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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음식은 믿음! 종교단체가 만든 친환경 식품 소비자 입맛 사로잡다
각종 먹을거리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와중에 친환경 유기농을 주창하며 식품업계로 진입한 종교단체의 식품 사업이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있다. 복지사업의 경제적 보조 혹은 우리 농산물 유통 촉진 및 생산자 보호 등을 목적으로 시행된 종교단체의 식품 사업이 해당 종교인들의 탄탄한 신뢰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성장해가고 있는 것이다. 식품이라는 한정적 범위 내에서의 시장진출이지만, 농산물 원재료 자체에서부터 각종 가공식품 및 완제품까지 다양한 종류를 자랑한다. 새로운 제조방법의 도입으로 특허 획득은 물론 대학 연구소와 협력해 제품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넘어 해외로까지 알음알음 판매되는 종교단체의 식품 사업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녀원 개량메주 ‘백합식품’
강원도 고랭지 콩만 사용, 수익금은 복지시설 운영
1968년 대구의 한 수녀원에서 쿰쿰한 메주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 관구에서 본원 내 보육 및 복지시설의 경제적 보조를 위해 메주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수녀원 설립 당시 대구 관구에는 천주교 교우 가정에서 양육되던 30여명의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백합보육원이 함께 설치됐다. 이후 수녀회의 정신인 ‘애덕(愛德)’을 따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애덕원 산하 10여개의 크고 작은 복지시설도 덩달아 세워졌다. 정부 주도의 복지정책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당시, 시설들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자체적인 수익원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백합보육원을 돕기 위해 메주를 쑤던 것이 메주뿐 아니라 된장, 고추장 등의 장류와 콩 분말 등 다양한 식품을 생산·판매하는 지금의 백합식품으로 발전했다.
수녀원에서 수익사업을 구상하던 중 메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이 계기가 됐다. 대구 관구의 관구장과 고교 동창이던 김옥순씨가 일본에서 미소된장으로 유명한 식품영양 계통에서 유학생활을 마친 뒤, 15년간 연구한 개량메주제작방법을 수녀원에 전수해 준 것이다. 그는 직접 수녀원으로 들어와 두 달간 기숙하며 해당 기술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보육원 아이들, 교구 신부들과 나눠먹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으나,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인들에게 조금씩 팔기 시작했고 이것이 지금의 경북 경산에 있는 공장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개량메주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양도 독특하다. 일반 재래식 메주의 경우는 크고 네모난 모양 안에 공기층이 없어 겨우내 묻어놔야 할 정도로 발효가 쉽지 않다. 그러나 백합식품의 수녀원 메주는 라면가락처럼 생긴 메주가 성인의 주먹만한 크기로 뭉쳐져 속속들이 공기층이 형성돼 발효가 간편하다. 장이 살아 있어 맛 또한 일품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콩알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는 알알이 메주도 인기다. 판매율이 가장 높은 제품은 막장용 가루인데 각 가정에서 가루와 물, 소금 등을 정해진 비율로 섞어주기만 하면 된다. 가공식품은 무엇보다도 원재료의 질이 중요한 법. 100% 국산콩을 쓴다고 하지만 국산이라고 모두 유전자조작식품(GMO)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또한 콩이 재배되는 지역에 따라 수분 함량도 천차만별이다. 백합식품은 이러한 제반 조건들을 모두 고려해 수분 함량이 높은 강원도 지역의 고랭지 콩을 수매해 유전자 검사에서 합격된 것들만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경북 경산 공장에서는 총 4명의 담당자가 제품을 제조하지만, 메주의 계절 겨울에는 구성원이 조금 더 늘어난다. 물론 구성원은 모두 수녀와 천주교 교인들이다. 해당 제품들은 각 지역의 천주교 본당을 통해, 혹은 인터넷 홈페이지(www.spcfood.co.kr)나 전화주문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판매수익은 애덕원 법인에 소속된 여러 복지시설의 운영자금으로 사용된다.
조계종 ‘연우와 함께’
산야초 김치·초코 동옥고… 전국 사찰 식품도 판매
조계종 중앙 신도회에서 발의해 설립된 불교계 사회적 기업 ‘연우와 함께’는 불자들이 만든 생산품과 각 지방의 사찰식품 등을 모아 소비자들에게 유통·판매하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첫 사회적 기업으로, 지난해 10월 설립돼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올 1월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에 선정될 만큼 탄탄한 기반을 자랑한다. 설립취지에도 남다른 사연이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가 불교신자인 독일 손님 접대를 위해 조계사 앞에서 판매하는 염주를 하나씩 선물했다고 한다. 그런데 곱게 채색된 염주가 얼마 안 가 물이 빠져 못쓰게 되자 이를 선물 받은 독일 사람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친 것이다. 확인해보니 해당 제품은 중국산이었고, 실제 조계사 앞 불교용품점의 70% 정도가 불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직접 만들어 믿고 사고팔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취지에서 ‘연우와 함께’가 빛을 보게 됐다. 각 지방 사찰에서 생산하는 청정 오미자 엑기스, 복분자 엑기스, 연잎가루 등의 사찰식품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도 더해졌다.
‘연우와 함께’는 산사에서 만든 산사고추장, 불자가 생산한 토종매실, 발아 미숫가루 등 다양한 가공식품과 유기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판매되는 제품 선정은 자체적으로 만든 ‘착한제품선정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업의 대표나 생산자가 불자인지 확인한 후 해당 기업이 그동안 어떠한 친환경 유기농 제품들을 생산했는지 이력사항을 검토하고 계약대상제품 검토도 꼼꼼히 수행한다.
직접 개발한 PB상품(Private Brand Goods·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 상품)도 선보인다. 최근 새롭게 출시된 ‘연근·양배추 피클’은 홈페이지를 통해 체험단을 모집 중이다. 강화 선원사 연밭의 연근을 전량 매입해 유기농 피클제조업체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해 만들었다. ‘동옥고’라는 독특한 제품도 개발했다. 한의학상 보약의 일종인 경옥고를 변형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승려들이 3개월간 한곳에 모여 일절 외출을 금하고 수행에만 전념하는 안거제도가 있는데 이러한 수행 후에는 승려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경옥고를 만들어 먹는다. 그렇게 전해져 내려오던 비법들을 동국대 식품공학과 기능성식품소재연구소와 협력해 개발한 것이 바로 ‘동옥고’다. 경옥고 대신 동국대의 ‘동’자를 앞머리에 붙여 작명했다. 휴대성을 높이고 까다로운 청소년의 입맛을 고려한 초코 동옥고도 있다. 초콜릿 안에 동옥고를 넣은 것이다. 그밖에 산야초를 발효시켜 담근 ‘산야초 김치’와 ‘파프리카 피클’도 출시 예정이라고 한다.
제품 구입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전법회관 1층 매장과 인터넷 홈페이지(www.lotuscoopmall.com)를 통해 가능하다. 7월 초에는 경기 죽전점 오픈을 앞두고 있으며, 공주 마곡사 옆 템플스테이 전시관 내에도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주로 불자들이 애용하지만 지인들의 추천을 통해 가톨릭 신자 등 타 종교인과 일반인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지속적인 구매를 하고 있다.
원불교 ‘영산식품’
전통방식으로 발효시킨 장류… 미국·중국서도 주문 들어와
‘시중에서 활선을 하며, 세상을 돕는 활불이 되자. 일원주의 사명 아래 충실하고 믿음 있게 일해서 세계에 봉공하자.’
사회사업으로 유명한 원불교 정신을 이어받은 ‘영산식품’은 전북 임실지역 농촌의 생산자 보호와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을 위한 목적으로 1988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메주, 참기름, 들기름을 주로 생산하다가 된장, 고추장, 간장도 점차적으로 생산하게 됐고, 얼마 전부터는 ‘쥐눈이식초콩환’을 원광대와 공동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쥐눈이콩(서목태)은 일반 검정콩(서리태)에 비해 크기가 작고 속이 노란 약콩으로 우리나라가 원산지다. 국산 쥐눈이콩을 식초에 보름 이상 발효시킨 뒤, 다시 보름 동안 자연건조 후 분쇄해 환(丸)으로 만든 것이 쥐눈이식초콩환이다. 혈당을 조절하여 당뇨병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가루는 폐경기 여성들의 호르몬 작용에 도움을 줘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된장의 경우는 100%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전통발효장류식품으로 항아리에서 2년 이상 숙성시킨 후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간장 역시 자연여건을 그대로 활용해 발효시킨다. 덕분에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등은 전통식품인증마크를 획득했고, 청국장은 도지사로부터 전북 대표상품 인증제도인 바이(Buy)전북인증을 받았다. 공장 자체적으로는 환경경영체제에 관한 국제표준인 ISO 14001인증도 받았다.
원불교 교인들로 구성된 공장은 상시직원이 8명 정도로 소규모다. 작년 매출은 7억2000만원 정도.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로 제품을 유통할 만큼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국에서도 주문이 들어올 만큼 꾸준한 소비자층을 보유하고 있다. 주 구매층은 교인들이지만 알음알음 찾아온 소비자도 반 이상이다. 원광대 생활관에서는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된장, 고춧가루, 들기름, 간장 등을 단체 급식 재료로 구입해오고 있다고 한다.
수익의 일부는 영산선학대에 후원하는 식으로 장학 사업을 펼칠 계획이지만 아직까지 이익이 많지 않아 계획에만 머물고 있다는 게 김법중 대표의 말이다. 값싼 외국 농산물이 많이 들어오면서 순수 국내산 원료만 사용하는 영산식품의 가격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농가에서 구입한 농산물의 원가가 5000원 정도라면, 외국산 농산물은 5분의 1인 1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대형 백화점이나 마트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해당 제품을 접할 수 없는 점도 아쉽다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youngsanfood.co.kr)에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안전한 음식 팔고 복지사업 재원 마련
그밖에도 청소년 자립을 목적으로 샬트르성바오로 수녀회에서 시작한 청소년 자활공동체 ‘쌘뽈나우리’에서는 ‘아라원 황토소금’을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 일부는 정서적·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정, 한부모 가정, 새터민, 다문화 가정 및 장애인, 난치병, 희귀병 환우를 둔 가족을 돕는 데 사용된다. 1999년 도농 생명공동체운동을 목적으로 아현교회, 경신교회 등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농도생활협동조합에서는 다양한 우리 농산물과 더불어 ‘감리교 농도쌀라면’ 같은 자체 제작식품도 판매해왔다. 현재는 품절된 상태로 9월에 다시 출시예정이라고 한다.
종교단체에서 종교 관련 성물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식품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조금 의아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이에 대해 해당 업체 관계자들은 “먹는 것이 육신의 모든 활동에 기본이라는 전제하에 보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원산지 표기가 의무화되고 각종 식품규제가 늘어난다 할지라도 이를 100% 신뢰하기는 힘든 것이 식품업계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종교인들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깨끗하고 좋은 음식,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수요가 더해져 종교단체의 활발한 식품 사업 진출이 가능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각 종교단체의 복지사업 재원 마련에 있어 식품사업이 큰돈을 들이지 않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지적된다. 실제 백합식품의 한 관계자는 “수도회가 돈벌이한다고 크게 일을 벌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돈이 많이 들어 하기 힘들다”며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전통 식품은 솥에 조금씩 삶아서 재래식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식품사업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박영철 차장 ycpar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