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8일 오후에 용주사를 다녀왔다.
코로나19때문에 30일 부처님 오신날 사회적 거리두고 참배가 어려울듯하여 말이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19로 법요식을 연기하여 5월30일에 한단다.
부처님 오신날[불기 2564년]을 정리해 본다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그러나 부처님 오신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대체로 이 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해진다.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거북등·오리등·일월등·학등·배등·연화등·잉어등·항아리등·누각등·가마등·마늘등·화분등·방울등·만세등·태평등·병등·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燈臺)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 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 하는데, 이 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이리·사슴·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흔들려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쳐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일가일등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 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재래의 사월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민속행사였다는 것은 그 날이면 즐기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되는 것이다.
이 날이면 온 장안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등을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에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한편, 이 날이면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나물을 벌려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했다가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때에는 이 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이 어린이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 들고 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등행렬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 암흑기에 없어진 것을 광복 후에 새롭게 시작한 행사이다.
사월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뜻에서 일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용주사 배치도
용주사 입구
삼문
다른 사찰에서는 볼수 없는 궁궐양식이다.
좌우에 7칸의 행랑을 지닌 맞배지붕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이라 부른다.
기둥에 각각 "용주사불"로 시작되는 주련이 걸려 있다.
5층석탑
5층 석탑에는 부처님이 사리2과가 봉안되어 있다고한다.
천보루
경기도문화재 제36호,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3칸의 2층 누각이다.
목조기둥아래에는 석조기둥과 같은 높은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데, 이는 궁궐 건축과 유사하다
요사체
대웅보전[보물 제1942호]
1790년 창건 당시 지어지 정면 3칸,측면 3칸으 구조이며, 조선후기 능참 사찰의 배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구조이다.
특히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삼세 여래후불 탱화는 조선 중기 최고의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귀중한 성보이며, 2017년 8월 14일 보물 제 1942호로 지정되었다.
관음전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고 미래의 부처님이 올때까지 중생들을 돌본다는 관셈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또한 관음전은 매월 초하루,보름등 각종 법회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전각이다.
지장전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상을 모신 전각이다.
내부에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고 있다.
호성전
호성전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셨다
부모은중경탑
탑에 부모은중경을 읽어 보다 좋아 소개해 본다.
첫째 아이를배어서 지키고 보호해주신 은해
여러겹 인연이 중하여 금생에 다시와서 어미태에 의탁해도다. 한달이 지나가니 오장이 생겨나고 칠칠일에 여섯정이 열리도다. 몸뚱이는 태산같이 무거웁고 행동거지 할때마다 봅쓸질병 겁내도다. 화려한 비단옷은 도무지 안입으니 단장하던 거울에는 티끌이 묻었도다.
둘째는 해산암에 임하여 고통을 받으신 은혜
아이밴지 열달이 지나가니 어려운 해산날이 닥쳐오도다. 날이면 날마다 중한 병에 걸리듯이 정신이 혼미하도다. 두려웁고 무서운 심정 어찌다 혜아릴까
근심으로 흘린눈물 옻자락을 다 적시도다. 슬픔을 머금은채 친족에게 아뢰웁되 이러다가 죽지않을까 겁날뿐이오다.
셋째는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신 은혜
자비하신 어머님 그대 낳은 날엔 오장육부 도려내는 심한 고통 겪으었으니 마음은 혼미하고 육체는 기절하며 짐승을 잡은 듯이 낭자히 피흘렸도다.
갓난아니 충실하단 말들으시고 무던히 기뻐하시언만
기뿜이 가신뒤에 슬픔이 밀려오니 고통스런 그 심정 가슴을 저미도다.
넷째 쓴건 삼키시고 단것은 뱉아 먹여준 은혜
깊고도 무거울사 부모님 은혜려니 사랑하고 귀여워 하심 한시도 변함없도다.
자식사랑 깊은 정에 맛좋은 음식일랑 잡수지 않의시고 쓴것은 삼키어도 찡그리지 아니하며 자식의 배부름이 자기배부른듯이 굶주림 사양아니시니 자비의 크신정 애처럽게 깊어만 가도다.
다섯째는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우신 은혜
어머니 당신 몸은 젖은데 누우시고 애기는 마른자리 갈아누이시며 포근한 두젖으론 기갈을 채워주고 고은 옷자락은 바람막고 추위막아 주도다.사랑의 정성으로
잠조차 설치시고 아기의 재롱으로 무척이나 기뻐하시도다. 어린액편케 할뿐 자신의 편안함은 구하지 않도다.
여섯번째는 젖먹이고 사랑으로길러주신 은혜
어머니 은덕 대지와 같고 아버지 은혜 하늘과 같도다. 만물을 실어 길러주는 대지와 덮어 성장시키는 하늘의 공능이 같드시 부모님 은혜 또한 서로 같도다.
눈이 없거나 손발이 불구라해도 밉게 여기거나 싫어하지 아니하고, 자기자식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속에 세월가도다.
일곱번째는 목욕세탁 더러움을 씻어주신 은혜
생각컨데 옛날의 아름답던 그 얼굴 아리따운 그 모습은 몹시도 고왔도다.
버들잎 두 눈섭에 붉그레한 두뺨이야 연꽃인양 하였는데 깊은정 쏜다보니 옥같이 곱던얼굴 잔주름 늘어가고 세탁함에 손발이 다 닳도다.
애듯한 사랑속에 자비하신 어머님은 얼굴마저 변하셨도다.
여덟번째는 멀리떠나가면 그님걱정 하신 은혜
죽어 이별 진실로 잊기 어렵고 살아 이별 또한 가슴아프도다. 자식이 외출하여 먼곳에 나가아면 어버이의 그 마음도 타향땅에 함께 있도다. 밤이나 낮이나 자식향한 마음으로 흘린눈물 천만줄기 잔나비 새끼 사랑에 애처러이 울부짖듯 행여나 염려하여 애간장이 끓기도다.
아홉번째는 자신을 위해서 모진일 하신 은혜
어버이 크신 은혜 산처럼 바다같이 깊고 또 높으거니 진실로 보답키 어렵도다.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받기 원하시고 아이의 수고함에 어미 마음편치 않도다.
먼여행길 떠나가면 그동안에 무사한가 잠자리 마져 걱정하도다.자녀의 잠시 괴로움도 어미마음 긴 시간 아프도다.
열번째는 임종때도 자식위해 근심하신 은혜
아버지 어머니 깊고도 지극한 온정 어제나 사랑으로 넘쳐 흐르도다. 앉거나 서거나 마음은 그림자처럼 멀리 또 가까이서 항상서로 따르도다. 백살된 고령의 어머니가팔십먹은 자식 걱정하고 계시니 이러한 깊은정 어느땐들 그치리까 목숨이 다한날에 비로소 떠날거다.
김충헌쓰다.
부모님의 은혜노래는 양주동 박사가 바로 부모 은중경을 통해 부모님 은혜 시가 나왔고 이시를 이흥렬작곡가가 작곡을 하였다고 한다.
전강대종사 사리탑
전강큰스님은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어 불조의 해명을 밝히신 한국불교의 큰 스승이다. 2005년 열반 30주기를 맞이하여 사부대중의 뜻을 모아 수행과 위덕을 기리는 사리탑을 조성했다.
천불전
천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며 누구나 수행하면 부처님이 될수 있다는 법화경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
시방칠등각
칠성과산신 독성이 탱화로 모셔진 곳으로 시방칠등각은 칠성각의 다른 이름이다.
용주사 범종
국보 제120호. 높이 144㎝, 입지름 87㎝. 몸체 두 곳에 있는 명문에 의하면 854년(문성왕 16)에 주조되었다고 하나 이 명문은 후대에 새겨진 것이다.
종의 정상에는 용뉴와 음통(音筒)이 있는데, 음통의 표면은 연주무늬를 돌려서 6단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연판과 당초무늬를 장식했다.
흰 작약꽃이 만개하여 여러번 찰칵...
븕은색 작약
수백년된 느티나무 어르신을...
효림당
용주사 -효행박물관
정조대왕이 기증한 부모은중경을 비롯, 보물제1095호 봉림사 아미타불 복장유물,정조대왕의 친필인 봉불기복게, 김홍도의 사곡병풍등 용주사가 소장하고있는 격조 높은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용주사 입구 근처에 공사중 건물...
★" 행 복 이 란 " ★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자기 마음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그것은 많고 큰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조그만한 데서 찾아 옵니다.
조그만한 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지나치게 만들어놓은
편안한 물건들에만 의존하지 말고,
때로는 밤에 텔레비젼도 다 끄고,
전깃불도 끄고,
촛불을 한번켜보세요.
그러면 산 속의 절은 아니더라도
산 속의 집같은 그윽함을
간접적으로 누릴 수가 있답니다.
또한 가족들끼리,
아니면 한두 사람이라도
조촐한 차를 마시면서
잔잔한 애기를 나눌 수 있다면
거기서 또한 삶의 향기가
피어나올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책도 보지 말고,
단 10분이든 30분이든
허리를 쫙 펴고
벽을 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세요.
이렇게 스스로 묻는 속에서
자기가 진정으로 누구인지,
도대체 이 세상에 왜
태워났는지 근본적인 삶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문명이 만들어놓은
편안한 물건들로부터
벗어나 하루,한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법정스님-
…─◈받은 글 再編輯 옮김◈─…
조그마한 것들
잔잔한 고마움
문명이 가져온 편안함보다
자연이주는 편안한 행복.
이번주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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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서 느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