명령에 따라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상지대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감사할 필요가 없다"는 로비를 하기 위해 간 그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황급히 몸을 피하더라고 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이 문제를 추궁하는 후배교수에게, 그는 "학교에서 올라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긴 갔는데, 거기서 박정원 교수와 마주친 순간 죽고 싶은 기분이더라"고 말했단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당황한 그들이 김 교수나 이 교수를 멀리서 보고 나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L·H·L·C·Y·K·C·S 교수들이었다. 이 일을 두고 김모 교수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이들 중 최모 교수는 여학생 성추행 사건으로, 신모 교수는 가짜박사 파동으로 학교를 그만 두었다.
국정감사장 풍경(10. 24)-철야농성 60일째
새벽에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국정감사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좁은 상임위실은 교육부에서 온 공무원들로 가득 차 있었고, 정작 주인인 일반 국민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간신히 한자리를 잡아 교청위의 교육부 감사를 방청했다.
초반부터 민주당 의원들의 맹공이 이어졌다.
주로 홍기훈 의원과 박석무 의원, 그리고 과거에 약간 안면이 있던 장영달 의원 등이 질의를 주도했으며, 간간이 정주일 의원도 나서 주었다.
혹 얘기가 빗나가거나 꽁무니를 빼면 조순형 위원장이 직접 나서 추궁하기도 하였다.
질의의 주된 내용은 나의 재임용탈락이 부당한 것 아닌가, 학원민주화 운동이나 민교협 활동에 대한 보복 아닌가, 명백하게 잘못된 것이니 취소시켜라 하는 것과, 한의대 문제의 추궁, 학교가 오랜 기간동안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교육부가 감사를 실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등이었다.
답변은 후일 김이사장과의 거래관계가 들통나 미국으로 도망간 모영기 대학정책실장이 주로 했으나, 시종일관 쩔쩔 맬 뿐이었다.
국감장에는 민자당 의원들도 많이 있었으나, 교수 봉급포기각서와 35만원짜리 봉급명세서가 공개되자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여당 의원들조차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자리에는 이사장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질의는 오전부터 시작해 오후 늦게까지 끝날 줄 몰랐다.
결국 중간에 국감장을 나갔던 조완규 장관이 다시 출석해 "상지대에 대해 열흘 간 특별감사를 벌인 후, 11월 5일 경 자세히 답변하겠다"고 해서 간신히 끝났다.
상지대에 대한 특별감사 소식은 다음 날 각 신문에 4-5단 기사로 크게 보도되었다.
사립대학에서 분규가 발생했을 경우 한정된 사안에 대한 부분감사(실태조사)를 벌이는 사례는 가끔 있어왔으나, 학내분규 및 재단분규와 관련 종합감사를 실시하는 경우는 매우 의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한심한 모영기 실장과 노련한 조규향 차관(10. 25)
나는 의원들이 어제 한 질의 내용과 교육부 관리들의 답변내용을 꼼꼼히 정리했다.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교육부 관계자들의 답변은 기껏 "박정원 교수문제는 학교측에 재고를 요청해 보겠다" 거나 "말은 넣어 보겠지만, 사립대학 내부의 일을 교육부가 왈가왈부 할 형편이 못된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홍기훈 의원은 그래도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이 날 농성장에서는 하루종일 국정감사장의 내용이 화제였다.
민주당의원들의 질책에 쩔쩔매는 교육부 관리들의 모습이란,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그렇지만 교육부 관리들의 대응도 만만치는 않았던 것 같다.
특히 조규향 차관은 너무나 노련하게 의원들의 질의나 추궁을 피해 나갔다.
국회의원들도 그로부터 확실한 답변을 받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모두 허사였다.
말솜씨가 워낙 능란하고 순발력이 강해 말도 안 되는 답변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로부터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이에 비해 모영기 대학정책실장은 쉴새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상지학원의 교육부 커넥션으로 소문나 있어 집중타를 맞았지만, 주인을 위해 애쓰는 충복처럼 열심히 상지재단을 비호하고 있었다.
모영기 실장의 답변은 도저히 대학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의 말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무책임한 것들뿐이었다.
그 자리만 모면하면 되고, 소나기만 피해가면 된다는 태도였다.
이래서 이 나라의 교육행정이 밤낮 그 타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