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에서 부곡으로
삼월 셋째 일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어제 창원천 천변과 창원수목원을 두르면서 봤던 능수버들을 소재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겨울엔 나목으로 몇 가닥 실오라기 / 봄 맞은 가지마다 연초록 기운 번져 / 하늘로 솟구쳐 올라 하강하는 분수다 // 누구나 한 번뿐인 청춘은 이렇다고 / 꽃만큼 눈길 끄는 포물선 그리면서 / 수액은 마법을 부려 유록색을 입혔다” ‘능수버들’ 전문이다.
이어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노승대가 쓴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을 펼쳐 읽으면서 음용하는 약차를 달였다. 날이 밝아오기 이전 아침을 들고 현관을 나섰다. 온천수에 몸을 담글 요량인데 자차가 아닌 대중교통 편으로, 마금산 온천이 아닌 창녕 부곡으로 갈 생각이었다. 북면 신촌으로 가면 하루 서너 차례 창녕읍에서 영산을 둘러 부곡으로 오가는 영신교통 버스가 다녔다.
집 근처에서 102번 버스로 동정동으로 나가 월영동을 출발해 북면으로 가는 20번 버스로 갈아탔다. 신촌 종점 마금산 온천장을 찾지 않음은 대중탕이 협소하고 온천수가 미지근해서였다. 목욕비도 마금산은 8천 원이고 부곡은 6천 원이라 2천 원이 낮았다. 부곡으로 오가는 왕복 교통비가 1천 8백 원 더 드는데 그것을 제하고도 2백 원이 남으니 부곡 온천을 다님이 나은 편이다.
정한 시각 신촌에서 부곡으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두 아주머니가 탔다. 둘을 서로 아는 사이로 창녕 어딘가로 가 농가 일을 돕는 분인 듯했다. 백월산 서쪽 마산동 앞을 지날 때 천주산에서 흘러온 신천은 샛강이 되어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냇바닥은 수액이 오른 갯버들이 연녹색을 띠었다. 월백을 지난 본포에서 본포교 다리를 건너니 아침을 맞은 수려한 강변 풍광이 드러났다.
본포 일대는 4대강 사업 이전에는 은빛 모래가 드넓게 펼쳐졌다. 특히 청도천이 흘러온 밀양 초동면 반원 앞 둔치 모래밭은 오후 햇볕에 반사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와 함께 곡강 언덕에서 바라본 본포로 해가 기우는 저녁놀은 장엄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날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학포 둔치 생태공원과 반월 습지에 무성한 갯버들은 원시 밀림을 연상하게 했다.
다리를 지나는 짧은 시간 차창 밖으로 창녕함안보를 거쳐온 낙동강 본류가 샛강을 품고 수산 방향으로 유장하게 흘러내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가깝고 먼 곳에서 다가오는 산들은 모두 강심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듯했다. 옅은 아침 안개가 걷혀가는 즈음이라 골마다 서려 있을 사람 사는 동네 사연은 더더욱 신비감이 더했다. 본포교를 건너간 버스는 학포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탔다.
할머니는 장보기 끌개에 무거운 상자를 얹고 보자기도 묵직했는데 내가 내려가 옮겨 실었다. 일흔 살은 넘어 뵈는 할머니는 강변에서 애써 캤을 달래를 시장으로 팔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창녕읍은 한 번으로 간다만 그곳이 아닌 밀양 장으로 가는 길이라 비봉리를 지난 인교삼거리에서 버스를 다시 갈아타야 해 짐짝을 내려주었다. 버스는 수다를 거쳐 고개를 넘으니 부곡이었다.
부곡에 닿아 가끔 찾았던 대중탕으로 드니 입욕객은 많지 않았다. 전날 부곡에서 개최된 온천 마라톤 행사에 참여한 건각들은 대부분 돌아간 듯했다. 부곡에는 해마다 봄이면 온천 축제가 열리는데 삼월 말 연다는 펼침막을 보았다. 대중탕에서 온탕과 열탕과 사우나를 거쳐 냉탕을 두르는 동선으로 평소보다 더 걸린 2시간 걸쳐 목욕을 끝냈다. 최면 효과인지 시큰하던 무릎이 나았다.
대중탕을 나오니 몸이 개운하고 가뿐해졌다. 아침에 타고 왔던 영신교통 31번은 창녕읍을 출발해 영산을 거쳐 부곡에 닿았다. 귀로의 농어촌버스는 부곡면 소재지를 거쳐 수다에서 인교를 지나 학포에서 본포로 건너왔는데 마금산 온천에 닿을 때까지 내가 유일한 승객이었다. 온천장 식육식당에서 한우국밥을 시켜 점심을 때우고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24.03.17