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물드는 도심
삼월 셋째 주말을 맞은 아침이다. 점심나절 시내에서 초등 친구 자제 결혼식 하객 걸음이 예정되어 이른 아침 짧은 산책 정도 다녀올 틈을 냈다.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은 책을 반납해야 해서 귀로에 그곳까지 두르는 동선으로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퇴촌교로 나가 창원천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워 눈길을 끌었다.
겨울을 지나면서 잦았던 비로 냇물은 유량이 제법 흐르는 편이었다. 텃새로 머물러 사는 중대백로와 왜가리가 목을 길게 빼고 먹잇감을 겨냥했다. 그 가운데 한 녀석은 재빠르게 물고기를 낚아채 주둥이로 비틀어 삼키려 했다. 강자와 약자로 구분된 생태계는 엄정한 먹이사슬 현장이었다. 포식자 중대백로는 식사 거리를 마련한 횡재수였고 피포식자 물고기는 황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천변을 따라가니 산책로 언덕에 자라는 조팝나무는 새잎이 돋으면서 좁쌀 같은 하얀 꽃이 피려고 준비 중이었다. 냇가 가장자리 한 그루 냇버들에서 버들강아지 솜털은 저물고 연초록 꽃이 피었다. 봄이 오던 길목 솜털로 감싼 듯 보송보송하던 버들개지는 잎보다 먼저 피는 꽃눈으로 제 임무를 다했다. 창원천 1교가 가까워지는 봉림중삼거리 징검다리엔 새로운 보도교 공사를 했다.
창원천 2교를 지나자 지귀동에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상인들이 트럭을 몰아와 노점을 펼치려 했다. 주말 아침을 맞아 천변으로 산책을 나온 이들이 간간이 지났는데 나는 근래 들어 모처럼 창원천 걸음이었다. 전에는 천변 산책에서는 웬만하면 남천이 합류하는 봉암 갯벌이 바라보인 곳까지 내려갔으나 이번엔 도중에 멈출까 싶었다. 명곡교차로를 지나 파티마병원 맞은편까지 갔다.
창원대로에 못미처 두대동 람사르 생태공원으로 들어 어린이 교통공원을 지났다. 공원 숲속 잔디밭에는 그라운드골프를 즐기는 노인들이 더러 보였다. 공원에는 예전 지나쳐도 미쳐 확인 못한 두대동 이주민이 세운 ‘두대유적비’가 보였다. 1970년대 창원이 계획도시로 출범하면서 떠났던 원주민이 20년이 흐른 후 다시 찾아와 1997년 세운 망향의 그리움을 빗돌에 새겨 놓았더랬다.
두대 대원레포츠공원에서 창원수목원으로 올라갔다. ‘동요의 숲’ 언덕에는 초가로 된 오두막집이 나왔다. 수종을 개량해서 그런지, 볕이 바른 곳이라 그런지 벌써 수목에서 화사한 꽃이 피었다. ‘수페르바’로 이름표를 단 대만 벚나무는 붉은 꽃을 피웠고 또 다른 벚나무에서도 엷은 분홍색 꽃이 잎과 같이 피었다. 유실수로는 복사나무에서 분홍 꽃이 피고 앵도나무도 꽃망울을 맺었다.
조팝꽃이 피는 산책로를 따라 ‘교과서에 나오는 수목’ 언덕으로 오르니 잎이 돋지 않은 수목이 많았으나 산수유와 목련은 꽃을 피웠다. 높은 가지에서 하얗게 피운 꽃은 자두인 듯했다. 하늘 정원으로 올라 창원을 에워싼 아침 햇살이 번지는 먼 산자락을 바라봤다. 선인장을 비롯한 열대식물이 자라는 유리 온실 곁에 한 그루 교목에서는 분홍 꽃이 화사했는데 살구나무인가 싶었다.
창원수목원에서 충혼탑사거리 근처 연못에 이르니 한 그루 수양버들은 새잎이 돋으면서 연초록 가지를 드리웠다. 뿌리에서 수피 따라 빨아올린 수액은 가지마다 연초록 잎을 틔워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포물선을 그렸다. 수양버들은 일 년 중에 지금이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수목원에서 올림픽공원으로 건너가자 교육단지 차도에는 보도를 따라 도열한 벚나무가 맞아주었다.
잎보다 먼저 피는 벚꽃은 가지마다 꽃눈이 부풀어 연방 꽃망울을 터뜨릴 기미였다. 내가 예전 근무했던 여학교를 지나 도서관으로 갔다. 가로등 깃봉에는 ‘돌아보니 어느새, 봄’이라는 펼침막으로 내건 시구들이 펄럭거렸다. 책담도서관으로 가서 빌려 읽은 책은 반납하고 신간 코너에서 노승대가 쓴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을 골라 선 채 펼쳐 읽다가 대출받아 집으로 왔다. 24.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